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록은 기록일 뿐이다 - 뮤지컬 '창업'

글 입력 2021.05.0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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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메인 포스터.jpg

 

 

인간의 탈을 벗겨내자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는 짐승이 등장한다. 농장의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벌어지는 이야기. 동물들의 캐릭터를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입함으로써 시대를 풍자했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퓨전 사극 뮤지컬 ‘창업’은 고려의 멸망과 조선 건국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뮤지컬화 하였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방원과 정몽주의 하여가와 단심가에서부터 왕자의 난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고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기록은 기록일 뿐이다


 

뮤지컬 <창업>은 폭군, 피의 군주로 불리던 이방원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인들과 그의 성격적인 부분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입체적으로 그려낸 이방원은 우리가 알던 그와는 다르다.

 

17세에 최연소로 문과에 급제한 천재, 강한 권력욕,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눈 하나 깜짝 않고 제거하는 냉철함. 피의 숙청을 단행하는 모습. 그러나 이방원의 비정함과 냉철함은 드라마적 요소로 쓰이기 좋은 도구였다는 것을, 기록은 단지 기록일 뿐이라는 것을 이 뮤지컬은 보여준다.

 

태종의 왕자 시절 새어머니였던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를 꼬드겨 개국에 공을 세운 자신과 자신의 형제들을 제치고, 그녀가 낳은 의안군을 세자에 자리에 앉힌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인해 그와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와의 관계는 애증으로 얼룩지기도 한다.

 

극 중 이방원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며, 대의 앞에서 망설이고 절망하기도 하는 모습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고정된 인물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그는, 확실히 폭군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기꺼이 악역을 도맡아야 했던 한 사람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중앙 집권 국가를 위해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잔인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게 아니라면 피지배층에는 자애로운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사실 그의 아들 세종이 훌륭한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왕권 강화를 위한 그의 노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관람 포인트- 하여가와 단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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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대표하는 충신 정몽주, 그는 저물어가는 고려 왕조를 붙잡으며 단심가를 읊는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번 고쳐 죽어...” 그리고 이방원은 하여가로 응수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학창 시절에 배운 시조에 인물의 감정이 담긴 모습은 경탄스러웠다. 문자 하나하나에 충정과 간절함을 가득 담아 자신의 운명을 각오하고 있는 듯 차분하게 읊어내는 정몽주와, “하늘이 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왕을 만든다”라며 개혁에 대한, 창업에 대한 과감함 움직임을 보이는 이방원의 대립은 역사서에 가지런히 나열되어있는 활자들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과도 같았다.

 

 

 

신선하고 현대적인 재해석


 

뮤지컬 <창업>은 퓨전 사극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십분 활용한다. 현대적인 언어와 유머러스한 랩은 자칫하면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는 순간들을 환기한다. 극 중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유일한 여성인 신덕왕후 강씨는 출세한 권력자들은 모두 자신의 치마폭과 손바닥 안에 있다며. 사실상 정치는 여성의 움직임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녀는 여성이 억압되어있던 유교적 풍습을 비틀며 주체적인 여성을 상징한다. 실제로 그녀는 태조의 정치적 조언자였으며, 그녀의 뛰어난 지략은 조선 건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최근, 중국은 그들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고유의 문화유산인 한복과 김치를 자신들의 것이라며 잘못된 사실을 내세웠다. 그녀는 은근하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며 명나라에 대해 언급하고, “그런데 미래에는 한복과 김치도 자기네들 것이라고 하겠어!”라며 현재의 중국을 비판한다. 가벼운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넌지시 던진 해학과 풍자, 날카로운 비판은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개혁을 뜻하는 붉은 색의 미장센, 말발굽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그림자 등 미디어 화면의 시각적인 효과는 단출한 무대의 공간적 제약을 극복해낸다. 공들인 의상과 극이 끝나고 나서도 귀에 맴도는 뮤지컬 넘버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적 소재의 뮤지컬 개발을 목표로 세계 시장에 경쟁력을 갖춘 제작사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는 훌륭한 취지로 나아가는 ‘광나는 사람들’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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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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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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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cmaca
    • 여성이 억압되었던건 유교, 기독교, 이슬람등 전세게적으로 인류 보편적인 공통관습. 개선할게 있으면 해 나가야 하겠지만, 서양은 남편성을 따르고 있는데, 부계사회 전통의 유교국가들에서, 이런 전통을 깨뜨리는 시도는, 사회적 저항을 낳게됩니다. 다른나라 하는것 보고, 조금씩 개선해야 합니다. 여성도 나 남녀의 서역할 분담에서는 숭고한 영역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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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나
    • macmaca전통적인 이념은 때로는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하는 것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퓨전 사극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멋있게 활용하여 당시의 시대 상황을 비판한 훌륭한 예시라고 느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려는 시도는 저항을 낳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적극적이고 확실한 목소리는 변화의 물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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