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기, 제 눈을 바라봐 줄래요 (1)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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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디에선가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사람 간의 대화가 소중하고도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리는 길이 바로 대화이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우리는 오로지 서로의 눈을 맞추며 하는 ‘대화’를 통하여 상대방을, 즉 우리와 다른 세계를 접해 볼 수 있다, 그것도 마음으로. 게다가 마스크 때문에 얼굴의 반이 가려지는 요즘,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 또한 서로의 ‘눈’이 되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하는 대화’는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작고 소중한, 유일한 길이 아닐까.
필자는 이 막연한 작은 생각이 정말 어여쁜 서사로 녹아 있는, 그러면서도 정반대의 끝맺음을 가진 소중한 두 작품을 이번 오피니언과 다음 오피니언에 조심스레 담아 볼까 한다.
We’re two worlds apart
We’ve traveled the seas we’ve ridden the stars
우리는 바다를 자유로이 거닐고, 별들을 유영했어
We’ve seen everything from Saturn and Mars
토성부터 화성에 이르기까지, 우린 모든 걸 봤지
As much as it seems like you own my heart
네가 내 마음을 가진 것만큼 참 많이.
It’s astronomy we’re two worlds apart
이건 우주 같은 거야, 우리는 멀리 떨어진 두 세계지
- Conan Gray, 'Astronomy'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Conan Gray의 신곡 ‘Astronomy’가 공개되었다. Conan은 항상 자신의 노래에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을 담는 아티스트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그 무언가가 있다.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있던 것을 아무도 모르게 꺼내어 마음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는 그 무언가가.
Conan은 자신의 신곡 ‘Astronomy’에 대하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I wrote this song about somebody who I’d loved for many many years; suddenly I looked at them and realized I didn’t know them at all.
We’d spent so long millimeters face to face, we hadn’t noticed everything around us had changed.
자신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사랑해왔던 사람에 대하여 쓴 노래라고. 그러다 갑자기 그를 보는데, 그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그와 자신은 겨우 몇 밀리미터만 떨어진 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 왔지만 그와 자신 주변의, (혹은 그 둘의) 모든 것들이 바뀌어 왔다는 사실은 눈치 채지 못하였다고.
필자는 이 곡에 대한 Conan의 이러한 글을 읽고 나니, ‘We are two worlds apart’라는 한 줄이 다른 의미로 필자에게 다가 왔다.
그대의 우주를 ‘들여다’ 볼 수는 있어도, ‘들추어’ 볼 수는 없으니
세계와 세계가 만난다는 것은 참 낭만적인 일이다. 삶을 살아갈 때 각자가 지니고 살아가는, 동시에 각자를 이루는 그 자체가 바로 세계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이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 서로의 세계의 문은 천천히 열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의 주인공인 그 사람, 즉 ‘그대’와 함께 그 세계의 모든 것을 여행할 수 있다. 바다를 거닐고, 별들을 유영하고, 심지어 토성에서부터 화성에까지 이르는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그 세계의 모든 것을 그대와 함께 바라보았다.
그대의 모든 것을 겪었다.
그대의 모든 것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세계의 주인공인 그대조차도 그대의 세계를 전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우리는 그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세계의 일부분만을 보고, 겪은 것일 뿐.
‘우리가 본’ 그대의 세계 너머에는 또 어떤 바다가, 또 어떤 별들이 우리를 쳐다 보고 있을 지, 그대의 세계의 처음과 끝은 무엇일지, 그대가 우리에게 그대의 세계 중 얼마큼을 보여 준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심지어 그대조차도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그대를, 그대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는 있지만, ‘들추어’ 보긴 어렵다. 그 사람이 보여주는 것 그 너머의 것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정말 어느 날, 그대가 만약 그대의 세계의 이면을 표면에 꺼낸 채로 날 마주한다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데 나와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었던 사람이 내 앞에 서서 내 눈을 마주 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대와 떨어진 채로 함께 있고 싶은데
From far away
저 만치 떨어져서
I wish I’d stayed with you
너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But here face to face
그런데 지금 내 앞에는
A stranger that I once knew
내가 한 때 알던 낯선 사람뿐이야
You said “Distance brings fondness.”
멀리 있으면 더 보고 싶어지기 마련이라고 했지?
But guess not with us
우린 아닌가 봐
- Conan Gray, 'Astronomy'
세계와 세계가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거리’를 필요로 하는 일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대의 세계를 전부 알 수 없는 여러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세계의 사람, 즉 다른 세계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다른 세계를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정 거리가 서로 사이에 필요하다. 서로를 더 넓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 세계에 ‘들어가는’, 혹은 그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저 만치에서 그 세계를 ‘조망’할 줄 알아야 하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그대와 함께 하고 싶다.
그래서 Conan은 말한다. “저만치 떨어져서 너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이기에 두 세계가 충돌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서로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서로를 이루는 더 작은 것들을 알아가고 싶기에 그대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심지어 그곳에 들어가 그 세계를 겪고, 여행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나 자신이 가까이 간 그대의 세계는 자연히 나의 세계와도 가까워지고, 이 두 세계 사이에는 결국 ‘다름’의 스파크가 일어나고 만다.
아, 우리는 도대체 가까워지면 안 되는 것이었나 보다. 그래서 멀어진다, 하지만 멀어진 두 세계는 여전히 서로를 바라본다.
필자가 Conan의 노래 ‘Astronomy’에서 본 가장 큰 감정은, ‘아름다운 혼란스러움’이다. 모든 세계들의 합인 우주는 고요한 곳인 듯 하지만 그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행성과 별들이 혼란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그 혼란스러운 움직임은 우주의 별을 이루고, 행성을 이루고, 우리를 이룬다.
우리의 우주인 우리의 마음에서도 하루에 수 백 수 천번 씩은 감정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 움직임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감정의 혼란스러운 움직임을 하나, 하나 겪어 냄으로써 우리의 우주는,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눈은 더욱 아름다워질 터이다.
사람과 사람이, 즉 한 우주가 다른 우주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이 혼란스럽고도 아름다운 서사는 서로의 눈을 마주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서로의 눈에는 자신의 세계가 담겨 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것은, 서로의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은 두 우주가 만나는 일, 서사의 시작.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약간은 슬픈 끝맺음을 담고 있는 것이 Conan Gray의 ‘Astronomy’인 듯 하다.
[김민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제 글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 위함이랍니다! 그런데 제 글을 읽으시면서 위로가 되었다니... 저는 정말 더없이 뿌듯하고 행복해요 :) 여너님께서도 좋은 밤, 좋은 낮, 좋은 일상들로 꼭꼭 채워진 나날들을 보내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