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욕구들', 굶지 않고도 강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도서]

글 입력 2021.06.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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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에 파견되었을 때, 여러 가지가 기억에 남지만, 특히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미국 학생과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젠더 문제를 둘러싼 한국 인터넷상의 극심한 갈등에 관해 말하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기는 언젠가 지나간다. 지나가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제도적 안정과 사람들의 인식 간 괴리가 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평등을 외치던 이들이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다시 더 작고 약한 존재들에게 손을 내밀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평범한 대학생이 자신 있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이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혐오와 갈등도 건설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그 친구가 이야기했던 ‘그런 시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미국이 여성 운동의 격동기였던 1960년대를 지나 비로소 여성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보장된 것처럼 보였던 1980년대 즈음의 시기, 그러나 여성이 여전히 자신의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존재였던 시기, 어마어마한 양의 광고가 이상화된 여성의 신체를 전시했던 시기, 야망 있는 여성들은 서커스를 해내듯 직업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다 번아웃을 경험했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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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은 ‘그런 시기’에 20대 청년으로서 살아갔던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다. 한국에서는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명랑한 은둔자>를 통해 그를 처음으로 접한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명랑한 은둔자>가 자신이 경험했던 다양한 강박과 우울, 상실에 관한 내용이라면, <욕구들>은 그중에서도 거식증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의 마지막 에세이이기도 한 <욕구들>에서는 그의 장기인, 내밀한 심리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물론, 다양한 철학자와 사회학자의 연구를 통해 여성이 경험하는 다양한 종류의 허기의 근원을 밝히는 칼럼 성격의 글이 어우러져 그의 탐구가 집대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세상을 떠난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가 지금, 여기에서 출판되고 사랑받게 된 것은 한국 독자들의 명백한 요구와 책의 내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2010년대 후반 한국에서 ‘자존감’은 ‘힐링’을 잇는 도서 시장의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 여성이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이성과의 만남에 집착하는 것도, 친구와 갈등을 빚는 것도 전부 자존감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캐럴라인 냅은 이미 20여 년 전, 자존감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묶인 서로 다른 여성의 욕구들을 보았다.


책은 르누아르의 여성 누드화에 관한 짧은 글로 시작한다. 오늘날의 사회적 기준으로는 풍만해 보이는 몸매가 밝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고, 이들은 완전한 기쁨으로 충만해 보인다. 그러나 르누아르가 여성들에게서 찾았던 충만한 내면은 20세기, 21세기 여성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캐럴라인 냅이 거식증을 겪던 20대, 그러니까 1970년대 후반 미국(백인) 여성은 전례 없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할 자유와 권리를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육체적으로는 작아지고 날씬해져야 한다는 미디어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자유가 한꺼번에 주어지면서 캐럴라인은 방황했고, 굶기를 통해 욕망을 통제하면서 안정감을 느끼고자 했다.
 

 

“영혼보다는 몸에 관해 걱정하는 것이 더 쉽고, 문화가 여자들에게 제시하는 좁은 정체성의 틈새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 처음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쉬우며, 사회적으로 승인된 욕망의 제단에서 예배하는 것이 모든 열정의 표현과 모든 욕구의 만족까지 고려해 자신만의 제단을 건설하는 것보다 쉽다."

 

- p. 108

 

 

너무 많은 자유는 사람들이 오히려 피로감과 압도됨을 느끼게 한다. 배우자를 선택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직업을 선택할 자유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선택지가 너무나 많고 선택에 따르는 필연적인 실패와 한계를 마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들은 그 모든 자유에 관한 불안을 하나로 통일한다. 그것이 성이든, 음식이든, 쇼핑이든. 그러면 진짜 문제들에 대한 불안은 사라지지만, 이제는 그 하나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캐럴라인은 이를 여성들이 잘하는 `욕망의 수학`이라고 명명한다.

 

미디어에서 비추는 비현실적인 몸매의 여성들은 현실의 여성들이 가진 자기 모멸에 구체적인 형체를 부여하고, 자기혐오를 내재화하도록 만든다. 이는 뿌리 깊은 여성혐오(misogyny) 문화로부터 비롯된다. 생명을 잉태하는 힘을 가진 존재로서 여성은 남성 권력에 위협이 되고, 통제의 대상이 된다.


여성은 부피를 줄이고, 관리하지 않으면 유해한 무언가가 흘러나온다는 공포 마케팅에 수없이 노출된다. 단지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여성들은 털을 깎고, 울퉁불퉁한 살을 없애고, 체취를 가려야 한다. 무서운 것은 내재화된 혐오가 개인의 소망과 분리되지 않을 정도로 깊게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날씬한 몸에 대한 욕구의 기저에는 뚱뚱한 상태에 대한 혐오가 있고, 신체를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분리하는 기조가 있다.


여성들의 이러한 신체에 대한 혐오는 그 항목이 구체화되고, 이를 경험하는 여성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진다. 나 역시도 온갖 근육과 살에 이름을 붙여 가꾸어야 할 것들을 하나둘 늘리는 문화에 반감이 있었다. 헬스장에서 마주친 10대 아이들이 승모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과연 승모근과 승마살과 힙딥과 그 모든 `없애야 하는 것`들이 도대체 언제부터, 몇 살 때부터 유효했던 것인지 생각하며 한동안 충격에 빠진 적도 있다. 전 세계의 미의 기준이 다르다지만, `없애야 하는 것`들을 미워하는 언어가 대체로 비슷한 것도 무섭고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굶음으로 감정의 허기를 채우고 통제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개인들은 어떻게 다시 건강한 삶, 충만한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캐럴라인 냅은 문제에 대한 이해를 넘어,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새로운 방법을 기꺼이 시도해보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캐럴라인은 정신분석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제에 대한 이해와 탐구가 곧 해결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고, 무엇이 재미있느냐고 묻는 상담사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상담사의 말대로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찾았을 때, 그는 그토록 멀리했던 음식을 음미하고 즐기며 비로소 고통에서 한 걸음씩 멀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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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냅의 문장들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책을 요약한 내용을 읽는 것과 책을 읽는 체험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맞아, 맞아를 외친 사람들이라면 책을 읽으면 더욱 그럴 것으로 예상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성학에 관심을 막 두기 시작한 이들에게는 여성이 겪고 있는 차별의 뿌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이미 여성학의 다양한 논의를 습득한 사람들에게는 여성들이 인생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언어를 습득하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의 머릿속에만 존재해온 목소리를 하루아침에 떨쳐낼 수 없다는 것도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들이 실상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릿속의 목소리를 반박한다면 한 걸음씩 르누아르가 그렸던 충만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부디 많은 이들이 굶지 않고도 건강하고 강한 사람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바디프로필과 온갖 다이어트 요법의 시대에 완벽한 신체에서만 행복을 찾지 말고, 다양한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공적인 전쟁터들이 오늘날에는 사적인 전쟁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두 전투에 적용되는 역학은 대체로 동일하다. 무엇이든 당신을 몸과, 자신과, 다른 여자들과 연결하는 것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빈 곳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 p.311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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