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500배 현미경으로 본 나 [사람]

너무 가까이서 본 '불친절한 나'
글 입력 2021.06.0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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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난히 아침부터 평온함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메신저를 확인하고, 일어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침으로는 어제 배달시킨 와플을 간단하게 먹고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머리가 아파올 즈음 엄마와 함께 유퀴즈를 시청하며 점심을 차려 먹는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설거지를 하는데, 어릴 때는 몰랐던 엄마의 노고를 더욱 깊게 실감하곤 한다. '먹고 사는 것의 시작과 끝은 설거지구나.'

 

오늘은 5월 한달 동안 인턴으로 일한 첫 월급이 들어왔다. 아침에 띠링- 알람음이 울리자 동물적인 반응으로 바로 메세지를 확인했다. "아싸" 한 마디를 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 뛴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다시 오늘 해야할 일을 상기하고 자리에 차분히 앉는다. 돈을 받은만큼 그리고 앞으로 받을 만큼 내 몫을 해야한다는, 기분 좋으면서도 압박감이 느껴지는 모순적인 현실을 떠올린다. 물론 돈을 받는 여부를 다 떠나서 나의 성장에 직결되는 활동이라 생각한다면 긍정적인 마음뿐이겠지만. 막상 사회에 들어와 '업무'라는 것을 경험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없는 유토피아는 상상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었다. 사회 초년생이라 그런 것인지, 이 업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인지, 아니면 원래 머리 아프고 복잡한 것이 정상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복잡한 생각과 달리 유난히 평온하게 흘러가는 오늘을 보내며 오랜만에 나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3월달 초반쯤 휴학 생활에서 처음으로 도전한 토익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번아웃이 왔을 때 지금과 비슷한 톤으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그때는 시험 그 자체에 싫증을 느끼고 잠시 쉬어가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라는 사람 그 자체에 한가득 물음표를 던지는 날임을 실감한다.

 

 

 

500배 현미경으로 본 나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지금껏 받은 질문 중에서 가장 어려웠다. 어려웠던 이유는,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어디까지 얼마나 아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 싫어한다, 왜?' 정도까지는 생각해 보았지만 '얼마나?'를 숙고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지표로는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 중심에는 '역할'이 자리한다. 예컨대 부모님의 딸, 동생의 언니, 조부모님의 손녀, 연인의 여자친구, 친구로서의 나, 선생님으로서의 나, 인턴으로서의 나, 더 나아가 이웃으로서의 나, 지구 시민으로서의 나 등등. 이 외에도 취미로 비추어볼 때는 달리기를 하는 나, 댄스를 하는 나, 글쓰기를 하는 나, 음악 감상을 하는 나, 유튜브를 보는 나. 이 외에도 많은 기준과 관점에서 나라는 사람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관점이 빠졌다. '스스로를 대하는 나'다.

 

 

[크기변환]현미경.jpg

 

 

많은 것을 뒤로하고, 나는 '스스로를 대하는 나'에 대하여 잊고 지낸 역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계기는 현미경이다. 인턴 업무에서 현미경을 쓸 일이 종종 있는데, 어떤 것이든 500배로 확대해 이곳저곳 관찰하는 재미와 놀라움이 가득하다. 그러던 중 문득 뒷머리 두피에 현미경을 갖다대 보았다. 관찰이 시작된 순간, 잠시 망각했던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는 모습을 보았다.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뒷머리를 긁는 습관이 있다. 지금은 외관상으로 큰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심리적 불안정함이 극심했던 중고등학교 때는 남들이 보고 깜짝 놀랄 정도로 뒷머리와 뒷목의 피부상태가 심각했다. 20살 이후부터는 이 습관이 급격히 줄어들어 머리를 시원하게 묶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스트레스를 느끼면 뒷머리로 손이 가는 버릇을 아예 끊어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500배 현미경으로 뒷머리 두피를 최초로 보았을때, 나는 내가 여전히 아파왔음을 깨달았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지만 2배, 10배, 100배, 아니 500배로 확대해 바라본 나의 두피는 여전히 지난날 스스로에게 남긴 상처가 남아있었다. 건드리지 않은 정수리의 두피는 아주 깨끗하고 맑았지만, 10년이 넘게 손을 댔던 뒷머리의 두피는 차마 계속 보기가 힘들었다.

 

두피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손을 아예 안 쓴 것은 아니다. 피부과에 가서 뒷목에만 20방이 넘는 침을 맞은 적도 있었고, 약을 처방받아 먹거나 연고를 바른 적도 많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손이 문제였다. 결국 내 스스로 계속 피부 장벽을 무너뜨리고 괴롭힌 것이다. 뭉쳐있는 감정을 밖으로 배설하지 못하고 나를 긁어내기만 하며 감정의 파도를 가라앉히기만 했다.

 

다시, 앞서 이야기했던 스스로를 대하는 나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불친절'했다. 남들에게는 소중하다, 응원한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그런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다.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앞으로의 여정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말만으로, 생각만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진짜 나를 치유할 방법을 찾고 행할 것이다. 이제 스트레스를 받아도 안일한 생각으로 손을 올리지 않겠다. 그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예컨대 손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10에서부터 1을 외치거나, 그냥 연고를 발라버리거나, 한 문장이라도 글을 쓰는 것이다.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두피에 상처가 있으면 머리를 감을 때도 너무 뜨거운 물로 헹구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평소 40도에 가까운 뜨거운 물로 씻었던 습관도 고쳐야겠다. 정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나를 치유하고 아끼고자 한다.

 

나에게 충분히 노력한 후 다시 만날 500배의 내가 궁금하다. 다음번에 만날 500배의 나는 부디 '친절한 사람'이 되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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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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