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나요? [사람]

그냥 잘못하면 잘못을 구하고 용서를 받고 앞으로 잘하면 돼.
글 입력 2021.05.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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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고, 그 사람들로부터 오랜 시간 아물지 않는 상처들이 생겼다. 긴 나날 동안 겨울을 마주했다.


생각보다 좋지 않은 사람들은 짧은 인생 속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생채기가 났고,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을 곱씹었다. 그들과는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티브이에서는 삼삼오오 모인 이들이 왈가왈부하기 좋은 말들을 날것의 그대로 내보내고 있었고,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새와 쥐는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흘렸다. 입과 입 사이로는 수많은 낱말이 문장을 생성해 누군가의 얼룩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경악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던 것이 기억난다. 마치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이 거리를 두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이해를 못 한다고 이야기했다. 왜 항상 사람들은 이렇게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냐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나왔던 수많은 나를 상처입힌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는 그들과 다를 것이라는 마음으로 당당하고도 오만하게 말을 얹으며 살았다.


나는 나의 눈이 나의 육체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미성숙함은 주변의 것들을 금방 흡수하는 성질을 가졌다고 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온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사람의 그 싫은 부분을 닮을 수밖에 없다고 티브이에서 전문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이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었던 그 날 나는 종일 두려움을 앓았다. 내가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보내왔던 사람들을 떠올렸고, 그들이 나에게 냈던 상처들을 상기시켰다. 내가 지금껏 몸서리치던 것들이, 기꺼이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봤던 몸짓과 말투 하나가 나에게도 머물러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지나왔던 좋지 못한 것들이 나에게 흡수되었을지도 모른다.


내 옆모습을 직접 바라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아무리 지금까지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나의 시선이었다. 곁을 스쳐 지나가던 이들이 문득 바라본 나의 모습은 한 소년이었을까, 한 무뢰한이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서 그랬듯 그들 또한 나에게서 악취를 맡았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겁이 났다. 내가 그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내가 스쳐 지나왔던 사람들이 똑같이 받았을까 두려웠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나로부터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혹은 누군가의 미간에 주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단어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문임을 알고 있음에도 현답을 바라며 끊임없이 좋은 사람에 대해 되물었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지, 좋은 사람이란 어떻게 되는지. 다양한 답변들이 나왔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 기댈 수 있는 사람, 든든한 사람 등등. 또 다른 누군가는 대답했다. 상황이랑 세상이 계속 변하니 거기에 맞는 착함, 좋음을 계속 배우는 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상황과 세상을 눈치껏 잘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답변을 받을 때마다 두려움은 강해졌다. 나는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인가?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인가? 혹은, 누군가 그랬듯 상황과 세상에 맞춰 눈치껏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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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중,

문득 M이 이야기했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미움받기 싫거든. 하지만 사실 미움 받는 건 너무 흔한 일이기 때문에...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살기로 했어."

 

M의 대답은 당연한 이야기였으나 동시에 현명한 이야기였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그들을 동경했다. 비록 내가 그들과 같이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빛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분하지만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은 오히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의 반대였다. 나는 한 사람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으나 모두에게 미움받을 수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일부에게 미움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면? 알고 보니 내가 나만 모르는 나쁜 사람이었으면 어떡하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들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행동들을 하고 다녔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모두가 눈살 찌푸리는 사람, 그게 나였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다들 내 앞에서는 쉬쉬해서 나만 모르는 것이라면... 어떡하지?"

 

M은 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럼 좀 자괴감에 빠지겠지? 내가 너무 오만한 거였던 거지. 하지만 그럼 그때부터 잘하는 거야, 그게 전부야. 나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로 했어. 후회해봤자 돌아오는 건 없어. 물론 밤에 이불킥을 좀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야. 내 잘못을 깨달았으면 됐다고 생각해. 주변인이 다 떨어져 나갔으면 그때부터 다시 잡든지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거야. 내가 좋은 사람이 됐어도 무언가 나의 행동에 후회할 건덕지 하나는 있겠지. 후회는 유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라고 봐. 사람은 후회를 안 할 수가 없어. 그러니 그냥 잘못하면 잘못을 구하고 용서를 받고 앞으로 잘하면 돼."


M의 대답은 간단했고 명료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 하지만 지금까지의 복잡했던 고민보다도 훨씬 답에 가깝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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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여전히 사람마다 다른 답을 가진 질문이다. 하지만 나는 M의 대답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미성숙하고 삶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그 사실로부터 좋고 나쁨을 정할 수는 없다. 다만 언제인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고쳐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는 있겠다.

 

내가 지금까지 마주했던,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내는, 좋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 곳에 고여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언젠가 좋은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과 같은 나쁜 사람이었을 때,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의 미성숙함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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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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