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떠남과 머무름을 노래하는 밴드, 호아 – 꽃 [음반]

글 입력 2021.05.3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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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대화의 희열>을 통해 유희열은, ‘음악의 힘은 지표식물처럼 인생의 한 스냅샷을 꺼내 주는 일에 있을 것’이라 말했다.

 

시절이나 감정을 공유했던 음악 하나에 물 밀려오듯 삶의 몇몇 구절이 쏟아져 내릴 때가 있다. 말이나 글로 형용하기 어려운, 언어 이전의 감각에 온몸이 잠식되는 경험은 제법 신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때로 음악 스트리밍 어플에 접속해 연도별 또는 월별 차트 속 몇몇 곡을 재생해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 있다.

 

그러나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시절로 가는 길도 있다. 가본 적 없는 누군가의 삶을 가만 듣다가 종국에는 나를 주절주절 꺼내놓게 되는 것. 호아의 음악이 그러하다.

 

 

호아_정규앨범_커버.jpg

 

 

언젠가부터 글을 쓰기에 앞서 작은 다짐을 품는다. 글에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목표. 글이 두려울 때가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열했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지만, 그 시절의 혼란과 공포는 글을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어떻게’ 말하는지에 가두었다.

 

두려웠으므로 경직된 자세로 썼다. 겁을 먹고 적어 내려간 글자들은 굳어있었고 문장은 쌓여 문단이 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도리어 샤워를 할 때 또는 멍하니 앉아 있었을 때 – 그러니까 글을 쓰려고 하지 않을 때 – 좋은 이야기가 나왔다. 그 시기를 가까스로 지나고 나서야 괴로움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호아의 음악은, 과거에도 지금도 상상하는 글과 나의 이상적인 장면에 가까워지게 한다. 뱉지 못하는 문장을 느리게 오래 우물거리는 힘, 그 시간을 인내할 줄 아는 용기와 믿음, 무엇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욕심.

 

임진화, 김규목, 김휘, 정종범 총 네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2016년 정식 활동을 시작한 호아는 2021년 2월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호아는 이번 앨범을 이전까지의 호아 음악의 색을 총망라한 앨범이라 이야기했다. 모던함부터 빈티지함까지 다채로운 음악적 스펙트럼 그리고 호아의 시그니처인 4인 보컬의 합을 이미지화한 듯한 앨범 커버를 통과해 1번 트랙부터 11번 트랙을 음미해보자.

 

 


‘새벽’에서 건네는 ‘안녕’



1번 트랙 <안녕>과 2번 트랙 <새벽>은 한 곡 같은 두 곡이다.

 

호아는 극적으로 변하는 전개를 강조하기 위해 각각 1분 55초와 1분 41초의 두 트랙으로 나누되, 하나의 곡을 염두에 두고 <안녕>과 <새벽>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안녕>에서 <새벽>으로 옮겨가는 찰나의 순간의 멎음에 집중하게 되는 묘미가 있는 두 곡이다.

 

호아가 시도한 새로운 형식은 음악에 대한 감상과 이해를 확장한다. 안녕과 새벽. 두 단어는 각각 독립적인 의미로서 존재하지만, 때에 따라 ‘안녕, 새벽’ ‘안녕과 새벽’과 같은 방식의 한 문장 또는 하나의 트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호아의 <안녕>과 <새벽>은, 두 곡 각각의 존재감 그리고 두 트랙을 연이어 들을 때 경험할 수 있는 합(合)의 이미지를 동시에 구현하며 다채로운 서사를 노래한다.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지만

헤매도 다시 갈래

 

- 호아, <안녕> 중에서

 

 

아직 먼 길을 걸어 가야

다시 아침이 밝아올 날

난 알 수 있을까

 

- 호아, <새벽> 중에서

 

 

호아의 [꽃]이 건네는 ‘안녕’은, 첫 번째 정규앨범의 첫 번째 트랙에서 건네는 처음의 인사면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인디밴드가 남겨두는 끝의 인사기도 한 중의적 의미로서의 ‘안녕’이다. 하지만 인사 뒤로 들리는 최초의 목소리에는 모종의 단단함과 확신이 묻어있다.

 

‘떠나’ 려는 발걸음, 헤매도 다시 갈’ 것이라는 분명한 의지, 그리고 ‘Todas las cosas tienen remedio si no es la muerte (‘죽음만 아니라면 모든 것엔 방법이 있다’는 의미의 격언)’.

 

 


‘아직도 그때로 지금도 그대로’ 머무는 ‘꽃’



과거 모 인터뷰에서 호아는 그들의 음악을 ‘새로운 익숙함’이라 표현했다.

 

상충하는 두 단어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매력적이다. 앨범 [꽃]도 그러하다. 가령 포문을 여는 두 곡을 통해서는 ‘떠나는’ 발걸음을, 그러나 걸음 곳곳에서 ‘머무르기’ 위해 애쓰는 마음들을 엿보았다는 점에서 [꽃]의 주제적인 화자로서 ‘떠나면서 머무르는’ 사람을 떠올렸다는 점이 그러하다.


