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악의 하루를 보낸 당신에게 [영화]

나도 모르는 나를 알게될 때
글 입력 2021.06.0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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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다. 정말’

 

‘아 오늘 왜 이러지?’라는 말을 내뱉게 되는 날이 있다. 오전에 마감 기한을 착각해 업무를 놓쳤다거나, 길거리에서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거나, 하얀 바지를 입었는데 하필 비가 와서 푹 젖었다거나 등등.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겹치는 상황 앞에서, 우리는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365일의 반복 속에서 적어도 하루는 이런 날을 만나게 된다.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모두 내 편이 아닐 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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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루를 담은 영화, <최악의 하루>는 제목 그대로 ‘최악’의 하루를 보내는 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고의 하루도 아니고, 최악의 하루라니, 보통 최악이라는 단어는 영화 제목에는 잘 쓰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이 갔다.

 

하지만 ‘최악’이라는 단어는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진실’과 ‘거짓’이 영화의 주제를 차지하는데, 이 부분에 관해 서술하고자 한다.

 

 

은희 > 료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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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은희’는 배우지망생이다. 은희를 중심으로 3명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 캐릭터와 위치가 각기 다르다.

 

먼저 우연히 만난 일본 작가, ‘료헤이’이다. 료헤이는 일본 태생 작가로 한국에 작가 인사회로 오게 된다. 그는 한국 출판사의 담당자와 만날 장소로 가는 길을 찾다가 은희에게 길을 묻고, 연기 수업을 마쳤던 은희는 선뜻 그 장소에 같이 가주며 길을 찾아준다. 은희와 료헤이는 원활하게 말이 통하지 않지만, 간단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그 장소는 아직 오픈 전이었고 료헤이는 감사의 표시로 은희에게 커피를 사게 된다.


이를 통해 둘은 친해지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작가 료헤이는 소설이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었고 은희 역시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아직 무명이라는 공통점도 있었기에 마음이 통했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료헤이를 통해 은희의 해맑고 순수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은희 = 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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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가 다음으로 만나는 남자는 남자친구 ‘현오’이다. 현오는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로, 흐름을 보면 그들은 꽤 오래 만난 사이였다. 현오는 잠깐 촬영 중 짬을 내어 은희에게 남산 산책로에서 보자고 한다. 사실 은희는 연기 수업 이후 현오와의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료헤이와 커피를 마시는 중에도 현오에게 문자를 보낸다.

 

‘어디냐’는 질문에 커피를 마시면서도 ‘차가 많이 막히네’라며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은희의 늦고 싶은 마음을 이해했다. 동일한 직업을 꿈꾸던 중 현오는 우선 배우가 되었고, 바쁘다는 위치에서 ‘짬’을 내어 은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은희의 자존심에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나기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일종의 ‘정’을 안고 그 둘은 만나게 된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으라며 재촉하는 은희와 누가 알아보면 어쩔 거냐는 현오의 대화를 통해,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은희의 모습이 보였다. 현오의 ‘연예인병’ 증상에 은희는 ‘일개 아침드라마 주제에~’ 라고 응수하는 것도 이러한 내적 감정이 원인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둘은 계속해서 소소한 말다툼을 한다. ‘나도 너 이상한데 만나는 거야’부터, ‘넌 그 애 아직도 정리 안 했어?’라는 말까지, 사랑 앞에서 유치해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헤어지기는 싫은 은희의 모습이 드러났다.


 

은희 < 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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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는 료헤이와 다르게 현오를 대할 때는 오래된 사랑 앞에서의 시기 어린 투정과 장난이 뒤섞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후 ‘운철씨’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은희의 모습이 또 바뀌기 시작한다. ‘운철’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는데, 은희보다 나이가 많았고, 은희에게 사랑을 표시하지만 유부남이다.

