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극을 통해 현실을 보다, 연극 '유리동물원' [공연]

연극 <유리동물원> 비평
글 입력 2021.05.2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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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유리 동물원’은 20세기 미국 최고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으로, 연기 전공생들에게는 ‘바이블’로 불린다. 주문을 외우는 듯한 특유의 반복법, 리얼리스트로서의 섬세한 기질과 예리함이 돋보이는 작품은 1944년 시카고 초연 이후 다음해 브로드웨이에서 16개월간 공연되었다. 작품은 뉴욕 드라마 비평가 서클 어워즈 최우수 미국 연극상, 시드니 하워드상, 도널드슨상을 수상했다. 뮤지컬 ‘원스’, 연극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등으로 잘 알려진 존 티파니가 연출한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윌리엄스의 첫 번째 성공적인 연극으로, 이후 윌리엄스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극작가가 되었다.

 

*

 

다른 공연예술과는 다르게 비교적 연극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옥탑방 고양이>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외국 연극 작품인 <유리 동물원>을 보게 되었다.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와 공기로 인해 좌석에 앉아있는 것이 힘들었다. 공연이 시작될수록 연극적 환상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속의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각기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그 비극적인 감정을 모두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극의 배경이 되는 곳은 윙필드 가의 셋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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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필드 가의 셋방은 아파트 건물의 뒤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하층중산계급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인구과잉의 도심지에 사마귀처럼 돋아난, 마치 세포 같은 주거단위가 벌집처럼 밀집되어 있는 거대한 빌딩 중 하나다. 그리고 이 하층중산계급은 미국사회에서는 최대의, 기본적으로 노예화된 계층을 형성하고 유동과 분화를 피하며 무의식적, 자동적으로 행동하는 집단에 끼여 존재하고 기능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

 

 

처음 웃으며 등장하는 아만다는 항상 이런 말을 한다.

 

 

불루 마운틴에서 살던 땐데, 어느 일요일 오후였지 --- 이 엄만 무려 열일곱 명이나 되는 신사분들을 한꺼번에 맞았단 말이다! 그러니 그 신사분들을 모실 의자가 모자랄 지경이었지 뭐냐, 그래서 흑인 하인들을 교회로 보내어 접는 의자를 가져오게 해야만 했었지.

 

 

그녀는 웃고 있지만,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삶에 닥친 비극을 마주하기 싫어 그녀는 웃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매우 감정적이고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로라와 톰에게 자신의 예전의 삶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그들이 그것을 재현해 내기를 강요한다. 로라에게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속기 연습을 하거나 외모를 가꾸라고 한다.

 

 

아니다. 넌 저리 가서 타이프라이터 교본이나 공부하려무나. 아니면 속기연습을 좀 하든지. 발랄하고 예뻐 보여야 해! --- 신사분들이 찾아올 시간이 됐어. (그녀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부엌으로 뛰어간다.) 오늘 오후엔 손님을 몇 분이나 접대할 것 같으냐?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장소가 바뀌었다. 또한, 로라는 절름발이에다 성격 또한 매우 소심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 건네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아만다는 그런 로라가 못마땅하지만, 보이는 진실을 외면한 채 환상 속에서 살아가며 현실을 부정한다.

 

그의 아들인 톰에게는 그의 누나인 로라를 위해 신랑감을 구해오라고 하며, 동시에 공장에서 조금 더 일을 잘하고, 그의 가족을 더 잘 보필하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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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는 과거의 환상을 잊지 못하고, 자신과 가정을 버리고 자신만의 자유와 꿈을 찾아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증오를 갖는 대신, 자신의 두 아들인 로라와 톰을 통해 과거의 시절을 현실에 재현해 나가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톰은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채 공장에서 일하는 삶을 살면서 밤마다 영화를 보러 나간다. 로라는 톰처럼 적극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 자신 또한 아만다의 강요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아만다의 끊임없는 요구에 결국 톰은 자신이 다니는 공장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짐을 초대한다. 신이 난 아만다는 집안 정리를 하고 로라에게 새로운 옷을 사준다. 짐은 학창 시절 로라가 짝사랑하던 남자였다.

