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의 찬미, 생의 찬미 [문화 전반]

내가 사랑한 윤심덕, 당신이 사랑할 윤심덕.
글 입력 2021.05.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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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은 누구인가


 



1897∼1926.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으며, 강원도 원주에서 1년여 동안 소학교 교원을 한 뒤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도쿄음악학교 성악과에서 수업받았다.


(중략)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하였다. 이때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회 프로에는 항상 윤심덕을 넣을 만큼 일약 스타가 되었다. 양악이 수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제대로 성악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중략) 대형 오페라가수를 꿈꾸었던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중가요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꿈꾸었던 예술 조국을 만들기에는 이 땅이 너무 낙후했고 견고한 유교적인 인습은 그녀를 더욱 못 견디게 하였다.


특히 유부남 김우진과의 사랑은 진보적인 도덕관을 지닌 그녀를 궁지로 몰아갔다. 1926년 여동생 윤성덕(尹聖悳)의 유학길 배웅을 위하여 일본에 간 그녀는 닛토(日東)레코드회사에서 24곡을 취입한 뒤 먼저 와 있던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정사하였다. 그녀가 남긴 ‘사의 찬미’는 오늘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윤심덕(尹心悳))

 

 

윤심덕은 누구인가. 윤심덕은 왜 지금까지도 많은 매체들에서 다뤄지는가. 우선 윤심덕은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였다. 그 당시 사회에서도 윤심덕은 충분히 주목받을만한 위치였던 것이다.

 



조선 연극이 ‘신파’를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우진은 만날 당시 이미 유부남이었다. 자유연애와 조혼의 비극, 식민지 지식인과 예술인의 좌절, 당대 일본과 조선의 청년층에 풍미했던 염세주의와 동반자살 풍조가 윤심덕과 김우진 두 사람을 현해탄의 깊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밀어 넣은 배후라고 후대 연구자들은 평한다.

 

- 문화콘텐츠닷컴

 



그리고 윤심덕과 김우진의 관부연락선에서의 정사(情死), 당대 시대상 등은 지금까지도 주목받을 만한 소재이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생과 사랑이 자살로 끝났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리고 그 생의 마감에 '사의 찬미'라는 노래를 남겼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주목받고 있다.

 

그 당시에도 신문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윤심덕의 음반을 10만 장이나 팔리게 했던 사건인 만큼,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지금에 이르러서도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 그리고 그들의 동반 자살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추측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인 것이다.


그렇게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은 매체로 다뤄졌는데, 그중에서도 뮤지컬, 드라마, 그리고 연극으로 다뤄진 각각의 '윤심덕'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뮤지컬 '사의찬미'


 

이 윤심덕은 매혹적이다.

 

 



사내 자! 그럼 우선 등장인물을 정하자.

사색적이고 내성적인 한 남자와, 이지적이고 자유분방한 한 여자!

그 둘은 숨막히도록 고루한 나라 조선에서 태어나.

그리고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쿄로 건너가.


-뮤지컬 '사의찬미' 中 도쿄찬가


 

극 중에서 윤심덕은 '이지적이고 자유분방'하다고 묘사된다. 윤심덕에 대한 기록들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숫기 없고 내성적인 김우진에 비해 오히려 우진을 리드하는 인물이다. 초반의 심덕은 도쿄찬가라는 넘버(노래)가 끝나고 난 후 우진을 귀여워하며 먼저 키스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렇듯 뮤지컬 '사의찬미'는 심덕을 매혹적이고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으로 그린다. 가상의 인물 '사내'가 심덕을 유혹하려 해도 심덕은 자신이 '택한' 사랑을 끝까지 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심덕의 성격이 뮤지컬 넘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잘 됐네, 어차피 오래 살 생각 없어. 난 찰나에 사는 사람이니까.

순간의 미, 그걸 얻을 수 없다면 난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밤에도 낮에도 나 사랑을 속삭일래

둘이서 영원한 하나임을 확인할래

내 안의 젊음을 뜨겁게 불살라

내 몸도 내 마음도 모두 열어 보여줄래 난

그런 탐미적인 사랑 그런 순간의 기쁨을 난 원해

탐미적인 사랑 그런 순간의 기쁨을... 난 원해.