 

은희는 현오와 헤어지고 나서 남산 벤치에 앉아 나무의 그림자를 찍어 트윗에 올리게 되는데, 이 사진 한 장으로 운철이 찾아온다. 그를 보겠다고 달려온 운철과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카페에 앉아 시작한 운철의 이야기는 참 어이없었다. ‘우리는 사랑했지만’, ‘저는 재결합하기로 했어요.’ 가정을 꾸리겠다면서 은희와의 사랑은 계속해서 이어가겠다는 말도 안 되는 대화에 은희는 눈물을 쏟는다. 이때 그는 머리를 묶고 외투를 벗고 굉장히 단정한 모습이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눈물을 흘리는 은희는 조금 전에 현오와 함께 있던 모습과는 또 사뭇 다르다.

 

 

‘그게 다 저예요’

 

은희는 운철과 힘들게 헤어지고 다시 만나자는 현오를 보러 남산에 간다. 하지만 운철은 무섭게도 은희를 따라왔고 결국 세 사람은 같은 자리에 마주하게 된다. 서로 누구냐며 묻는 대화 속에 은희는 정신없도록 최악의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세 명의 남성 앞에서 보이는 은희의 모습은 여러 가지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은희의 거짓된 태도로부터 비롯된 잘못을 비난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은희의 모습을 통해 개개인의 다양한 모습을 비추고자 했던 의도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은희처럼 많은 가면을 쓴다. 인간은 1,000개의 페르소나를 가질 만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상황을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사소한 말투부터 몸짓까지 어딘가 조금씩 달라진다. 은희 역시 거짓말을 했다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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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라는 게 뭘까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라고 말하는 은희는 상황에 따라 사실 자신의 솔직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처음이지만 선한 인상의 료헤이에게는 따뜻하지만 절제된 모습을, 오래된 연인 현오에게는 자주 화를 내지만 사랑하는 모습을, 상처만 준 ‘운철’에게는 이성적이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모습으로 말이다.


사실 이 모습의 차이들은 그들이 걸어가는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료헤이에게 길을 알려줄 때는 료헤이보다 앞장서서 가는 사람. 현오와는 동등한 위치에서 걷는 사람, 운철과 함께 있을 때는 뒤 따라가는 사람으로, 물리적 위치에 따라서 그 관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선 소제목들도 그러한 관계를 부등호로 표현한 결과이다. 하지만 그 부등호의 방향은 계속 바뀌며 영화가 끝날 지점에는 예상할 수 없게 된다.

 

 

거울, 거짓이면서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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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맨 처음, 연습실에서 은희는 연기 지도를 받게 된다. 은희의 지도자이자 선배는 먼저 연기를 시작한다. “‘진짜’라는 게 뭘까요”도 이 연기 대사에서 비롯된다. 거울을 등지고 앉아있는 은희와 담배를 피우며 은희를 응시하는 선배의 얼굴이 거울을 통해 겹쳐 보인다.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거울은 작중 인물이 ‘거짓말’을 할 때 자주 사용되는 장치라고 알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배우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은희는 연기를 하면서 거짓을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료헤이가 쓰는 소설이나 배우의 연기가 거짓일까? 아니다. 소설을 읽을 때 거짓말이라서 불쾌하거나, 배우의 연기가 거짓말이라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과 연기는 표면상으로는 거짓이 될 수 있으나, 진실된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물론 은희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보았을 때 결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은희는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진심으로 행동했고, 영화는 거짓 이면의 진실을 드러낸다.

 

 

어차피 ‘해피엔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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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는 그날 하루 예상치 못하게 자신의 여러 자아에 대해 한꺼번에 마주쳤다. 자신의 모습에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에 더 ‘최악의 하루’였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최악의 하루’로 끝을 맺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니까요. 여자주인공은 꼭 행복해질 거예요”


남산에서 또 만나게 된 료헤이와 한예리는 말이 제일 통하지 않지만, 가장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눈다. 위기에 두고 주인공들을 잘 꺼내주지 않는다는 료헤이의 소설이 해피엔딩이 되는 지점이다. 소설 속 인물처럼 연극의 배우처럼, 글 속과 무대에서 가장 진솔했던 삶을 살아온 그들은 불행처럼 보이는 거짓에서 행복이라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며, 여러 번의 최악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결론은 어차피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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