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가 K를 따라,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 1 [음악]

사유 여행가 K의 단상
글 입력 2021.05.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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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세상을 지배한지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났다. 코로나 19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느 정도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진 것 같다. 비대면과 거리두기는 일상이 되었고 마스크는 외출 필수 용품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어떤 행사가 있을 때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가 되었다. 대학 강의도 1년 전과 비교하면 시스템도, 강의 진행도, 어느 정도 매끄러워졌다.

 

무엇보다 확실히 느껴지는건, 이러한 모든 것들이 더는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20년 초에는 갑작스레 바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사상 초유의 개강 연기 사태,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듣는 비대면 강의,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나 모임 등은 모조리 취소되었고 카페, 헬스장, 음식점 같은 곳들이 장사를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하던 그 아찔한 상황 속에서는 '내 주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거야?'하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어느 지역에서 몇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전세계 상황은 이러이러하며 모든 관광지는 폐쇄되었다, 같은 소식을 각 언론사는 1면으로 내세우고 WHO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로 한창 말이 많던 시절,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이 세상의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 평소엔 보지도 않던 뉴스를 닥치는 대로 찾아보며 읽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그런 것들에 상당히 무뎌졌다.

 

50명의 확진자만 나와도 경악을 금치 못했던 1년전이지만, 지금은 500명이 나와도 '그런가보다'하며 받아들이고 마는, 좋지 못한 의미의 '익숙함'. 이렇게 서서히 현재에 물들어가는건가, 싶기도 하다가 그래도 아직은 방심하지 말아야지, 하는 경각심도 동시에 든다.

 

그런 가운데 상황에 따라 허용되는 것이 있고 허용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아직까지 대대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것에는 '해외 여행'이 있지 않나 싶다. 백신 접종을 마친 몇몇 나라에서는 '백신 여권'을 통해 서로 관광객이 오갈 수 있게 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보편적으로 이것을 통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참으로 아쉬운 현실이지만, 현실을 망각한 이상은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나. 당분간 해외 여행은 없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할 듯 하다. 어쩌겠나, 자제할건 자제하는 게 맞겠지.

 

이러한 답답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에피톤 프로젝트의 2집 앨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를 꺼내들었다. 비록 직접 눈으로 보며 돌아다니는 여행은 아니지만, 음악을 통한 가상의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름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추억과 기억이 담긴 이 노래들을 들으며 새로운 여행을 구상해보고자 했다. 여행가 K의 시점으로 말이다.

 

여행가 K는 이 앨범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다. 그는 앨범 노래 순서대로 가상의 유럽을 여행하며 나름의 사유를 통해 우리와 소통한다.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어보인다. 그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떠나게 만들었을까? 그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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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기내 방송이 들린다. 드디어 떠나는구나. 목적지는 체코의 프라하다. 11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야한다. 음, 조금 긴 시간인걸. 정말 긴 시간이지만 도착 후 겪을 새로운 경험을 떠올리고 있자니, 자연스레 미소가 피어오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자니, 비행기 창문 바깥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항상 살아왔던 땅에서 벌어지는 무수히 많은 사건들을 다 내려놓고 구름 위에 올라와보니 이렇게 지구가 아름다운 곳이었나, 생각이 든다. 내가 겪은 지구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는데. 햇빛이 구름에 가리어지는 일 없이 평화롭게 내리쬐는 이곳에서는 아픈 사람 없이 모두가 다 행복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2. 이제, 여기서


 

 

 

오랜 시간이 지나 드디어 도착했다. 두근대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기대에 들떠있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려본다. 누군가를 만나러 왔던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으러 온 걸까. 여기서 난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무수히 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잊고 있던 것, 잊고 살았던 것, 기억 한켠에서 살아숨쉬던 것,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 내가 숨기고 싶었던 것들, 날 아프게 했던 것들.

 

괜찮다. 이제 막 도착한거고 아직은 시간이 많아. 천천히 찾으면 된다. 급하게 마음 먹을 필요가 없다. 아직은 이번 여행을 즐겨도 돼.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을 정리해봐도 될 것 같아.

 

이제 여기에서 어떤 말들을 시작할까?

 

 

 

3. 시차


 

 

 

얼마만에 먹는 아침인건지. '이건 어떻게 먹어야 하는거지? 오, 이건 좀 맛이 특이한데. 메뉴 이름 좀 알아가야겠다.' 익숙치 못한 식단에 조금 당황하던 찰나, 창문 밖 도시의 여러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니컬한 도시의 모습은 여기도 똑같구나, 이게 도시의 진짜 모습이지, 싶다가도 잠깐, 난 여기에 여행 온 사람이지, 라는 생각에 조금 시각을 바꾸어보기로 한다.

