[Review]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여름, 청량한 시간
글 입력 2021.06.0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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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감독 주순 | 출연 등은희 이감 | 100분 | 개봉 2021.06.17

 

 

 

3년 전 엄마가 살해된 후, 소녀 ‘자허’와 아빠의 삶은 엉망이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아빠와도 마음 속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소녀,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엄마를 죽인 소년 ‘유 레이’와 마주치게 된다.

 

예상보다 빨리 석방된 그를 보고 소녀는 분노에 휩싸이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게 되는데…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시놉시스

 

 

 

이해할 수 없는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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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정말 꼰대가 다 됐나 보다. 입을 꾹 다물고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저 앙다문 입가를 보아라. 영문모를 분노로 가득 찬 자허의 작은 머리통 속이 궁금하다. 심술을 숨기지 않고 이리저리 사고를 치고 다닌다. 기울어진 가세로 인해 소고기 배달업을 하는 아버지의 직업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자허는 반 전체에서 외톨이다.

 

아버지는 원래 레슬링 선수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병이 생겨 레슬링 출전을 할 수 없었고, 다른 배움이 없었기에 웬만한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물론 어린 자허는 레슬링을 할 때도 아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엄마는 바보야 라며 어떻게 가난하고 못생긴 아빠랑 결혼했어? 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돈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아 항상 참고 사는 아빠가 답답하기만 하고 미련하게 느껴지는 자허는 아빠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다. 어린 나이에 할 법한 미숙한 표현 방법으로 온갖 심통을 부리는 15살 자허는 항상 용돈을 모아두고, 핸드폰만 붙잡고 산다. 그리고 혼자만의 세계로 빠진다. 작은 머리통에는 직접 세운 갖은 계획이 많다.



 

용서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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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답답했던 자허의 아빠는 술에 자주 취했고, 엄마는 그런 남편을 지탱했다. 예쁘고 마음이 아름다웠던 엄마는 자허의 세상이었다. 어느 날, 그런 엄마가 취해서 연락이 두절된 아빠를 찾아 나선 날,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이후로 엄마를 볼 수 없었다. 어린 자허의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엄마의 죽음은 자허에게 커다란 상실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자허의 성적도 떨어졌고 교우 관계도 급격히 나빠진다. 자신을 왕따시키는 반 아이들과 매일 술에 절여 살고, 항상 '을'의 위치에 있는 아빠가 짜증 나기만 하다. 그런 와중, 엄마를 살인한 '유 레이'가 출소해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을 목격한다. 충격에 휩싸인 자허는 그날부로 학교 수업을 빠지면서도 레이를 미행한다.

 

그가 보는 책, 그가 일하는 장소, 그가 친구를 만나는 곳, 그의 친구들, 그가 노는 방식 등, 유 레이의 모든 것들을 알기 위해 쫓아다닌다. 도대체 어떻게, 최소 4년은 살고 나온다는데 왜 벌써? 자허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너무 많다. 아이가 받을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자허에게 재판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지만, 기어코 몰래 쫓아와 보게 된 레이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자허는 그를 쫓아다니며 레이와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자허는 레이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SNS 프로필 사진은 왜 이런 사진이지? 쟤는 왜 저러는 거지? 여기서 뭐 하고 노는 거지? 자허는 레이에 대해 알아가고, 레이도 자연스럽게 친구들 무리에 끼워주며 자허와 함께 일탈을 즐기며 논다. 그런 자허의 출입이 불편했던 친구도 있었지만 이내 자허를 받아들인다.

 

자허는 알고 보니 사건 시점에, 14세를 벗어났던 그의 나이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고, 당시 담당이었던 변호사를 찾아가 따지기도 한다. 다시 소송을 걸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 그간 모아둔 용돈을 털어보기도 하며, 학교를 그만두고 네일샵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돈을 구할 곳을 물어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허는 레이와 둘이 있는 순간마다 그를 죽이는 상상에 시달린다. 분노로 가득 찬 10대의 중반은, 위험한 순간까지 상상을 멈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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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비밀로 한 채 꾸준히 레이의 뒤를 쫓아다니며 캐내다, 결국 담임선생님의 방문으로 인해 자허가 그동안 무단 조퇴를 하고 성적도 더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빠의 호통으로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 그때도 술을 들고 놓지 못하는 아빠에게 눈물을 흘리며 자허는 호소한다.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의지가 되는 부모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빠는 다음날부터 술을 끊고 다시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자허에게 다가간다.

 

노력이 통했을까? 자허는 지금도 싫지만, 예전에도 싫었던 레슬링을 아빠에게 배운다. 그리고 레이의 모든 시간을 체감한 자허는 레이를 해코지하지 못했다. 한 번도 자허에게 자신의 행동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레이는 강가로 자신을 불러 익사시키려고 잠시 '의도'했던 자허에게 왜 죽이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레이의 답은 간단했다. 나는 또 다른 네가 되기 싫어.

 

 

 

용서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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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던가, 자허의 엄마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레이의 사연도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느 졸부와 재혼한 엄마가 맘에 들지 않았던, 10대 중반의 레이가 있었다. 새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것은 현재 출소 후 홀로 일하는 곳 건물에서 문지기를 하며 살아가는 레이의 상황이 말해준다. 그래도 자식이라 챙기는 건 엄마라고 매번 돈을 보내주고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레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돈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물 한 컵이었다고, 자신의 집에 찾아온 자허에게 말한다.

