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뻔한 인간들의 뻔하지 않은 혁명 - 더 플랫폼 [영화]

글 입력 2021.05.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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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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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은 너무나도 뻔하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먹고 나면 배설해야 하며, 졸음이 오면 잠을 자야 한다.

 

제아무리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왔다고는 해도,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상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이 루틴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꿋꿋하게 이어질 것이다. 그 뻔함이야말로 인간을 살게 하는 생물학적 본능이므로.

 

그리고 그러한 루틴이 극단적인 통제 속에서 위협당할 때, 인간은 어떻게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뻔함을 드러내게 된다. 먹지 못한다면 상대의 것을 빼앗아 먹고 빼앗아 먹을 것마저 없다면, 상대의 살점을 먹으려 드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대안을 상상해보라. 있는 거라곤 물과 잠자리와 룸메이트 한 명밖에 없는 밀폐된 공간. 그 속에서 음식 하나 없이 버텨야 하는 ‘한 달+α’의 시간. 달리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 지옥 같은 “구덩이” 속에서 당신은 과연, 뻔하지 않은 인간일 수 있을까.

 

 

 

구덩이와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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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있는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정해지는 <더 플랫폼>의 지하 타워 “구덩이”는 언뜻 <설국열차>의 수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영화는 아니다.

 

머리칸과 꼬리칸 사이의 계급 구분이 공고했던(그렇기에 ‘혁명’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었던)<설국열차>와는 달리, <더 플랫폼>의 계급은 한 달을 기준으로 불규칙하게 뒤섞인다. 아래층에 있던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위층에 있던 사람이 아래층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각 층의 주인은 달마다 바뀌지만, 아래층을 홀대하는 “구덩이” 전반의 분위기는 바뀌지 않는다. 아래층일 때 받았던 멸시와 그로 인해 누적된 증오가 위층으로 옮겨간 뒤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수직으로 뻗어 있는 “구덩이” 안에서 아래층일 때는 위층을, 위층일 땐 아래층을 향해 들끓는 인간에 대한 멸시와 증오는 원을 그리며 그렇게 끝없이 순환한다.


그 속에서 “자발적 연대의식”을 꿈꾸며 아래층을 향해 말을 걸었던 여자는 인간의 뻔한 탐욕 앞에 좌절하여 목을 매달고, 신앙심에 호소하며 위층을 향해 밧줄을 던져올렸던 무슬림은 대답 대신 얼굴에 똥을 맞는다.


모두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칼이나 총을 품고 들어오는 “구덩이”에 유일하게 고전 <돈키호테>를 들고 들어올 만큼 지성적이었던 사내는 결국 같은 층의 룸메이트를 죽이고 그 살점으로 171층에서의 삶을 겨우 연명한다.


그들이 모두 인간인 이상,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본능적인 욕구 중 하나인 식욕으로부터 비롯된 이 지옥도를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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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순환을 벗어나고 싶은 자와 순환 자체를 부수고 싶은 자가 같은 층에서 만났을 때, “구덩이”에서도 비로소 혁명은 시작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그 혁명의 방향이 곧바로 위를 향하진 못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싣고 0층에서부터 지하 333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이 “구덩이”의 시스템을 부수기 위해선 제일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장 낮은 곳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0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시스템을 부정하기 위한 증거인 “메시지”와 함께. 그렇게 순환을 깨는 또 다른 순환을 그리는 데 성공했을 때, 인간의 그 지독한 뻔함을 기어코 탈피해냈을 때, 혁명은 비로소 완수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위적이고, 비관적이며, 위악적인 이 영화가 자욱한 피 냄새 속에서 끝내 끌어올려 골똘히 응시하는 이 한 줌의 희망은 확실히, 뻔하지 않다.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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