 

느긋한 트램과 좁은 골목길, 나지막한 건물들,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톡톡 튀는 색감이 적용된 집들, 하지만 그래서 더 느낌있어 보이는 이 도시. 조금 오래 이 곳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에 겉옷을 챙겨입고 바깥으로 나간다. 평화로운 거리다. 바쁘게 움직이는 서울 사람들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여기서는 여유를 부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절로 걸음이 느려진다.

 

주변을 둘러본다. 바쁘게 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청명한 하늘, 아니 하늘이 이렇게 맑고 예뻤던가? 쭉 뻗은 길가, 자세히 보니 꽤나 잘 설계했잖아? 사람과 공기의 흐름을 잘 고려한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쯤,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운치 있는 나무벤치가 눈 앞에 보인다. 잠깐 앉았다 갈까.

 

앉아서 보니 안 그래도 평화로운 도시가 더 고요하고 아늑해보인다. 내가 여행자기 때문에 이런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저 사람들은 이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나가는 꼬마의 손을 잡고 '얘, 여기서 사는건 어떤 기분이니?'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차, 나는 영어가 서툴다. 뭐라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과거의 내가 참 밉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오래도록 도시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었다.

 

'한국의 시간은 지금 몇시일까?'

 

여행온건데 지금에만 좀 집중하자.

 

'지금은 밤일까, 낮일까?'

 

쓸데없는 생각이란걸 알아도, 지금 당장 필요한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잊으려고 왔건만.

 

지금쯤 그대는 몇 시를 사는지?

 

 

 

4. 다음날 아침


 

 

 

한번 겪었던 기억을 잊기가 이렇게도 어려운가. 도대체 왜 인간에게는 망각을 위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걸까? 하며 원망섞인 푸념을 해보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쉽게 잊었다면 이렇게 떠나올 일도 없었을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추스려본다.

 

분명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여기서라면 다를 줄 알았다만 그건 내 착각이었나보다. 그래, 장소가 중요하랴. 어딜가든 내게는 그 기억이 따라다닐 것이고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씩 희미해지다 언젠가는 보이지 않게 되겠지. 서서히 내 중심에서 벗어나 저 먼 곳으로 떠나가겠지. 다음날 아침이면 오늘보다는 괜찮겠지.

 

부디 그래야 할 텐데, 그 부질없는 기대 하나가 오늘의 나를 살게 한다.

 

조금 기다려 머지않아 이곳에, 눈을 떠보면 다음날 아침이.

 

 

 

5. 새벽녘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내 마음을 그대로 꺼내놓은 것 같은 날씨에 쓴 웃음이 지어진다. 이 비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저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차곡차곡 모아져서 내리는 비일까?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비일까.

 

언제부터 우리가 멀어지게 된 걸까? 내 실수로 인한 것일까? 너의 오해로 인한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내가 엇나갈 때, 조금만 날 잡아줬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우리에겐 분명 이 모든 것을 되돌릴 기회가 있었다. 기회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있었고 행동할 여지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유없는 행동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분명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테지. 그 이유로 인해 멀어진거겠지.

 

좋았던 기억만 가득해서 더 버티기 힘든 시간들이다. 차라리 안좋은 기억들만 가득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떠올리진 않았을텐데. 누구 한 사람의 탓이 아닐테다. 이렇게 되어버린건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다. 잠깐 뒤틀린거라고, 그래서 우린 운명이 아니었던 거라고 얘기해본다.

 

그래,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어쩔 수 없었던거야.


그대여, 우리 함께했던 그 많은 시간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6. 초보비행


 

 

 

뭐든지 처음은 잘 안되고 실패하기 마련이다. 비록 처참하게 망하고 사정없이 부서지며 머리부터 발 끝까지 깨지는 동시에 나의 모든 것이 무너지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더불어 처음이라 하여 절대 대충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하면 후련하다. 더는 후회가 없다. 못난 과거를 돌아볼 때에도 부끄러움이 없다. 누가 손가락질하며 비웃더라도, 누군가 '저건 최악이야'라며 험한 말, 모진 말을 쏟아내도 굳세고 당당하다.

 

그렇기에 나는 과거를 떠올리며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 당시의 나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난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으며 그런 나를 보고 미래의 나는 지그시 웃으며 보듬어줄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살다보면 생각치도 못한 또 다른 기회가 내게 주어지기도 한다. 또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내가 항상 최선을 다한다면, 내게는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의 결과가 주어진다.

 

나에게는, 그런 기적을 만들어낼 힘이 있다.

 

수많은 시간의 기적들을 끌어안고 할 수 있는 마음 모두 다해 같이 가자, 그 어디든, 내 손 잡아.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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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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