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머리'털'

글 입력 2021.05.0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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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은 유독 더웠다. 아니, 여름은 항상 더웠지만, 그 해는 날씨와 무관한 뜨거운 열기가 나를 지글지글 끓이고 있었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한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엄청나게 느리게 느껴지던데, 그 여름의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느린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막 대학 신입생 딱지를 뗀 나는 우리 동네에서 벗어나 친구들을 사귀었고, (내 기준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이때의 기억이 정면으로 마주하는 햇빛처럼 흐릿하고도 강렬하게 남은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누군가가 나에게 왜 머리를 짧게 잘랐는지 물으면 그저 여름날 더위 때문에 그랬다고 답하곤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날씨가 아닌 다른 것들이 내 속을 부글부글 끓였고, 머리와 가슴을 터뜨릴 듯한 열기가 시시때때로 나를 덮쳤을 뿐이다. 세상은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하고, 그것을 이제야 느끼는 중이었고, 나는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서 그걸 바꿀 수 없을 거란 사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나는 그저 차가운 벽에 등을 대고 누워서 밤을 새웠다. 그러다 문득 결심이 섰다. 머리를 자르자고.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일평생을 단발머리, 혹은 긴 머리로 살아온 나에게 귀가 훤히 드러난 짧은 머리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날개뼈를 덮은 긴 머리를 단발머리로 자르는 데에는 석 달이 걸렸고, 단발머리에서 더 짧은 머리가 되는 데에는 고작 3주가 걸렸다. 진짜 잘라요? 미용사는 머리 이곳저곳에 집게를 꽂아 놓고 바리깡을 대기 직전에 서너 번을 다시 물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네, 하고 대답했다. 긴 머리를 단발머리로 잘랐을 때는 거의 울 뻔했는데 그 순간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미용실에서 나오는 길에 뒷머리를 손으로 쓸어 봤다. 까슬까슬한 뒤통수가 신기하기만 했다. 방금 머리를 자른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일부러 마구 머리를 헝클었다. 손바닥에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한 짧은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붙어 나왔다. 머리를 흔들어도 어깨에 닿는 털이 없는 것이 신기해서 도리질하는데도 어지럽지가 않았다. 대신 꼭 새 안경을 맞춘 것처럼 시야가 맑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 질 무렵의 눅눅한 늦여름 공기가 그토록 기분 좋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나서 많은 일이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어린 남자애로 오해를 받았고(나더러 중학생이냐고 물었다), 술집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두고 여자냐 남자냐 토론을 벌였으며, 길을 가다 내 등에 대고 ‘레즈비언’(순화한 표현이다)이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고작 머리카락이 없어진 것만으로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처음의 환희와 해방감은 어느새 닳아 버렸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털 뭉치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귀찮게 구냐고.

 

자의로 머리를 잘랐지만, 머리를 자르고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긴 머리에 대한 집착을 부채질했고, 나는 시간이 꽤 지나고서야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고작 머리카락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것이 짜증 났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사회 전복적 행위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기뻤다. 내가 살면서 저질러 본 가장 큰 ‘반항’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여자가 머리 자르는 데에 아무도 관심 없다고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굉장한 사회 운동가도 아니고, 신념대로 삶을 살아가기엔 겁이 많은 사람인데도 머리카락과 내 정체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여성으로 ‘패싱’ 되는 것,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모든 차별을 거부하는 행위이자, 둥지에서 기꺼이 떨어지겠다는 몸부림이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여전히 조금 어색한 머리 때문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수업을 듣는데, 내 앞에 앉은 동기가 말을 꺼냈다. 정말 멋있다. 나도 너처럼 머리 자르고 싶어. 맥이 탁 풀렸다. 나는 왠지 마음 편하게 웃을 수가 없어서 어색하게 고맙다고 대답했다. 뭐가 고마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았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학교 흡연 구역에 자리를 잡았다. 같이 피던 친구가 수업에 가고 나서도 한참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세상이 가위만 대면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처럼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여전히 짧은 머리를 한 여자는 온갖 꼬리표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동기도 나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동기는 내가 멋있다고, 나처럼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얘기했지만 내가 휴학을 신청했던 작년 겨울까지 머리를 자르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말할 수 있었다거나, 또는 말하고 싶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짧은 머리로 사는 것의 불편함과 편함을 알았고, 짧은 머리가 주는 편안함을 더 크게 여겼을 뿐이었으니 동기도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의 방식에 관여하는 것이 싫다면,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에 관여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내가 어색하게 그에게 고맙다고 대답한 것은 짧은 머리로 살고자 한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멋있어 보이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고,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말에 담긴 무게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 지 곧 3년이 된다. 이제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더이상 머리 길러 볼 생각이 없냐고 묻지 않는다. 길을 걷다 보면 머리를 짧게 깎은 여자들을 곧잘 마주치고, 나에게 노골적으로 무례한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변한 것일 수도, 세상이 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변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종종 내가 그해 여름에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래도 머지않아 짧은 머리를 하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때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그 시간을 지나오지 않았을까?

 

머리 모양, 옷, 화장이 단순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시대가 오기를, 짧은 머리의 여자, 긴 머리의 남자가 흔해지기를 바란다. 내가 처음 머리를 잘랐을 때 들었던 말들을, 다른 누군가는 듣지 않기를 바란다. 머리 모양에 굳이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짧은 머리를 한 여자가 ‘꼴페미’나 ‘레즈’일 것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꼴페미나 레즈가 짧은 머리를 하는 게 뭐 대수인가? 짧은 머리에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격이 필요한 일도 아닌데 말이다.

 

 

 

 

“I know they don’t like me that much. Guess that I don’t dress how they want.

I just wanna be myself. I can’t be someone else.”

 

 

좋아하는 노래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하든, 모두의 눈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준’이란 그렇다. 튀지 않아야 하지만 지루해서는 안 되고, 독특해야 하지만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이 기준은 언제나 존재하지도 않고, 항상 똑같은 형태인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틀에 자신을 욱여넣으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내 경우에는 머리카락이었지만, 당신의 그 무엇이든 말이다.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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