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립서점 '카프카' [공간]

글 입력 2021.05.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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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서점에서 진행한 공모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글의 주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많이 부족했고 시간도 촉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했었다. 역시나 떨어졌지만 내게 독립서점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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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명소 객리단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독립서점 카페 ‘카프카’.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에서 따온 이름일테다. 책 '변신'은 어린 내게 큰 충격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아직도 주인공이 바퀴벌레로 변신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그때의 분위기, 말로 설명할 수 없던 상황, 그 문체가 기억에 남는다.


녹슨 철제로 만들어진 간판, 문을 둘러싼 넝쿨, 민트와 초록색의 그 어딘가의 색으로 이루어진 입구는 묘했다. 요즘에는 자주 볼 수 없는 흐트러짐, 세월의 흔적들이 과거의 향수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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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부터 반겨주는 책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또 한 번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들은 여기로 오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을까? 어떤 경험을 했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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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이 서점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책이 많을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책이 정말로 많았다. 좋았던 건 책을 사서 보는 구역과 헌 책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서 헌 책 구역에 꽂혀 있는 책은 맘껏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외에도 곳곳에 재밌는 활동들,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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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에는 이처럼 ‘시 필사 테이블’이 있었는데 마치 등대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오래된 책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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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상 위에는 만년필과 연필들이 공책과 함께 놓여있었다. 이날은 처음으로 해본 것들이 많았는데 만년필을 잉크에 찍어 글을 써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년필의 필기감이 좋아서 나는 조용히 이날 읽은 책의 한 구절을 적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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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바로 이런 ‘시 항아리’가 있었다. 내가 적은 글을 넣으면서 다른 쪽지도 뽑아서 읽어보았다. 시의 한 구절이라든지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낙서 같은 게 적혀 있었다. 일종의 포춘쿠키 마냥 지금 뽑히는 게 나의 하루를 점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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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에는 다양한 종류의 연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연필을 썼던 때를 생각해 보면 굉장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진급할 때 나는 연필을 졸업하고 샤프에 입문했다. 가볍고 잘 나오는 샤프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투박한 연필은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었다.

 

그런데 한 번쯤 투박하고 오래된 물건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일종의 올드스쿨 감성이랄까. 비치해둔 연필을 몇 번 쓰니 잊고 있던 연필의 감각이 떠올랐다. 또박또박 꾹꾹 눌러서 그림일기를 쓰던 그때가.

 

나처럼 연필을 잊고 있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취향이 될 수도 연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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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 않은 카페를 이곳저곳 탐방한 뒤에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서점과 카페를 같이 해서일까 커피 한 잔에 책의 한 구절이 따라왔다. 그 작은 구절이 이 카페의 감성을 온전히 이해하는 걸 도와주었다.

 

독립서점의 장점은 그동안 몰라서 보지 못했던 책을 발견할 수 있는 점인 것 같다. 옷으로 치자면 편집숍 같은 느낌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감성의 책들을 큰 힘들이 지 않고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건 마치 숨겨진 동굴에서 보물을 마구 캐는 기분이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공간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서점은 평범한 골목에 마법 공간처럼 존재하고 있었고 내게 그곳은 신비한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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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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