 

레이는 탁한 공기에서 정화능력이 뛰어난 식물을 키우며, 엉망진창인 방 안에서 홀로 살아간다. 엄마가 사준 최신형 아이폰과 함께 교정학교에서 만난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켜가며 순조롭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눈앞에 자허가 나타났다. 하필 놓고 간 자허의 책가방 때문에 이름을 알았다. 아마도 알지 않았을까? 갑자기 나타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쫓아오는 자허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신경 쓴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친절을 베푼다. 자허가 어떤 행동을 해도 모든 것을 수용할 자세로 자허를 맞이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밤에 친구들과 다 같이 놀러 간 계곡에서 대화다. 자허는 레이의 SNS 프로필 사진에 관해 물었다. 레이는 교정학교에서 보았던 폴란드 영화라고 말해주며, 간단한 스토리를 풀어준다. 한 남자가 기차를 탔을 때 일어나는 세 가지 상황에 대해 말해준다며, 선택에 따라 바뀌는 인생이, 혹은 내 선택이 아니라 외부 상황에 의해 바뀌는 인생이 정말 재밌지 않냐며 자허에게 답한다. 과연 자허가 그 뜻을 전부 이해한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한 레이는 후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고 고스란히 그 무게를 견디고 있다고 판단했다. 충분히 유복한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집에서, 혹은 대충 보낼 여관에서 생활하며 계속 생각을 잊을 수 있는 일을 찾아 떠난다. 자신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고민한다.

 

새아빠에 대한 분노로 그의 차량을 태우기 위해 기름을 붓던 도중, 남편을 찾아 돌아다니는 자허의 엄마를 만나 당황한 나머지 그녀의 입을 막아 숨지게 했다. 자허의 엄마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거리가 200m라고 한다. 물에 빠진 자허를 데리고 힘겹게 나와 강가 근처에 같이 누워 숨을 고른다. 레이는 자허에게 말한다. 200m를 달려 도망쳤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왜 참고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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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 초반, 학교의 풍경이 나온다. 선생님의 잔소리부터, 또 체육 시간 중 수영장에서 자허가 수영복으로 갈아입느라 옷을 걸자, 반 아이들이 옷을 치운다. 뒤늦게 갈아입고 온 자허가 물에 들어가 잠수를 하고 나오니, 반 아이들 전부가 물 밖으로 나갔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물에서 비린내가 나요. 자허의 아빠는 소고기를 배달한다. 이유는 그것 뿐이였고 화가 난 자허는 밖으로 나가 양동이에 빨간 물감을 타와 수영장에 뿌려버린다. 반 아이들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아빠가 고기를 떼오는 '휘형'의 도축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휘 형의 싹수없는 대답이 쌓이고 쌓였던 자허는 전기선을 몰래 끊어버린다. 그런 자허를 혼내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는 자신의 속을 몰라주는 자허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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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허는 타의에 의해 참아야 하는 상황이 싫다. 체육관에서 관장이 아빠를 무시하는 발언에 화가 난 자허는 관장의 차를 그어버린다. 당한 그대로 갚아줘야 하는 자허는 엄마를 살해한 유 레이를 참지 못하고 기회만 엿본다. 결국엔 그를 죽이진 못했고 또 모든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자허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용서'를 배운다.

 

휘 형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아빠에게 심통을 부리며 왜 참고만 살아? 나이도 어린애한테 왜 그런 말을 듣고 있어?! 하며 뾰로통한 얼굴로 사납게 톡 쏘아붙이던 자허는 본연 그대로의 감정을 수용해본다. 참고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자허의 내면의 성장을 알 수 있었다. 항상 분노로 차올랐던 자허의 감정에 차가운 찬물을 끼얹는 순간을 알아차렸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했을 거로 생각한다.

 

 

 

여름, 청량한 시간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무표정해도 화가 서린 눈빛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낸 눈빛을 연기한 등은희의 연기력도 한몫했다. 제2의 주동우라는 별명을 얻은 아시아 신예 스타로 복잡한 10대 중반을 완벽히 연기했다. 특수하고 극단적인 상황과 관계를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연기로 균형 있게 관객을 설득한다. 그리고 관객인 나는 그들이 보이는 여름에 서서히 스며들며 그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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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무겁고 부담스러울 사건들이 어여쁘게 풀어진다. 인물이 가진 슬픔과 어울리는 형용사는 아니다. 그런데도 영화와 함께 어우러지는 수식어는 맞다. 무더운 여름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진 톤은 밝고 가볍다. 여름이 줄 수 있는 색채의 아름다움이 배로 달한다. 부정적인 여름의 더위가 주는 무거움이 소재가 말하는 엄마의 죽음과도 같았고, 자허의 분노와 성장은 영화가 주는 청량감과 같다.

 

영화의 소개말만 들어보면 매우 무겁고, 또 보다가 화나는 거 아니야? 라는 걱정도 있었는데, 여름날, 공원 벤치에서 슬슬 녹기 시작하는 아이스크림처럼, 그럴 새 없이 그저 영화에 녹아들었다. 또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행동들에 비해 자허의 동그란 눈에서 읽히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감정을 숨기는데 미숙한 어린 날의 시절들이 비켜 지나갔으며.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의 크기를 단편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한편의 청춘 영화처럼, 비록 자허와 아빠가 겪은 상실을 감히 말할 수 없지만, 남은 이들이 살아가며 체감하는 감정과 말을 통해 조금이나마 메마른 슬픔을 나누어본다.

 

성큼 다가온 여름의 미적지근한 더위를 시작으로 함께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은 누구와 보아도 괜찮을 영화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균형 있게 잘 풀어낸 연출과 뒤받쳐주는 배우의 연기력, 그리고 끝에 주는 여운이 완벽한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은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감독상, 제23회 상하이국제영화제 신인여우상 수상했다. 총 100분의 상영 시간을 가지며 오는 6월 1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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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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