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시 마음에 쏙 드는 원고는 아주 드물게 쓸 것이다. 대개의 마감은 시간과 체력의 부족으로 적절히 타협한 채 송고하며 끝이 날 것이다. 욕심 때문에 작업의 진도가 너무 나가지 않을 때면 그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작가가 아님을 기억해낸다고 한다. “I remind myself that I'm not the greatest writer in the world. Because I know I am not.” 나는 그의 말이 비관적인 자조가 아님을 안다. 그건 그저 계속하고 다시 하겠다는 담담한 의지 같은 것이다.
- <일간 이슬아> 겨울 호 2월 25일 '픽셀 속 영어 교사' 중
한동안 나는 위 문단을 캡처해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두고 쓰기가 두려울 때마다 꺼내 읽곤 했다. 일간 이슬아를 주제로 이번 주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후에도 이 문장을 떠올렸다. 이미 이곳 '아트인사이트'에 이슬아 작가에 관한 좋은 글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나는 또 두려워졌던 것이다. 그 글들이 너무 좋아서, 부족한 내가 굳이 한마디 더 얹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 '나는 대단한 작가가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냥 한마디 더 얹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따라왔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야 많을수록 좋고, 소리 내어서 말하거나 써서 남기면 더 좋은 것이니까.
삶을 써나가는 모두에게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글쓰기와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더라도 위 내용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다들 남들보다 대단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자신의 부족함만 크게 보이는 듯한 기분을, 너무 자주 느끼며 살고 있을 테니까.
일간 이슬아에는 작가 본인이 작가인 만큼 글쓰기의 고단함과, 즐거움과, 지난함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신기한 건 그때마다 글쓰기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같은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니까 이건 글을 쓰는 사람뿐 아니라 각자의 삶을 써나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쓰기'와 '살기'는 꽤 많은 부분 겹쳐 있다.
그러니 혹시 아직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지 않았다면 이번 늦봄 호를 시작해보는 것 어떨까. 게으르고도 성실한 사람답게 이슬아는 게으른 구독자를 위해 추가 신청을 받는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함께 나누고픈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의 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선물해주는 것도 추천한다.
여담으로 내게 지난 겨울 호를 선물해준 나의 친구는 끝내 나의 메일 주소를 알아내지 못해서 서프라이즈 선물에는 실패했지만, 서프라이즈를 하려다 실패하고 들킨 사건이 선물 같은 추억을 더해주었다. 매일매일 도착하는 글을 읽으며 선물해준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구독 서비스를 선물해주는 것은 상대가 날 생각하게 만들기에 최고인 것 같더라.
끝으로, 자신의 마감을 통해 나의 마감의 소재를 만들어준 이슬아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