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런 데에 누가 가? [도서/문학]

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글 입력 2021.04.3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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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쫓는다는 핑계로 유튜브에 들어갔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것은 어느 유튜버의 책 추천 영상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한 지 몇 달이 지났고, 평소에 즐겨보는 유튜버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 영상을 보고 싶었다.

 

영상의 책은 김혼비, 박태하가 공동 집필한 에세이 『전국축제자랑』 이었다. 관광 산업과 마케팅을 배우고 있는 나에게 이런 책을 추천해주다니. 알고리즘의 정확도에 혀를 내두르면서 나는 이 ‘운명적인’ 만남에 홀린 듯이 책을 구매했다. 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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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해 봤자 지역 재생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이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축제. 얼마나 요식이든 어쩔 수 없이, 하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야만 할 축제…그러고 보면 많은 축제가, 나아가 인구 유출을 겪고 있는 지자체들의 모든 사업이 결국 이런 패턴 아닌가 싶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와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대개는 하는 쪽을 택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는 지역 축제란 이런 것일 테다. 지역과 사실 크게 관련이 있지는 않은 무언가에 화합, 희망, 열정 등 긍정적이지만 추상적인 키워드를 갖다 붙인 것. 정작 그 ‘주제’보다는 전 부치는 기름 냄새와 술 취한 어른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더 기억에 남는 것. 아파트 야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미니 게임 부스와 노점상, 그리고 각설이들 같은 것. 그 와중에 사람들을 더 모으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초대 가수들의 공연 같은 것.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도 교수님들께 심심찮게 들었던 이야기다.

 

규모가 꽤 크고 전통이 살아있는 몇 개의 축제(예를 들면 책에 소개된 ‘강릉단오제’)를 제외하면, 지역적 특색이나 축제의 방향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한데 뒤섞인 그런 축제들이 이름만 바꿔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왜인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생각났다. 작은 마을 옹산의 사람들은 ‘게장’ 하나로 먹고산다. 드라마에서 드러난 적은 없지만, 아마 드라마 속 옹산의 공무원들은 ‘게장 축제’ 같은 것을 기획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흑산도도 아닌 영산포에서 홍어 축제를 하는 현실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버린 우리나라에서 어떻게든 자기만의 ‘색’을 찾으려는 노력 들이다.)

 

그런데도 축제 자체가 가진 힘은 그 규모에 상관없이 대단하다.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것에서 오는 에너지, 특히나 그들이 어떤 하나의 목적의식이나 관심사를 가지고 있을 때 발현되는 열정은 엄청나고, ‘잘’ 개최된 축제나 행사에서는 이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흔치 않은 카타르시스는 우리나라 지역 곳곳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축제에는 대부분 부재한 것이다. 사실상, 이 에너지와 열정이 사람들을 다시금 축제로 끌어들이는 가장 큰 요인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지역 축제를 쫓아 나선 마음 깊은 곳의 동력은 결국 ‘맞아, 세상에는 ◯◯이란 게 있었지.’와 ‘그치, 그걸로 ◯◯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의 합주와 변주였다. 몰라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 없고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성실히 지켜 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축제를 거대한 산업이나 마케팅 수단으로 보기 이전에, ‘축제’가 가진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축하하고, 감사하고, 기념하고, 또는 기리는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모인 것이 축제이지, 다짜고짜 지역명에 특산품이나 위인(때로는 그것들과도 하등 관련이 없는 무언가)을 억지로 붙여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둔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걸 축하하고 기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모여야 축제가 되는 것이다. 어쨌든 축제가 있다고 해서 전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두 작가가 책에서 밝혔듯, ‘이런 데에 누가 가?’ 싶은 축제도 분명 많은 사람이 일궈낸 노력의 결실이자 누군가의 희망이다. 당장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무관심 속에 사그라지는’ 것들을 그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행사장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K-축제’가 그렇게 지독하지만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한데 잘 꿰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과 함께하려는 잡다하고 서툰 흔적들이 소중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무맥락-탈미학-테크니컬-키치’라는 한국의 독보적 정체성”을 가득 담은 지역 축제를 나는 그동안 데면데면하게, 무관심하게 지나쳐왔다. 지역 축제의 수많은 성공 사례들을 보며 부러워했고,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축제를 열 수 없는지 아쉬워했다. 하지만 정작 이 작은 축제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더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애석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탓에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되었으니 왠지 벌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축제 산업은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물론 바이러스만 사라진다면 축제 산업이 얼마든지 다시 부흥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 수많은 지역 축제들도 같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적자에 시달리던 축제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축제들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왠지 이 작은 축제들에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섞이지 않은 물감 마냥 얼룩이 가득하지만, 다 섞여서 탁한 잿빛이 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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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웃고, 또 울었다(물론 웃은 부분이 훨씬 많기는 하다). 축제 산업을 관통한 그들의 통찰이 놀라웠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그 열정과 노력에 감탄했다. 무엇보다 그 경험과 감정들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낸 것이 가장 좋았다. 좋았던 것은 더 좋게, 아쉬웠던 부분은 더 따뜻한 손길로 보듬어서 낸 글들이 정겨웠다.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들, 그래서 ‘내가 한국인이다’하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것들에 마음이 벅차오르다가도, 다음 순간 인간들의 손가락에 살갗이 벗겨진 축제장의 연어들을 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졌지만, 이것조차도 ‘K’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좋은 것만 ‘한국’다운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한국’다운 것이 전부 좋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요상하고 뒤죽박죽인 ‘K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적어낸 글들을 보며 이상하게도 그 어떤 ‘국뽕’ 글들보다 더 진한 한국을 느꼈다. 매서운 비판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마음에 남는 것은 이 쓴소리에 그들의 애틋한 시선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 때, 겨울방학이 되면 부모님은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산천어 축제에 갔다. 아빠는 얼굴만 한 얼음구멍에 잘 보이지도 않는 낚싯줄을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았고, 엄마와 우리는 썰매를 탔다. 어린 날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지만, 이 산천어 축제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축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축제의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책이 말하듯이, ‘축제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가까이에서 한꺼번에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말이다.

 

이름도, 주소도 모르지만 내 팽이를 힘차게 돌려줬던 청년이나, 화장실 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줬던 아주머니 같은 사람들. 이 책이 다정하게 그려낸 축제를 보며 그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축제를 찾을 수 있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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