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이 전하는 삶의 의미: 죽음의 춤 [도서]

나는 탄생도 보았고 죽음도 보았는데 그 둘이 다른 줄만 알았다
글 입력 2021.05.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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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법을 배우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는 말이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 쿤데라도 독일 속담을 꺼내며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소개할 세실리아 루이스의 <죽음의 춤> 제일 첫 장에도 T.S. 엘리엇의 말이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탄생도 보았고 죽음도 보았는데 

그 둘이 다른 줄만 알았다.

 

- T.S. 엘리엇



우리 삶은 죽음과 멀지 않고, 결코 다르지도 않다는 의미를 넘어 삶과 죽음이 같은 것이라고 보는 이 말이 <죽음의 춤>에서 보게 될 수많은 죽음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이 된다. 어떤 죽음이 우리를 삶으로 이끌게 될까? 그 물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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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리는 방식



책의 표지만 보고도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약간 채도가 낮은 파스텔 톤의 하늘 아래서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는 그림 위로 '죽음의 춤'이라는 다소 섬뜩하게 느껴지는 제목이 쓰여 있다. 또한 이 책은 재밌게도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호기심이 마구 차오른 채로 한 장씩 책장을 넘겨보면 궁수가 쏜 화살을 운 좋게 피해 도망치는 한 마리의 사슴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지금 막 죽음을 피한 사슴과는 반대로 벼락처럼 다가온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음의 책>은 표지에서 알 수 있듯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함으로써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삶과 죽음에 대해 조명한다.


죽음은 늘 무겁고 진중하고 슬프기만 한 주제라는 생각을 뒤집는 책, <죽음의 춤>을 통해 우리는 유쾌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더불어 가장 역설적인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그림책이 주는 커다란 가치이자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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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죽음과 공존한다



영어로 쓰인 부제는 이렇다. THE BOOK OF EXTRAORDINARY DEATHS. 말 그대로 '그 운명 참 얄궂다' 싶은 죽음, 어이없는 죽음, 안타깝고 비통한 죽음 등 각기 다른 이유와 방법으로 생에 마침표를 찍은 이야기가 한데 모여 있다.


이를 테면 전장에서 승리한 전사가 적군 수장의 잘린 머리를 말의 안장에 매달고 우쭐대다 그의 이빨에 찔려 생긴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거나, 화재 현장을 빠져나가려다 자신의 긴 수염을 밟고 넘어져 사망한 이야기, 선인장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숨진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하고 웃어넘겼던, 혹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방식으로 운명이 닥쳐와 죽음에 이른 사례들을 보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어떤 이들의 죽음 직전의 일상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평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영영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한순간 모든 걸 뒤로한 채 눈을 감았다. 대단한 업적이나 사소한 일상은 그 자체로 가시가 되어 스스로를 찌르게 되거나 혹은 무의미하게 관 속에 함께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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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수많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저들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제야 우리네 인생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영원히 머무르거나, 영원히 간직할 수도 없는 삶에 대해 우리는 순간마다 기대를 걸며 환호하거나 실망하곤 한다. 그러는 동안 가장 작은 삶의 단위인 오늘 하루에 대해서는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중간마다 궁수와 사슴의 일러스트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사슴은 끈질기게 쫓아오는 죽음을 피해 도망치며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사슴을 발견한 궁수의 화살에 맞아 최후를 맞이한다. 누구도 이 사슴이 화살을 미처 피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리석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맨 첫 장에서 사슴이 운 좋게 죽음을 피한 것을 목격한 순간부터 우리는 사슴의 최후를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궁수처럼 우리 주위를 도사리다 기약 없이 덮쳐올 필연적인 죽음을 바라보며 어떤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는 죽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 만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결국 삶은 죽음과 공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T.S. 엘리엇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탄생과 죽음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날카로운 화살촉 앞의 사슴이 되어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잠시 잠깐 멈추어 선 채 나를 위해 배를 채우고,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는 사소한 순간순간은 그저 그런 무의미하고 지겨운 일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게 참 덧없다는 생각도 물론 들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의 풍경이 낯설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죽음에 관한 고찰은 우리를 다시 삶으로 회귀시킨다. 삶에 기약이란 없고, 죽음도 마찬가지이니 다만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생생하게 지각하며 사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손에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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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운명으로 얽힌 삶과 죽음 사이를 지나는 우리들은 이 기묘한 동화 속 인물들의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들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 떠올린다. 더불어 '내일'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아직 끝나지 않은 '한 번의 삶'을 명확히 들여다보게 된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가장 의미 있는 오늘을 보내기를 희망한다. 너무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당당히 앞을 보며 씩씩하게 걸어가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탐욕은 버리고 가장 나 다운 모습을 지킬 것. 그것 만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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