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조'와 '나'에게 재즈란?

글 입력 2021.05.0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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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관람하고 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두 달이나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때 분명 영화를 보고 깨달은 것도 많고 다짐한 것도 많았는데, 역시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살다 보니 그 당시 느꼈던 것들이 무뎌졌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으니 그때의 기억을 차근차근 떠올려 봐야겠다.


올해 초, 어느 평범한 겨울날, 할 일이라곤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밖에 없었던, 그런 날이었다. 친구 두 명은 나를 만나기 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온다고 했다. 두 친구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나를 만났는데, “이 영화는 무조건 봐야 해”라며 나를 영화관으로 끌고 가 티켓을 구매하였다. 두 친구는 똑같은 영화를 하루에 두 번, 그것도 연달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큰 기대를 가득 안고 영화 관람을 시작하였다. 그 영화가 ‘소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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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뉴욕에 사는 음악 선생님 ‘조’의 에피소드로 시작되었는데, 그의 재즈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보통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주제 정도는 미리 알고 보는 편인데, ‘소울’은 그럴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보게 된 것이라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위플래쉬’나 ‘비긴 어게인’같은 음악 영화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절대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조’ 역시 내가 영화관에 오게 된 것보다도 더 급작스럽게, 그동안 살아오며 손꼽아 기다려온 날,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가게 된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실제 존재하는 곳인지는 우리 모두 알 리가 없다. 단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로, 그 신비로운 느낌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스토리의 전개 배경이 달라짐에 따라, 장소는 물론 사운드트랙까지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러한 사운드트랙의 변화에 집중하며 관람하였는데, 음악을 통해서도 삶과 죽음을 구분 짓는 듯한 느낌을 꽤 받았기 때문이다.


‘조’는 삶을 살아가는 자체가 삶의 목적임을 깨닫지만, 이전까지 ‘조’가 갖고 있던 삶의 목적은 목표를 이루는 것, 즉 ‘재즈’였다. 따라서 ‘조’가 살아있을 때는 사운드트랙이 재즈로 주를 이룬다. 반면,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의 세계에 있을 때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이외에는 재즈 음악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음만을 이용하여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앰비언트 음악이 대부분을 이룬다. 이러한 앰비언트 음악 특성상 영혼 세계와 같은 배경에 더욱 잘 어울리는 것도 있지만, 많은 노트와 복잡한 코드, 화려한 주법을 사용하는 재즈와 더욱 대비되어 영화 속 존재하는 이분법적 배경을 잘 분리하였다.

 

 

Jon Batiste 'Collard Greens and Cornbread Strut' from"Soul"

 

 

Trent Reznor and Atticus Ross 'The Great Beyond' from "Soul"

 

 

음악감독 역시 한 팀이 아닌, 두 팀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살아있는 공간에서 등장하는 재즈 음악은 R&B 및 재즈 키보디스트인 ‘존 바티스트’의 작품이고, 영혼들의 공간에서 등장하는 앰비언트 음악은 음악감독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커스 로스’의 작품이다. 영화 안에서 나뉘는 삶과 죽음의 공간에 대해 각자의 배경에 더욱 몰입하게 하면서도 공간을 완전히 분리해 놓기 위해 많은 신경과 노력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픽사에서 발표한 '소울' 속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영화 속의 사운드트랙을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엿볼 수 있다.

 

 

근래 본 영화 중에 그 어떤 영화보다 공감할 부분이 많았던, 그래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던 작품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과거에 뉴욕에서 재즈 공부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 재즈 전공도 아닌 나에게 재즈는 하나의 ‘도전’ 이었고, 그 도전의 끝은 재즈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다른 앙상블 멤버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런데 점차 그것이 결과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왔고, 나의 도전은 곧 목표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들인데, 별문제 없이 무대를 끝마쳤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중에 있었던 사소한 것들이 더 마음속에 깊이 남겨져 있다. 사람들과의 오가는 대화, 연습 중 마시던 커피 한 모금 등 정말 소소하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나에겐 정말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조’ 역시 바라던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얻는 행복보다는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감정을 통해 얻는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를 통해 나 역시 사소한 것, 평범한 것에 대한 소중함과 행복함을 알게 된 것 같다. 하필 영화의 주요 소재가 '재즈'여서, 과거 '재즈' 때문에 행복했던, 힘들었던 나의 모습이 모두 머릿속에 떠올려지게 되면서 그러한 감정을 더욱 몸소 느꼈던 것 같다. ‘소울’은 이처럼 내가 보지 않았던,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면 약간의 찝찝함이 남아있다.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 의식이 담겨 있는 후반부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 이상적인 메시지는 잘 알겠는데, 현실을 도저히 그렇게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난 후, 친구들과 영화를 보며 느낀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영화를 함께 관람했던 친구들의 감상평이 전부 달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환경에 따라 느꼈던 것이 달랐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영화 안에서 보이는 것도 달랐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았다. 좋은 기회로 영화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살아가는 데에 있어 크고 작음을 메길 수 없는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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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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