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루살렘과 광주, 아이히만과 그들

글 입력 2021.05.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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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어느 날, 한나 아렌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뉴요커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비용을 지원을 해줄 테니 예루살렘에 가서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그 과정을 뉴요커 잡지에 연재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아돌프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는 그 이름을 가만히 되뇌어 보았다. 그녀는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일명 유대인 학살자. 인류 최대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핵심 인물 중 한 명. 그런 사람이 15년의 도피 생활 끝에 드디어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고민 끝에 뉴요커의 제안을 수록했다. 떠나기 전날, 여행 가방을 침대 맡에 내려놓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자그마치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그 악마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악행을 저지르도록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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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의 정의의 집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의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정 안에선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번 재판은 단순히 한 명의 전범을 처벌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인간에 대한 단죄이자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하는 정의의 메시지가 될 터였다. 그렇기에 이 재판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잠시 후, 아이히만이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유대인 학살자라는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체구도 크지 않았고, 근시에 치열도 고르지 않아 어딘가 모자란 구석도 있어 보였다. 이런 사람이 그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그때 3명의 판사가 입장하고, 재판이 시작되었다. 판사는 아이히만의 죄목을 일일이 나열하며 오늘 재판이 열린 경위를 설명했다. 판사가 아이히만을 바라보며 물었다.

 

“피고는 15개 죄목으로 본 재판에 기소됐습니다. 피고는 이를 인정합니까?”

 

그리고 그 물음에 아이히만은 이렇게 대답했다.

 

“판사님, 저는 무죄입니다.”

 

아이히만이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독일의 군인 공무원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공무원으로서 상부가 시킨 일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아이히만의 주장에 재판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일부는 그가 미쳤다고 했다.

 

결국 재판부는 정신과 의사 6명을 불러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에 대해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모두가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가 멀쩡하다는 소견을 내놓은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의사는 아이히만의 정신이 자신의 정신 상태보다 더 건강하다고 말했다. 아이히만 같은 정신 유형은 우리 주변의 좋은 이웃,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의사도 있었다.

 

이러한 결과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비롯되어 나온 책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관하여’. 이 책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했다. 누군가의 좋은 이웃,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은 어떻게 악마가 되는가. 과연 무엇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을 악마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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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올해도 광주에서는 그들을 위한 추도식이 열렸다. 올해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 41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전두환의 집권을 위해 1980년 5월 18일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에 광주에서는 많은 대학생들이 전남대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계엄군이 장악한 상태였다. 계엄군은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을 막아섰고,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분노한 학생들은 금남로로 행진하여 독재 타도와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계엄군은 이번에도 강경 진압을 시도했다. 진압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는 물론, 시위와 무관한 시민들까지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조리 구타하고 연행했다. 심지어 일부 계엄군은 인근의 고등학교에까지 난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만행에 결국 광주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19일 오전, 전날의 비극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계엄군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5.18 민주화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결론적으로 5월의 광주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4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 비극은 현재 진행 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아직 생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더디지만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5.18 민주화 운동 관련 기록물이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고,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를 왜곡하는 행위를 응징하는 관련 특별법도 시행되었다. 지난해 11월엔 전두환 씨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故 조비오 신부의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이라는 1심 판결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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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와 별개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살펴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바로 계엄군에 대해서다. 조금만 기록을 찾아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들은 힘없는 어린아이와 노인, 심지어 임산부에게까지 무자비하게 총칼을 휘둘렀다. 지난밤엔 몇 놈을 대검으로 통쾌하게 찔렀노라고 자랑삼아 말하던 이가 있었다. 도망친 시민을 향해 아까운 사냥감을 놓쳤다며 탄식하던 이도 있었다.

 

나를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건 당시 진압에 참여했던 계엄군 중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일반 대학생들도 상당수 끼어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들도 입대 전엔 당시 많은 대학생들이 그랬듯 비뚤어진 세상에 대해 의문과 반감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또래 대학생들을 향해 가혹한 폭력을 휘둘렀다. 동생뻘 되는 아이들과 부모 세대의 어른들을 상대로 학살극을 벌였다.

 

아무리 당시 지휘부의 선동과 날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의 생애를 통째로 앗아간 그들이 전역 후에 사회로 돌아가 평범한 생애를 보냈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치가 떨린다. 누군가의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이웃 노릇을 했다는 게 나는 너무 역겹다.

