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복수는 나의 것(2002) [영화]

글 입력 2021.06.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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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공기가 진동하며 퍼진다. 메아리는 그 진동이 어딘가에 부딪히고 튕겨서 돌아오는 소리다. 이 튕김의 작용은 의도하지 않았던, 계획에 없었던 것이다. 의도적이지 않은 것들이 일파만파 메아리처럼 퍼져나가는 것처럼, 도미노가 스러져가는 것처럼 개인이 독립적으로 혼자 툭 튀어나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행동 하나하나는 점차 큰 파동을 만들어가며 주변으로 퍼지게 된다.

 

<복수는 나의 것>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은 서로 조밀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아이러니하게 닥치는 각자의 삶을 소화시켜내다 모두 복수의 주체인 동시에 복수의 대상인 이중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 결국 그 복수 또한 ‘나의’ 것이 되고 마는 관계의 역학은 퍼져나가는 강물의 너울처럼 결국 나에게 닿게 된다. 누가 먼저 시작했든 복수는 결국 나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인물들의 삶이 유사하게 반복이 되고 대구를 이루어 조응하고 있는 배경에 깔린 것은 아이러니이며 의도치 않게 벌어지는 순간들로 인물들의 삶이 복수에 가까워진다.

 

영화는 이를 조망하면서 형식적 장치들을 동원해 인물들의 유사한 상황을 동일선상으로 옮기고자 한다. 영화 속 류와 동진, 영미의 관계가 점점 밀착되고 서로의 상황이 유사해지자 쇼트가 나열되는 순서는 마치 이들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빗대며 그 중첩되는 상황을 극대화시켜 감각하게 한다. 색과 인물들의 움직임 형태 또한 반복되는데, 류가 했던 행동은 다른 인물에게서 또 반복되며 강조된다. 이러한 반복과 대구는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이를 통해 인물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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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되는 인물의 상황, 긴밀한 쇼트의 병치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첫 지점은 누나의 죽음이다.

 

유선이를 유괴해 누나의 신장 이식을 받을 수 있는 돈, 2600만원이 손에 들어온 순간 누나는 자신을 자책하며 목숨을 끊는다. 여기서 돈을 건네주는 동진, 돈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류, 죽기를 결심하는 누나 세 인물의 이 장면이 병치되는 모습은 보노보노 티브이 만화영화와 함께한다.

 

동진이 류에게 돈을 건네주러 빈 공터로 향한다. 류는 기다리고 있는 동진의 뒤에서 비닐봉지를 동진의 머리 위로 씌운다. 이 사이에 류의 집에서 유선이가 보고 있는 티브이 만화 보노보노는 ‘우리 술래잡기 하자’ 라고 외친다. 유선이 류에게 누나가 남긴 유서와 같은 편지를 전해주고 누나가 대야에서 목숨을 끊은 모습이 보여지자, 곧바로 보노보노의 너구리가 물속에 빠져 죽고 있는 장면이 연달아 붙는다.

 

이어 등장하는 장면들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동진의 모습, 차 안에서 유선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누나를 묻으러 가기 위해 운전을 하고 있는 류의 모습이다. 이렇게 쇼트들이 나열되는 순서는 의미심장하다. 술래잡기 하자라는 말은 서로의 얼굴을 아직은 알 수 없었던 동진과 류의 첫 만남을 두고 앞으로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 하며 물속으로 잠기는 보노보노의 모습은 누나의 죽음을 다시금 강조해 보이는 것 같다. 누군가의 죽음 바로 뒤에 살려달라는 또 다른 인물의 비명, 유선이의 울음은 서로의 상황을 대변하듯이 혹은 희화화하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장기밀매업자를 향한 류의 복수, 류를 향한 동진의 복수는 ‘복수’를 위해 인물들이 유사한 상황에 위치하게 되면서 비슷한 대화가 이어지거나 같은 행동이 여러 인물을 통해 되풀이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는 마치 서로가 같은 행동을 하면서 서로의 정체성을 지우고 결국 복수 자체만이 남게 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선이의 장례를 마치고 온 뒤 동진은 꿈을 꾼다. 사진 속에 있던 유선이 걸어 나와 동진을 껴안는데, 이 때 유선은 빨간 원피스를 입고 동진의 허리를 다리로 감싼다. 이 장면은 후에 류가 장기밀매업자를 찾아가 복수를 갚을 때 상대가 류의 목을 조이자 다리로 허리를 감싸면서 상대의 경동맥을 칼로 찌르고 풀려나는 장면으로 반복된다. 유선은 죽어서, 류는 죽이기 위해 같은 행동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류와 유선이가 중첩되어 보이는 이 행동의 형태적 유사성은 류가 유선이와 같이 무구하게 피해를 입은 인물임과 동시에 복수를 갚기 위해 세 명의 인물을 살해하는 주체이며 또 빠른 시일 안에 동진의 복수의 대상이 되는 객체의 다면체적인 상황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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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형태의 반복



