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올해의 생일과 봄을 보내며

글 입력 2021.05.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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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하면 밝고 선명하고 화창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월은 찬란한 봄의 절정이며 더불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과 같이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축하하는 날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월이 되면 각종 기념일에 관한 여러 노래들이 자동으로 흥얼거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오월에 대한 이야기 한 가지만 더 덧붙여 보자면, 오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일은 세상 모든 생명의 싹이 움트는 계절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꽤나 텁텁한 날이다. 생일이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꼭 나만 이렇게 달갑지 않은 것만은 아닌 듯해 이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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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라는 전제는 괜히 슬퍼진다.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되고, 누군가에 대한 나의 부재를 씁쓸히 확인하게 되기도 하니까.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365일 중 하루가 나에게만 의미 있는 날이 된다는 사실도 못내 낯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그에 따라 생일도 하필이면 매년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관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일 년을 누구보다 잘 보냈다고 증명해야만 할 것 같다. 내가 작년보다 훌쩍 자라 나의 몫을 온전히 해내고 있는지, 혹은 앞으로 해낼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음은 곧 조급함으로 변모하여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마치 내 양심을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생일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불현듯 궁금해진다. 인간은 언제부터 각자의 탄생일을 기념해 왔는지, 언제부터 케이크에 초를 꽂고 소원을 빌며 촛불을 꺼뜨리기 시작했는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종교적 이유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촛불을 끄는 행위 역시 악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만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 그 언저리를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종종 작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확신 없는 축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이 되어갔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우연히 어렸을 적 소중히 여기던 '보물상자'를 발견했다.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다 모아두었던 이 비밀 상자는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방구석 한편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릴 적 생일에 관한 기억 하나와 아주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을 꺼낸 물건은 바로 생일 파티 초대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생 때까지는 형형색색의 색종이를 오리고 반짝이는 스티커를 붙여가며 성의껏 초대장을 만들어 반 친구들에게 전달하곤 했었다.

 

그렇게 생일 전 주부터 떠들썩하게 광고 아닌 광고를 하다가 생일날이 되면 동네의 놀이터에 모여 뛰어놀며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필통이나 과일 지우개 같은 것들을 선물 받았었다. 마치 그날 하루의 주인이라도 된 냥 우쭐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생일을 반갑게 맞이하던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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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시간이 빠르게 흘러 올해로 2n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생일이라는 걸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친구들은 고맙게도 시간까지 맞춰가며 긴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왔다. 돌아보니 이번 생일은 유독 더 고요하게 지나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처럼 축 늘어지거나, 우울하지는 않았다. 아마 마지막으로 온 연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특별할 이유가 없어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날이 저물어 갈 때쯤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확인하자마자 조금 놀랐다. 기대해본 적 없는 인물의 연락이었기 때문이다.


내 예상 밖의 인물이 불똥처럼 튀어 그날 하루 전체를 활활 불태웠다. 2021년 올해의 생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 어느 해보다도 고요하지만 동시에 꽤나 뜨거운 온도로. 지난해의 숱한 우울과 체념을 떠올려보았다.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축하하지 못하고, 궤도 밖을 맴돌던 날들. 결국 나는 고작 잊히고 싶지 않아서 그토록 슬펐던 걸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다지 절망적이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열두 시 땡 하자마자 문자를 보내준 친구들, 어떻게든 내 취향에 맞는 선물을 하고 싶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편지와 선물들이 다시 보인다. 그들의 축하에는 자격이 존재한 적 없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 생일을 구실로 오랜만의 연락에 주저함이 없었다면 그걸로 그만이다. 내 행복에 대단한 의미나 뚜렷한 근거가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껏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받은 모든 생일 편지들을 한데 모아두었다. 들여다보지 않은지 한참인 그것들을 오래간만에 펼쳐 읽어보았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 얼른 만나서 놀자는 말, 내가 항상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어지럽게 쏟아져 있는 색색의 편지지를 넘기면서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삶은 '단짠단짠'인 것이 확실하다고. 내년에는 또 어떤 마음이 들지는 몰라도, 다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그때도 여전히 함께하고 있었으면 참 좋겠다.


모처럼 아주 흐릿하지만은 않은 오월, 그리고 봄이 이렇게 또 지난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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