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영혼을 비추던 별의 상실 - 슈퍼노바

글 입력 2021.05.13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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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의 별이 머물렀다.

 
오랜 시간 서로의 구세주이자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최고의 친구로 지내온 '샘'(콜린 퍼스)과 '터스커'(스탠리 투치).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와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샘'은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된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여행이 끝나갈수록, 그들의 감정은 점차 고조되는데…
 
차마 사라지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 마음의 파편, 그곳에 가장 빛나는 사랑이 있었다.

 

 

*

해당 리뷰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아주 넓고 크지만, 내 세계는 아주 작고 좁다.

 

한 개인의 세계란 타인이 보면 하잘것 없게 여길지 모르는 것들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이다. 처음으로 뜨개질에 성공했던 작은 코스터나 약간 헤진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 차곡차곡 쌓인 오래된 편지같은 것들. 모두 사소하고 별 볼일 없어보이지만 하나하나 손때 묻은 소중한 추억인 것이다.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이 얼마나 방대한지간에 나에게는 작고 사소한 세계의 존속이 더 중요하다. 일상으로 빼곡히 채워진 세계를 잃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일지. 하물며 그 세계를 같이 지탱하던 사랑하는 사람의 공백은 죽음에 가까운 괴로움일 테다.

 

남은 사람이라도 살아야한다는 말이 얼마나 의미 없게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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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퍼노바supernova>는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와 그의 연인인 샘의 여정을 천천히 좇아간다.

 

터스커는 작가, 샘은 피아니스트. 친구의 집을 거쳐 샘의 공연이 이루어질 목적지까지 향하는 여행이다. 거대한 캠핑카를 타고 도시와 도시를 전전해야 했지만 자신의 치매가 어차피 악화되고 있다고 인지한 터스커는 오히려 복용하던 약을 두고 온다.

 

샘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하지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내려 하는 터스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영화는 잔잔하고 평화롭지만 그 이면에 샘과 터스커의 마음이 떠도는 것이 느껴져 시시때때로 가슴이 먹먹하다.

 

이 둘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서로에게 직설적으로 내비치지 않는다. 터스커는 자신이 작가임에도 글조차 쓰지 못하는 상태로 생을 이어나가는 매일이 너무나 잔인하고 비참하지만 연인에게 결코 티내지 않는다. 샘은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터스커를 바라보며 불안하고 무서우면서도 끝까지 함께하고자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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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이 가까울수록 이들의 마음도 깊이 곪아간다.

 

터스커는 샘이 공연을 떠난 사이 자신의 생을 끝낼 결심을 하고 있었다. 남몰래 숨겨놓은 독극물을 발견했을 때 샘은 절망한다. 샘은 언젠가 터스커가 기억을 잃더라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곁에 존재하는 것이었으므로. 샘의 절망은 터스커를 잃는 것이었고, 터스커의 절망은 자신이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것이었다.

 

터스커의 선택은 샘에게 배신처럼 다가올 수 있었겠으나 오히려 터스커는 자신을 돌봐야 할 부담을 안겨주기 싫어 샘을 위해 죽음을 결심한 것이기도 했다. 사랑한다면 과연 어떠한 선택이 진정 상대를 위한 것일까.

 

샘과 터스커가 감정을 토로할수록 그 경계가 모호해지지만 터스커는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죽음을 직접 선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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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샘은 터스커와 함께 죽음을 결심한다.

 

하지만 열린 결말이다.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샘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부디 두 사람이 어디에서든 행복하기 바랄 뿐이다. 깜깜해진 스크린 앞에 남은 관객은 그저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사람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지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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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환상이라고, 사랑과 개인의 삶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에서 예상치 못한 로맨틱한 서정성이 빛나는 영화였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별처럼 이들의 마지막 여행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빛났다. 퀴어 영화 이전에 말 그대로 로맨스 영화다. 서로가 없이는 삶이 완성될 수 없었던 두 사람. 티키타카 주고받는 소소한 대화도, 터스커의 장난스러움과 그런 그에게 심통나다가도 금새 풀어지는 샘의 모습도,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연인의 일상이 펼쳐져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따스하게 달구었다.

 

영화 <캐롤>의 제작진이 참여했다고 했는데 그 기대감은 음악을 통해 크게 충족됐다. 잉글랜드 북부를 가로지르는 감미로운 풍경 역시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감동을 준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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