 

열흘 붉은 꽃 없다지만 그 씨앗은 모진 계절들을 견디며 봉오리를 맺고, 그렇게 피어난 꽃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중략)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 [9호선에는 신발을 벗고 타라] 발매 후 지금까지 정규 1집의 발매를 미뤄온 것은, 다시 오지 않을 1집을 조금이라도 완벽한 형태로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사라져가는 주변 동료 뮤지션들을 바라보며 저희는 인디밴드가 얼마나 지속하기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언제든 우리도 그렇게 사라질 수 있음을 자각했습니다. 그래서 더는 미룰 수 없던 정규 1집의 발매를 결정했습니다.

 

앨범 안에 무엇을 담을지 각자 나름의 바람이 있었지만,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최초의 전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정규 1집의 마지막 트랙으로 저희의 두 번째 디지털 싱글 [아직도 그때로 지금도 그대로]를 택한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죠. 그 결과 이 앨범엔 우리의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들이 11트랙 가득 담겼습니다.

 

이 앨범은 거대한 탑도, 그럴싸한 동상도 아닙니다. 찾지 않으면 알지 못할 어딘가에 핀 꽃. 하지만 우린 여기 있습니다. 에필로그를 쓰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프롤로그를 여러분께 바칩니다.

 

- [꽃] 앨범소개글 중에서

 

 

노을진 동네

어지러이 수놓은 불빛들 따라

떠날 수 없는 작은 사람들

그 속에서 피운 꽃 하나

 

- 호아, <꽃> 중에서

 

 

난 아직도 그때로 지금도 그대로

난 아직도 그때로 지금도 그대로

 

- 호아, <아직도 그때로 지금도 그대로 (Album ver.)> 중에서

 


화자 즉 호아가, 떠남과 동시에 머무르려고 하는 곳은 호아다. 음악 안에서 호아라는 인격체는 존재를 끊임없이 발화한다.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꽃>을 통해 ‘떠날 수 없는 작은 사람들’ 이라는 복수의 화자를 떠올린다. 특히 다른 사운드 없이 밴드 호아의 4인 하모니로 채워진 마지막 코러스가 인상적으로 남은 이유도 있겠다. 4인의 목소리를 합하여 이야기하는 바는 누구에게나 있는 꽃 한 송이가 언젠가는 피어날 것이라는 따뜻한 바람이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아직도 그때로 지금도 그대로 (Album ver.)>는 2016년 발매된 싱글 곡과 동일하다. 호아 색의 시작점이라 들어갔다는 부연 설명은 앨범이 향하는 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2016년과 2021년 각각의 <아직도 그때로 지금도 그대로 (Album ver.)>을 함께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끝에서 시작을 돌아보는 시선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We are at ‘High Tide’, ‘In My Eyes’



 

You know what

No matter what

I’ll remind your lights

I believe

what you need was to be

let you shine

 

- 호아, < High Tide > 중에서

 

 

< High Tide >의 제목은 밀물이 가장 높은 해면까지 들어오는 현상을 일컫는 만조(滿潮)의 영어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적당히 여유로운 걸음 박자와 잘 어우러지는 곡에 맞춰 산뜻한 걸음을 내디딜 때면, 파도의 균형 잡힌 물결 모양을 상상한다. 연주 사이의 간격을 비교적 길게 만들었다는 곡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것도 그러한 이유다. 파도를 타는 기분으로 이 곡을 듣는다.

 

이와 같은 물의 이미지에 빛의 이미지를 결합함으로써 물결은 빛을 받아 반짝인다. ‘light’와 ‘shine’, ‘bright’으로 구현되는 빛의 이미지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있다. 하지만 빛의 존재가 누구에게나 잠재해있음을 말하는 눈빛에는 확신이 있다. 그 눈빛은 타인 그리고 호아 자신을 향하는 확언이다.

 

‘You will find your high tide’. 나는 만조로 가기 위해 파도에 올라탄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파도 위에서 ‘go and lie down’, 몸을 맡기고 누워 부력으로 몸을 띄울 수 있다. ‘It could be down in many times’. 만조로 향하다가도 수차례 밑으로 꺼지는 움직임을 느끼며 그럼에도 빛으로 가고 있다는 걸 되뇐다.


 

Everytime in my life

You’re so shine

over my eyes

 

- 호아, < In My Eyes > 중에서

 

 

< High Tide >와 < In My Eyes >를 함께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두 곡은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이 있다. < High Tide >보다 신나고 빠른 템포의 < In My Eyes >는 < High Tide >와 일맥상통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찬가지로 < In My Eyes >에서도 빛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하지만 < High Tide >의 빛은 미래형이었던 반면 < In My Eyes >의 빛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빛나는 사람을 향한 하나의 앨범 내 다각의 시선은, 메시지에 유기성과 입체성을 동시에 더한다.

 

好我, 나를 좋아하는 나 또는 당신을 좋아하는 나의 시선으로, 우리는 언제나 빛난다. ‘Everytime Everytime’. 그렇게 믿으며 나와 당신은 유대를 이룬다. ‘Everyone said you’re lying but I realized you authentic’. 적어도 나의 눈에는 - ‘In my eyes’ - 빛을 품은 사람이라는 최면 같은 신호를 호아는 송출한다.

 

‘I’와 ‘You’ 그리고 ‘우리’까지 여러 화자와 청자가 등장하는 [꽃]에서, 앨범의 커버 이미지처럼 다채로운 인물들 그리고 유대의 끈을 발견한다.

 

*

 

 

 

 

 

윤희지.jpg

 

 

[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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