<복수는 나의 것> 속에는 특정 색과 형태가 상징적 의미를 갖고 반복되어 나온다. 특히 류와 동진의 복수가 얽히면서 유사한 형태를 통해 복수의 발단과 결실을 상징적으로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류가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과 동진이 복수를 완료하는 시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류는 빨간 추리닝 집업을 입고 돌아다닌다. 유선이가 입고 다니는 원피스 또한 빨간 색이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돌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유선이의 모습은 후에 류가 빨간 상의를 입고 피를 흘리며 강물에서 죽어가는 모습으로 유사성을 지닌 채 반복된다. 이 피 흘리는 복수전에서 유선이의 죽음을 갚는 동진의 복수가 류를 통해 결실을 맺게 되는데, 이는 둘의 죽음이 보여지는 형태의 유사성을 통해 잘 드러나며 복수의 발단이 된 지점에서 복수가 맺어지는 듯하다. 류 자신이 의도치 않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유선이의 죽음의 댓가로 죽는데서 이러한 유사성이 발견된다면, 동진에게는 손바닥의 칼자국이라는 형태로 반복된다.


동진의 양 손바닥 모두 결국 칼자국이 새겨지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영화 초반부, 자신이 해고한 팽 기사의 자해 시도로 그를 막으려던 동진의 왼 손바닥이 칼로 베인다. 이 지점은 동진에게 있어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한 지점으로 류로 하여금 자신의 사장 딸이 아닌 동진의 딸로 목표를 변경하게 된 지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선을 잃고 동진이 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면서 복수를 끝내자마자, 류를 찾아내려 고문했던 영미의 복수를 위해 도착한 무정부주의 연맹에 의해 칼에 찔리게 된다. 영화 후반부에서 동진의 나머지 오른 손바닥은 영미의 복수를 위한 인물들에 의해 칼자국이 새겨진다. 복수의 시작 지점에 상징처럼 새겨졌던 이 상처는 동진이 자신의 복수를 이루자마자 다시 되갚음을 당하면서 형태의 대구를 이루고 영화는 이를 통해 끊임없는 복수의 주체이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의 역학을 강조하는 듯하다.

 

*

 

소설가 폴 오스터는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속해있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은 삶이 나의 것이 아니기에 겹겹이 중첩되어 타인과 섞여 아이러니한 삶에 당도할 수밖에 없음을 얘기한다. 복수를 아이러니에 적용하자면 이 영화 속에서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 사건들의 경위는 매우 우발적이며 우연으로 얽혀 복수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류는 자신이 죽이려는 의도도 없었던 유선이의 우발적인 죽음으로 동진의 복수의 대상이 되었으며 동진은 돈만 건네면 무탈하게 딸과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복수의 여정에 휘말려 영미를 전기고문하며 살해하는 것에 이른다. 자신을 죽이면 동진도 죽게 될 것이라는 영미의 실없는 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사실로 드러나며 동진 또한 죽음을 맞게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의 잘잘못이 문제가 되는 지점을 넘어 얽히며 복수의 주체와 객체라는 위치를 오간다. 영화의 쇼트가 병치되는 순서, 색과 인물들의 움직임의 형태가 반복되고 변주되는 많은 형식적 장치들은 이러한 인물들의 중첩된 위치를 강조하며 점차 같은 행동을 하면서 서로를 지우고 결국 복수 그 자체만 남게 만든다. 과연 복수는 정말 나의 것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결국 나의 것으로 당도하고 말리라는 안쓰러운 전망이 담겨 있는 <복수는 나의 것>은 영화의 인물들의 상황을 대구하며 다면체적인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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