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순간은 곧 영원이 된다 - 마르첼로 바렌기전

글 입력 2021.05.11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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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아이파크몰 팝콘D스퀘어에서 이탈리아의 극사실주의 아티스트 마르첼로 바렌기의 전시가 진행중이다. 지난 4월 24일에 시작해 오는 8월 22일까지 진행될 예정.

 

대림이나 예술의전당 등 규모 있는 국내 미술관에서도 극사실주의 아티스트를 다루어왔었다. 하지만 마르첼로 바렌기전은 그 기법과 연출 방식이 캐주얼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 세계로 오히려 특별하다. 전시 역시 용산을 오가다 한번쯤 들려볼 만한, 힘을 빼고 편안한 구성을 보여준다.

 

일상의 사물을 실제보다 리얼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사용하는 재료 역시 색연필과 마커, 수채화, 아크릴 물감처럼 친숙한 것들이며 빠르고 스타일리시한 특성을 갖춰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초현실적일 정도로 세밀하게 작업하는 극사실주의 작업과 달리 터치감이 어느 정도 살아있어 위트 있고 역동적이다.

 

무엇보다 마르첼로 바렌기가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데에는 SNS를 통해 예술가와 대중의 거리를 극적으로 허물었던 점을 주목할 만하다. 2013년 유튜브 채널을 열고 그림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유롭게 오픈한 결과, 현재 252만명의 구독자와 3억 6천 뷰를 기록한 영상을 보유한 채널로 성장했다.

 
 

 

마르첼로 바렌기의 채널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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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구성은 간결하다. 마르첼로 바렌기를 대표하는 세련된 정물화에서 시작해 자연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 기존 작품을 재해석한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둘러보는 구조다. 작품과의 거리가 가까워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그의 그림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다.

 

실내 촬영도 자유롭다. 특히 곳곳에 바렌기의 정물을 큰 스케일로 형상화한 조형물을 마련해 관객이 전시를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는 포토존을 계획했으며, 그림에 게시한 QR코드를 활용하면 해당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영상으로도 훑어볼 수 있다.

 

진입부에는 바렌기의 프로필과 삶의 행적이 간단히 소개돼 있다. 다채로운 이력이 눈에 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 작가로 살아가기 원했던 바렌기는 예술학교에 진학하지만, 당시 만연했던 아카데믹한 이유로 인해 그의 사실적인 기법은 인정받지 못한다. 이후 건축을 전공해 직장 생활을 이어갔음에도 그는 결국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고,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열정을 부여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결심한다.

 

그에게 SNS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준다. 음료수 캔, 과일 조각처럼 일상적인 사물 뿐 아니라 모나리자,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등 유명한 작품을 유화로 재구성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올려 세상에 자신을 알려왔고, 그 결과 현재 작품을 팔지 않고도 작업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례적인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시간을 멈춰 세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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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대단한 풍경은 아니다. 평소에 보기 힘든 귀하고 낯선 사물도 아니다. 아주 오래동안 사용해 녹슬어버린 작은 가위, 녹조가 잔뜩 낀 혼탁한 연못에서 헤엄치는 어린 거북이, 다 먹고 속이 빈 채 뒹구는 콜라병. 시선을 오래 붙잡아 두기에는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바렌기는 이처럼 일상적인 대상을 새로운 영감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눈과 손을 거쳐간 일상의 평범한 장면들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화폭 속에서 영원성을 얻은 존재가 됐다. 가까이 보아야 예쁜 것들을 바라보며 무심코 스쳐온 사소한 것들을 되돌아본다.

 

다른 극사실주의 작품에 비해 캐주얼하고 스타일리시하다는데 멀리서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된다. 사실 가까이에서 봐도 이해가 잘 안되는건 매한가지다. 얼마나 더 사실적이어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아주 가까이 들여다봤을 때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고화질 프린팅한 사진 같다가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미세한 붓터치가 보이는 것이다.

 

더욱이 과감하고 재빠르면서도 명료하고 엄격한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빛과 그림자의 관계성을 아주 분명하게 짚어내면서 광택처럼 특정한 재질의 표현력을 끌어올려 대상을 평면이 아닌 입체로 승화한다.


 

 

영원의 순간을 지켜보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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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주의 아티스트 중에서도 바렌기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가 업로드한 작업 영상에 있다. 한 대상이 작품으로 남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각적 즐거움도, 어떤 방식으로 그려가야 하는지 배우는 탐구의 기쁨도 고루 간직한 영상이다. 전시는 바렌기의 작업 영상을 QR코드로 직접 감상해보게 할 뿐 아니라 별도의 영상관에서 보여줘 몰입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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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손의 거리는 굉장히 멀다. 손끝에서 각막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뜻하는게 아니다. 눈을 통해 얻은 시각적 정보를 해석하고 손으로 전달해 표현하는 여정은 아주 멀다. 하지만 바렌기는 놀랍게도 프로그래밍한 장치가 작동하듯각 부분 부분을 바로 완성해나간다. 프린팅하는 것 같다.

 

빛과 그림자를 체계적으로 계산하거나 밑색을 천천히 쌓아가며 완성하는 그림만 생각했던 나로서는 영상에 더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한 찰나의 순간이 긴 시간을 거쳐 화폭 안에 머무르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이 점 자체가 아이러니한 즐거움을 주었다.

 

 

 

우리의 일상도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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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일상 속 풍경을 특별한 순간으로 승화한 바렌기의 전시는 그 특성에 맞게 곳곳에 볼거리가 마련돼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전시 구성이 엄격하게 정리됐다기 보다는 다소 러프하고 어수선한 감이 있는데, 소소한 포토존을 통해 편안하게 사진 찍고 감상하며 가볍게 다녀오기에 알맞다.

 

평범한 오브제를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감상하게 한 부스나 직접 프레임 안에 들어가 정지된 시간 속 작품이 되어볼 수 있는 포토존 등으로, 자칫 무난하게 흘러갈 수 있었던 구성에 다채로움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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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기가 그렸던 그림이 현실에 등장해 프레임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느낌도 재밌다. 아주 거대한 주전자를 끌어안거나 거울 안에 나를 투영해 사진을 찍어본다. 물 흐르듯 사라져버리는 하루가 오늘만큼은 뚜렷한 형태와 색으로 아주 단단하게 새겨진 듯한 기분이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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