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블레이드 러너'가 짓는 SF라는 틀 [영화]

글 입력 2021.06.0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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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1982)가 쌓은 SF라는 성


 

<블레이드 러너>가 디스토피아 SF 장르의 효시처럼 회자되는 이유는 해당 영화가 장르적 특징을 현저히 지님을 넘어서 장르 자체를 재정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지닌 장르적 특징을 논하기 이전에 SF의 개념과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SF 영화라 하면 조르주 멜리아스의 <달나라 여행>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영화로 마술 공연을 한다고 여겨질 정도로 독특한 기술을 사용한 작품이다. 이것이 바로 '트릭 사진 기법'이다. 이처럼 SF 영화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영화 기술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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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Science Fiction’의 약칭으로, 직역하자면 ‘과학적 허구’이다. 이 정의는 다소 모순적인 지점이 있는데, ‘과학적’이란 물질적, 실질적 근거가 존재하는 특성을 일컫는 데에 반해 ‘허구’란 실체가 없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은 SF를 장르의 개념으로 확장할 때 더욱 흥미로워진다. SF영화는 흔히 ‘공상과학영화’라고 일축되는데, 이는 영화가 단순히 과학적인 증명에 치중해 현실을 기록하는 수단에서 머물지 않고, 허구를 통한 극족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영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근거의 만남인 것이다. 즉, SF 장르의 태동은 영화 그 자체의 기능적 전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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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SF 영화가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을 그린다는 정의를 완성시킬 수 있다. 분명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기저에는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SF 영화는 현대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엿볼 수 있는 표지라고 확장해 설명할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가 SF 장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80년대의 현실을 2019년 스모그와 폐허 같은 건물들로 가득한 로스엔젤레스에 투사했다는 점이다.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던 시기인 만큼 그 이면에 은폐된 부작용과 악영향에 대한 인식, 그로 인한 걱정이 팽배해 있었다. 과학 기술만이 모든 것의 해결점이라는 기술지상주의를 뒤집고자 하는 의도가 <블레이드 러너>의 근간을 이룸은 분명하다. 이를 전혀 다른 시공간에 접목하면서 기술 문명의 그림자를 조명했고, 이는 분명 1980년대의 시대 정신과 불안을 반영한 결과이다.

 

SF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현실의 반영이자 영화적 상상력의 극단을 보여주는 장르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전반에 깔린 기술 문명의 도래에 대한 경계는 분명 이러한 장르적 정의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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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함은 ‘시각적 효과를 통한 미래사회의 조명'이다. SF 장르의 발달은 특히 이러한 점에서 영화 기술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는 2019년의 로스엔젤레스의 전경을 자주 등장시키는데, 짙은 스모그와 탁한 대기, 그리고 이에 큰 몫을 했을 대형 비행선, 우뚝 솟은 피라미드 형태의 건물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타이렐 기업의 건물과 도시에서의 그의 영향력이다.) 등이 보인다.

 

깜빡이는 불기둥과 인공 조명들 역시 영화의 시각 효과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으로, 당시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임에도 기묘한 ‘사실성’을 보여준다. 이로써 영화는 완전히 허구적인 것에서 머물지 않고, 일종의 설득력을 지닌다. 이는 SF 영화의 두드러지는 특징인 시각 효과를 통한 미래 사회의 형상화와 일치하고, <블레이드 러너>의 장르적 특징을 다시금 공고히하는 요소이다.

 

 

 

주인공 데커드는 인간인가? 레플리칸트인가?


 

<블레이드 러너>가 정립한 SF, 특히 디스토피아적 미장셴과 더불어 그 내용 면에서도 두드러지는 면이 있다. 인간의 조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에 대한 태도 등의 철학적 고민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SF 장르는 미래에 대한 현재의 반영인 만큼, 모순적이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점점 더 인간이라는 존재 바닥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오리지널리티라고 함은 이렇게 디스토피아 세계의 구현을 중심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대립 구도는 ‘인간-레플리칸트’로 형상화되는데, 이들을 구분하는 보이트-캄프 테스트에서 핵심이 되는 건 바로 눈과 기억이다. 영화에서 눈의 상징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데, 레플리칸트들이 인간을 해칠 때 대부분 눈을 찔러 죽이고자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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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조적 시선에서 레플리칸트들의 홍채 움직임을 쫓았지만, 정작 인간의 눈은 올바른 것을 직시하지 못하고 결점 투성이다. 인간이 아닌 것의 앞에서는 신처럼 군림하고자 하는 종차별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보다도 더 잘 인간을 이해한 레플리칸트들은 인간의 눈을 공격함으로써 그 모순을 꼬집고자 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레플리칸트의 존재가 성립한다면 과연 주인공 데커드는 인간과 레플리칸트 중 어느 쪽인가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데커드가 레플리칸트에 가깝게 묘사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 ‘기억’ 역시 인간과 레플리칸트를 구분하는 기준인데, 데커드의 정체성을 이를 통해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것이 기억이라면, 인간성의 핵심에 놓여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 역시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첼의 경우 확실한 기억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심어진 기억으로 인간됨에는 유효하지 못했다. 그러나 심어진 기억이든, 오랜 시간을 걸쳐 쌓아온 기억이든 기억의 효과 자체는 동일하다는 점이 주목할만 하다.

 

영화 중후반부에 레이첼이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전개에 따르면 이는 분명 이식된 기억과 지식에 의한 행위겠지만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직접 배워온 인간과 똑같이 현재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즉, 기억의 효과는 동일하다. 데커드가 지닌 경찰로서의 판단 능력, 신체적 능력 등은 장시간의 경험의 축적이 아닌 동일한 효과를 지닌 기억의 이식으로부터 기인했음을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데커드의 오랜 기억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매우 가까운 과거만을 발화하고 여타 기억들은 모호하게 연출되는데, 이는 데커드의 존재가 영화 내에서 정의되는 인간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라고 판단했다. 그는 흔히 인간다움의 증거로 인식되는 어리석음, 우유부단함, 원초적 본능에 이끌리고 마는 유약함 등을 보이지만 풍부한 감수성과 동료애, 분노 등의 원시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레플리칸트들도 마찬가지이다. 데커드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혼재되어 나타나지만, 그가 종국에 레플리칸트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지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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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의 후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한 것이 2017년이었다. 기존의 제작물을 끊임없이 리메이크하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특징 상 앞서 설명한 SF라는 장르적 고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 등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였는지 지켜보는 매력이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저주 받은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고전적 SF 영화로서, 또한 디스토피아 영화의 효시로서 계속해서 회자될 것이다. 어쩌면 <블레이드 러너>가 틀 지은 장르적 규칙을 넘어서는 것이 현재 영화 제작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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