 

 

 

 

짐과 함께 식사를 하려는 순간 집은 정전이 되고, 로라와 짐만이 남게 된다. 짐은 로라에게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그녀를 이해하는 듯한 이야기를 해준다. 또한, 그녀가 열등감 속에 살고 있으며, 그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 짐을 사랑하고 있던 로라는 그에 말해 용기를 얻고, 자신의 한계를 깨고 밖으로 나온다. 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웃는 표정을 하고 커다란 몸짓을 하며 자유롭게 춤춘다. 그녀가 비로소 자신에게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행복과 자유도 잠시, 짐은 자신에게 약혼녀가 있으며 곧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을 로라에게 말한다. 로라는 충격받고, 다시 이전의 세계에 침식당한다. 짐이 떠나고 로라, 아만다, 톰 사이의 갈등이 다시 유발된다. 극의 마지막, 톰은 자신들을 버리고 자신의 자유와 꿈을 찾아 떠난 그들의 아버지처럼, 그도 가족들을 떠나 자신의 꿈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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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는 이 가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로라는 연약하다. 작은 비로도 꺾일 수 있는 꽃이다. 이처럼 이 가족의 모습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유리 판을 걷는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곧 로라가 정말 아끼는 유리 동물원을 이루고 있는 유리 동물상에서 나타난다.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리고 작은 충격에도 깨지는 유리상 말이다. 또한, 로라는 이 유리 동물상 중에서 유니콘을 가장 아낀다. 유니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환상이다. 로라가 가장 아끼던 유니콘상은 짐의 실수로 깨져버린다. 그런데, 그 깨진 부위가 정확히 유니콘과 말을 구분 짓는 유일한 ‘뿔’이다. 유니콘의 뿔이 깨지자, 유니콘은 더 이상 유니콘이 아니게 된다. 평범한 말이 되는 것이다. 유니콘의 뿔이 깨지는 순간은 이 가정이 더 이상은 환상에 사로잡혀 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아만다의 환상 속에서 더 이상 로라나 톰이 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공연을 보면서 끊임없이 답답하고 숨이 조여오는 것은 이 가족이 이 모습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현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속에서 계속해서 잠식당하고 있을 뿐.

 

또한 연극을 보면, 이 무대는 단순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대 위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의 재현이다. 아만다는 과거의 환상에 집착하여 과거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 로라는 아만다의 말에 따르는 듯하지만, 심각한 열등감과 소심함으로 인해 하루하루 죽어간다. 톰은 아만다와 직접적으로 대립하며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아만다와 로라를 버린다. 초대된 손님의 짐은 아만다와 로라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하는 존재이다. 마지막으로, 아만다와 로라, 톰을 버리고 떠난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을 떠나버린 사람이다. 극에서는 살아있는 상태로 나오지만, 그것 또한 명확하게는 보이지 않는다. 즉, 그는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데, 마치 그의 존재는 아만다, 로라, 톰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삶, 유니콘과 같다.

 

이를 현실에 대입해보면, 아만다는 기성세대이다. 기성세대 때는 취직하여 회사만 다녀도 삶을 풍족하게 영위할 수 있었으며, 금리 또한 높아 저축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이 현실을 살고 있는 로라와 톰의 가치관과 대립된다. 즉 기성세대와 현 세대의 갈등이다. 기성세대의 사고관은 이미 현 세대에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성세대의 사고관을 현 세대에게 강요하는 순간 갈등은 극화된다. 기성세대의 끊임없는 주입을 받고 현 세대로 대표되는 로라와 톰은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로라는 기성세대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열등감에 휩싸인다. 반면, 톰은 기성세대와 직접적으로 마주하여 대립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간다. 하지만, 그 또한 언제 방향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한 모습이다.

 

이처럼 극을 보면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을 느끼는 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극을 보는 시간이 괴롭기 때문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하지만, 사실주의 지지자들은 관객이 무대 위에 그려진 극의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이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해야지 작가를 비판할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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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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