 

 

참나무 숲 우듬지 사이로 오렌지색 광선을 내쏘며 해가 저물어갈 무렵, 누나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는 데 지친 나는 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어. 나를 죽인 사람과 누나를 죽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았다 해도 그들에게도 혼이 있을 테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내 몸을 버리고 싶었어. 죽은 그 몸뚱이로부터 얇고 팽팽한 거미줄같이 뻗어나와 끌어당기는 힘을 잘라내고 싶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 <소년이온다> p.51~52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 <소년이 온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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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어떻게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악마가 되었을까. 1980년대 당시 평범한 20대 청년들은 어떻게 무고한 시민들을 도륙하는 살인마가 되었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거대한 악으로 지칭되는 어떠한 존재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보다 특별히 악랄한 누군가에 의해 그런 비극이 벌어졌다고 말이다. 바로 이게 우리가 홀로코스트와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말할 때 히틀러나 전두환 같은 존재를 떠올리는 이유다.

 

하지만 아이히만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악이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오히려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다. 그게 악의 평범성이다. 애초에 아이히만이 나치당에 가입한 것도 어떤 대단한 목표가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냥 생계를 위해 가입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악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한나 아렌트는 그 해답을 무사유에서 찾았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것.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 악은 거기서 기인한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 한나 아렌트

 

 

1941년, 폴란드의 한 수용소를 방문한 아이히만은 자신이 저지른 일의 실체를 목격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곳에선 아이히만이 보냈던 무수한 유대인들이 매일매일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아이히만은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죽어간 유대인들에 대한 죄책감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동요는 불과 1년 만에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계기는 반제 회의였다. 베를린 외곽 지역에서 열린 나치당 고위 관계자 회의에 서기로 참여한 아이히만은 아무런 감정 없이 유대인의 처리 계획을 언급하는 그들을 보며 생각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모든 건 그저 총통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고, 나라를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인 자신은 그저 국가가 내린 명령에 충실히 따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자 이제껏 그를 괴롭혔던 죄책감과 회의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이제 아이히만에겐 윤리적 문제의식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국가가 내린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니까. 그렇게 아이히만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는 진짜 악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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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만약 악이 그렇게 특별하고 대단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당시의 모든 독일 국민들에겐 약간의 면죄부가 주어진다. 왜냐하면 모든 책임 소재를 히틀러 같은 일부 악인들에게 떠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을 말하는 순간, 책임은 일반 독일 국민들에게도 부여된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발언도 하지 않은 그들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다. 그들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들은 침묵으로써 홀로코스트에 동조했다.

 

 

나는 당한 사람도 당한 사람이지만 내가 매일 보는 동료들이, 내 옆의 완전 보통 사람들이 이러는 게 난 이게 더 안 되요. 받아들이는 게. 저 사람들이 죄다 처음부터 잔인하고 악마여서 그러겠어요? 하다 보니까, 되니까 그러는 거에요. 눈감아주고 침묵하니까. 누구 하나만 제대로 부릅 뜨고 짖어주면 바꿀 수 있어요. - 드라마 <비밀의 숲>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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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전두환 씨를 비롯해 광주의 비극을 만든 책임자들을 가려내고 처벌하는 건 분명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거대한 악의 그림자 속에 숨어든 작은 악들을 우린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그땐 다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건 모두 개소리다. 허울 좋은 핑계다. 우리에겐 언제나 선택권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잔인함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무슨 말을 갖다 붙여도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건 그저 범죄 행위다.

 

물론 백번 양보해서 당시에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해도, 그래서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지난 40년간 무수히 주어졌다. 하지만 양심선언 사례를 제외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건넨 계엄군은 지금까지 고작 1명뿐이다. 그나마도 올해 3월에 사과의 뜻을 전해왔다. 당시 투입된 군인들만 3000명이 넘는다는데 그중 고작 하나가 이제 사과를 했을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작은 악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익명 속에 숨어들어 책임을 회피하는 그들을, 침묵하는 그들을 결코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들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이 작은 악들은 계보를 이루어 현재와 미래에 또다른 비극을 초래할 지 모른다. 우리 주변에 스며든 악의 평범성을 입을 열어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걷어 양지에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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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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