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느 대학생 인턴의 '일'기 [사람]

글 입력 2021.05.2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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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출근과 퇴근을 했다


 

오늘도 일을 하고 왔다. ‘일’이라고 하니 사회에 지대하게 이바지하는 치열하고 생산적인 활동 같은데, 그렇게 보니 내가 한 게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오늘도 출근 시간에 출근을 했다가, 퇴근 시간에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올해 3월 2일에 인턴 생활을 시작했으니 이제 90일 정도가 되어 간다. 이름을 밝히며 쓰는 글에, 10년 전에 근무했던 회사도 아니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풀어놓을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에 대해 요즘 드는 내 생각을 풀어놓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사회초년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애매한 대학생 인턴의, ‘일’에 대한 단상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도…



인턴을 지원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취업을 위해 인턴 경험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들 하니까,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학교에서 듣고 싶은 수업이 안 열리니 인턴으로 대체 학점을 인정받으려고, 등등.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가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혹시나 일을 하기 무서워서 드는 생각은 아닌지 말이다. “회사에 가는 게 무서우니 도피성으로 익숙한 ‘학교’에 남아있고 싶어 핑계를 대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스스로 들었다. 그래서 일단 한 번은 회사 생활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겪어보면, 이 마음이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닌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어림없지. 회사에 다녀본 지금은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 공부를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대학원은 겪어본 적이 없으니 막연히 ‘회사와는 다르겠지’라는 안일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도 겪어 본 적이 없을 때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질문들이 생기면서 더 모르겠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도, 여전히 모르겠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만 배웠다.

 

 

 

돈을 벌기 전에 했던 다짐들


 

처음 일을 시작했던 3월 중순까지만 해도, 앞으로는 내가 원하는 일, 내게 잘 맞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찾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퇴근 후에 전보다 더 열심히 읽고, 보고, 쓰자는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오후 6시 30분에 퇴근한 후,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나면 어느새 9시가 다 되어 있다. 내일의 출근을 위해서는 12시에는 자리에 누워야 하니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회사에서 내가 한 일이 대단히 생산적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일도 나를 지치게 만들기엔 충분해서,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렇게 읽고 쓰지 않아도, 통장에는 돈이 들어온다. 최저시급을 따져서 받는 월급에도 못 미치지만(학교와 연계된 현장 실습형 인턴이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 어쨌든 태어나 처음 매달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내가 한 번도 모아본 적 없던 액수의 돈이 모인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자 전과 달리, 한 끼에 들여도 되는 돈을 계산할 때 조금 덜 초조해지고, 매일 커피를 사 마셔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때로는 구독하고 있는 OTT 서비스에 올라와 있는 작품인데도 영화관에서 예매해서 보는 사치를 부릴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의 선물을 고를 때 망설임보다 기쁨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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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다짐들은 점점 ‘다짐’이 아니라 ‘다짐했던 기억’으로만 남는다. 일하는 동안 즐겁지 않다고, 퇴근 후에 책 대신 스마트폰을 쥐었다고, 내 통장에 들어왔던 돈이 도로 되돌아 나가는 일은 없다. 내가 원하는 일이든 원치 않는 일이든 그에 대한 보수는 정확하게 내 손에 쥐어지고, 일 밖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일을 시작한 지 고작 90일째에 내 모습이 이렇게 달라지는데, 앞으로 수년을 직장 생활을 하고 난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두렵기도 하다. 언젠가, ‘다짐했던 기억’조차도 흐려지면, 그건 내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이전에 간절하게 원했던 게 흐려져 가고, 새롭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는 이 상황이 점점 행복에서 멀어져 가는 건지, 아니면 그저 새로운 행복이 주어진 것인지 헷갈린다.

 

 

 

일이란 무엇인가


 

걱정과 고민으로 글을 채웠지만 인턴을 지원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경험해본 덕분에 막연한 두려움 하나는 줄었으니까. 그리고 글을 마칠 즈음이 되니 어쩌면 진로 고민 뿐 아니라 인생의 많은 것들이, 결국엔 똥과 된장을 찍어 먹어보며 헷갈려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당연하게도,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지금 뿐 아니라 평생 함께 해야하는 종류의 질문인 것 같다. 인턴 생활은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다. 다른 말로 하면 내일도 출근이라는 뜻이다. 많은 고민을 적었지만 지금 내 고민은 하나다. 내일 지각하면 어떡하지. 내일의 출근을 위해,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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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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