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랍인의 눈으로 바라 본 피카소 - 여자를 삼킨 화가, 피카소

글 입력 2021.05.2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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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술의전당에서 피카소 14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서인지 피카소에 대한 콘텐츠들이 유독 눈에 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띈 콘텐츠는 바로 이번 문화초대다. 이번 문화초대를 통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피카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마주했다. 바로 '아랍인'이 바라본 피카소다.


피카소는 여성편력이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카소의 공식적인 여인으로 밝혀진 것만 11명으로, 그중 2명만이 결혼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외에는 외도를 통해 만났다. 이렇듯 피카소는 여성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많은 작품을 그려냈는데, 동양인인 필자의 눈으로도 당혹스럽고 놀랍게 느껴지는 이 사실이, 동양보다도 성적으로 개방되지 않은 아랍출신인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나에게 있어선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아랍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피카소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말이다.


이런 호기심으로 시작한 독서는, 금세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새로운 형식의 단어, 문장, 문체, 내용, 전개방식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글이 가볍지 않을 거란 사실은 알았지만,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그는 본인의 나라 알제리부터, 에로티시즘, 그리고 카니발리즘의 개념까지 타고 올라가 그 시작을 파헤친다.


책은 228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어 부담스럽지 않은 양이었지만, 그 문장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마치 문장을 해부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아랍권에 대한 배경지식도 없을뿐더러, 피카소에 대해서도 아주 얕은 지식만을 가지고 있어 더욱 어렵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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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 아랍의 미술과 미술관


미술관에 오로지 혼자만 남아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고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미술관을 찾는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프랑스 스톡 출판사가 기획한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에서 출발한다. 출판사는 자각 또는 예술가가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화가 또는 작품들을 모티브로 한 에세이를 쓰게 했다.


그렇게, 저자인 카멜 다우드는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아랍인’으로, 아랍인의 눈으로 피카소를 마주한다. 작가는 아랍의 문화와 피카소에 대한 글을 풀어나가지만, 내게 있어 흥미로운 부분은 이미지와 미술관에 대한 견해였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속이는 행위,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였다.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이자 그것의 파손이었다. 이미지는 이교의 기호, 신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중략)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것의 반대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곧 신이다  (p.55)


미술관은 성전을 통한 신의 말씀에 의해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p.125)


미술관은 평정심에 대한 욕망의 산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격렬한 추억이기도 하다. (p.134)

 


미술과 미술관은 익숙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자연스레 존재하는 것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랍에서 그림은 속이는 행위이자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였으며 미술관은 불필요한 간주로 간주된다. 그들에게 신은 보이지 않는 존재이지만, 그림은 보이는 것으로 반대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과거를 기록하는 아카이빙의 의미에서 미술관에 큰 의의를 둔다. 그림, 혹은 작품 속에 과거의 시간을 담아두고, 현재의 시간에서 그 과거를 바라보며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를 ‘미술관엔 인간의 힘이 발휘되며 박제술을 이용해 과거를 고정하고 죽음 자체를 박제화한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지만, 이를 글로 마주하니 이질감이 들었다.


미술관에 대해 그의 견해 중에 가장 와 닿았던 것은 바로 미술관은 격렬한 추억이기도 하다는 내용이었다. 과거를 간직하고, 기억하는 매개체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미술관은, ‘과거’와 ‘기억’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이 함께하는 곳이 아닐까.



2. 아랍인의 눈으로 바라본 피카소


작가는 그가 하룻밤을 보낸 미술관의 <1932년 피카소, 에로틱했던 해> 전시 제목처럼 ‘에로티시즘’과 ‘카니발리즘’에 초점을 맞춰 피카소의 생애와 작품을 분석했다.

 

 

‘아랍’ 사람이 피카소라는 화가를 바라본다. 피카소는 에로틱하고, 상스럽고, 기괴하고, 불가사의하다. (p.104)


그의 예술은 치명적인 반복을 극복하는 그만의 방식이고, 그의 그림에 나오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은 그의 의례에 참여하는 허수아비들이다.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p.71)

 


몸의 절반을 감추고, 나머지 절반은 태양으로부터 보호하며, 사랑은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 커튼 뒤에 숨어서 비밀리에 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환경에서 자라온 작가는 그가 속한 문화를 오랫동안 살펴본 뒤에야 피카소의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고 신중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편견들을 납득해야 했고, 불편한 노력도 해야 했다.


그런 작가가 바라본 피카소는 참으로 낯설었다. 어쩌면 피카소를 이해하기 위해 편견들을 납득하고 불편한 노력을 해야 했던 작가처럼, 아랍의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입체주의를 형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사물을 다시점과 입체로 표현했다고만 알고 있던 필자에게 에로티시즘으로 분석한 피카소와 그의 생애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낯설었다. 그리고 이 낯섦을 간직한 채 그저 많은 여자를 만나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피카소에 대해 그가 어떻게 여성을 뮤즈의 역할을 넘어 착취해갔음을 깨닫게 된다.


미술을 마주할 때면 ‘화가들의 삶은 왜 이리 평범치 않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기곤 했는데, 이번 책을 통해 피카소의 예술관과 생 또한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

 

이 책은 읽고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아직도 작가의 글은 완전히 이해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서양과 아랍,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라는 매우 상반된 두 세계를 피카소라는 화가를 통해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피카소를 넘어 아랍인의 눈으로 바라본 문화, 종교, 예술 등을 접하게 하며 견해를 넓히는 하나의 기회로 다가갈 것이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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