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살던 고향은 [공간]

글 입력 2021.05.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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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실습과 중간고사로 눈코 뜰 새 없던 4월이 지나고 어느새 5월이 성큼 다가왔다.


5월,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시기이지만, 그 초입부터 ‘생일’이라는 두 글자가 아로새겨진 이 달은 다른 때보다 유독 나에게 좀 더 특별하다. 특히 올해는 나의 십이지인 소의 해로, 태어난 해,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이어 세 번째로 맞이하는 해인만큼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5월의 볕 좋은 어느 날, 이제는 ‘경춘선 숲길’이라는 이름의, 주민들의 산책로로 재탄생한 공간을 품고 있는 나의 옛 동네를 거닐며,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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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실제로 운행되던 기차.

이제는 멈춰선 채로 이곳을 오가는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경춘선 숲길은 현재 서울 1호선 광운대역 부근에서 6호선 화랑대역까지 이어진, 총 6km 구간의 공원이다. 과거 성북역에서 퇴계원역 구간을 지나던 경춘선이 2010년 12월을 끝으로 폐선되면서 이 구간의 철로가 폐철길로 남게 되었고, 서울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한 일환으로 3년 전인 2018년, 이곳에 ‘경춘선 숲길’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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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고 이후 4년간 살았던 아파트

 

 

그리고 과거 이 철길이 지나던 서울의 북동쪽 끝 어느 동네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있다.

 

이제는 지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당시로서는 건축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있었던 우리 집, 그 중에서도 우리 동은 이 경춘선 열차가 지나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서인지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지나가는 기차가 울리는 경적 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창가에 서서 설거지를 할 때면 으레 빠르게 달려가는 기차가 보이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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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까지만 해도 기차가 달려가던 이 길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동네 주민들에게 넓고 평화로운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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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따라 쭉 걷다가, 7호선 공릉역 부근으로 가는 샛길로 빠져나오면 주거 밀집 지역인 이 동네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대학 캠퍼스의 정문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이다.

 

교명을 바꾼 지 이제 막 10년이 넘어가고 있는 터라, 이곳의 옛 주민인 나에게는 아직도 ‘서울산업대학교’라는 옛 교명으로 더욱 익숙한 이곳은, 20년 전 어린 우리 남매에게 더없이 좋은 나들이 공간이었다. 역시 나에게는 기억이 없지만, 엄마에게는 유모차를 끌고 캠퍼스를 거닐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셨다.

 

아쉽게도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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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학교를 주변으로 학생들을 위한 나름의 작은 대학로가 형성되어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 골목을 이루고 있는 가게들의 간판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전반적인 거리의 풍경은 내 머릿속에 있는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내심 반가웠다.

 

여기엔 수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있어 대학생들은 물론 주변에 사는 주민들, 그리고 이날 나와 같이 숲길을 거닐러 온 관광객들에게도 끼니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

 

대학가에서 식사를 해결한 후, 또다시 숲길을 따라 산책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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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건 다름 아닌 이곳이 과거 기찻길 건널목이었음을 가리키는 표지판. 그 앞의 높은 건물과, 이 길이 기차가 다니던 길이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의 동거가 꽤나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정겹다.


이제는 비록 그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지만, 기찻길 표지판이 주는 특유의 아날로그한 느낌은 여전하다. 2021년 지금, 서울 하늘 아래에서 이와 같은 표지판을 볼 수 있는 곳이 과연 몇 곳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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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 그리고 특히 영화 속 기찻길 건널목이 주는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한 감성이 좋아서 실제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이곳의 배경을 직접 찾아볼 계획을 세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실 굳이 그렇게 먼 곳에서 찾지 않아도, 영화 속 장소는 생각보다 꽤 가까운 곳에 있었더랬다.


과거의 기억을 헤집어보면, 내가 그토록 낭만적이라고 여긴 기찻길 건널목의 추억은, 역시 내 일상 가까이에 있었다. 십 몇 년 전, 학원 봉고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기차가 다가옴을 알리는 경적 소리가 들리고 셔터가 내려가면, 그 앞에 서서 ‘땡-땡-땡’ 하는 소리를 들으며 기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그 때.

 

이제 10분 앞으로 다가온 영어 단어 시험을 급히 준비하느라, 기차 경적소리를 들으며 쉼 없이 영어단어를 되뇌던 그 때 그 기억.

 

*

 

기억을 뒤로 한 채 다시 걷고, 또 걷다보면 어느새 경춘선 숲길 구간 중 가장 유명하고, 그만큼 아는 이들도 많은 곳인 6,7호선 태릉입구역 부근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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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카페들 이외에도 수많은 카페들이 숲길 주변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명 ‘공트럴파크’라 불리는 ‘공릉동 카페거리’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과거 주거 밀집 지역으로서의 이 동네의 모습이 감히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이 주변에는 지금 수많은 카페와 베이커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어떤 카페의 커피를 마실까, 한참 동안의 고민을 거쳐 이 거리의 끄트머리에 있는 한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여 역으로 돌아가는 것을 끝으로, 짧은 옛 동네 탐방을 마쳤다.

 

*

 

나의 옛 동네.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과거가 담긴 공간이고, 그곳에서 남은 기억마저 이제는 너무 닳고 닳아 작은 파편으로만 겨우 존재할 뿐이다. 차마 ‘미화되었다’라는 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작디작은 이곳에서의 기억은 그러나, 이 시절을 기억하는 나를 꾸준히 행복하게 해 주었고,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벅차게 만들어주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기찻길 바로 앞의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나가는 기차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하던 어린 나. 어느덧 두 무리의 십이지가 지나가고 난 지금, 나는 다름아닌 그 기찻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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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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