"그럼 날 한 번 탐미해봐"

"내가 빠지고 싶은 남자는 네가 아냐."


-뮤지컬 '사의 찬미' 中 난 그런 사랑을 원해


 


드라마 '사의찬미'


 

이 윤심덕은 현실적이다.

 

드라마 '사의찬미'의 윤심덕은 현실적이다. 같이 조국순회 공연을 하자는 우진과 사내의 제안을 호쾌하게 받아들인 뮤지컬 '사의찬미'의 심덕과 달리, 드라마의 심덕은 그 공연 '위험한 것 아니냐'라며 내켜 하지 않는다. 심덕과 우진이 썸을 타다가 우진이 유부남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심덕은 '잊지 못할 그리움 같은 건 없다'라며 쿨하게 돌아선다.

 

물론 기존 심덕 특유의 단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극의 초반부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심덕에게서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있는 현실적인 심덕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부분은 어느 극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것인데, 당당하지만 현실적인 심덕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의 영상과 대사를 가져와보았다.

 

 

 

 

우진 (손을 내민다) 반갑습니다.

심덕 (새침하게) 난 별로.

우진, 심덕 서로 팽팽하게 시선을 주고받는다. 우진 이내 뻘쭘하게 손을 내린다.

우진 연기를 곧잘 하신다 들었습니다. 신극 공연에도 섰었고. 

그래서 심덕 씨가 우리와 함께 신극 공연을 하면 좋겠는데.

심덕 (단호하게) 거절할게요. 그런 일에 시간 낭비할 만큼 한가하지가 않아서. 그럼.

우진 조선 사람이라면 조선을 위해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심덕 조선 사람이라 안 하겠다는 거예요.

우진 그게 무슨 말이죠?

심덕 나, 관비로 겨우겨우 유학 온 사람이에요. 괜히 그런 거 하다가 나 소프라노 못 되면? 당신이 내 인생 책임질 거예요?


 

그러나 이 극에서는 초점이 우진의 서사에 많이 맞춰져 있다 보니, 심덕은 우진과의 로맨스를 위해 쓰인 캐릭터 같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실존 인물 윤심덕에 대한 자료조사를 마치고 본 나로서는, '실제 윤심덕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하는 부분이 많이 존재했다. 그러나 윤심덕의 캐릭터성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가장 실제에 가깝게 고증했다는 점에서 극의 의의가 있다.

 

 

 

연극 '관부연락선'


 

이 윤심덕은 유쾌하다.

 

 

윤심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성악가일 뿐 아니라 최초의 여성 국비유학생, 최초의 대중가수, 최다 레코드 판매 기록 보유 등 최초라는 경력을 다수 보유한 인물이다. 흔히 현해탄에 몸을 던져 자살한 비운의 주인공으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지만 당대 지인의 평가 속에서는 오히려 호탕한 모습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언제인가 그야말로 육척이나 되어 보이는 몸에 옥색치마를 발뒤축까지 끌고 평안도 수건을 맵시 있게 눌러쓰고 평양 천지를 횡행하다가 종로 네거리에서 어떤 청년 남자를 만나서 평안도 사투리로 '야 오랍아 너 잘 있댔니'하고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았다”(조선일보 1926년 12월 26일자)

 

-문화콘텐츠닷컴

 

 

윤심덕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윤심덕은 ‘왈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대범하고 쾌활했다.'라는 식의 평가가 많다. 그러한 실제 윤심덕의 모습과 가장 유사하게 인물을 그려낸 것이 연극 '관부연락선'의 윤심덕이라고 생각된다.

 

 

 

 

뮤지컬 '사의 찬미'는 윤심덕과 김우진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내'라는 가상 인물을 추가했다면, 연극 '관부연락선'에서는 윤심덕을 살리기 위해 '홍석주'라는 가상 인물이 추가된다. 기존의 윤심덕 서사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게 '사의 찬미', 즉 죽음으로 끝이 났다면, 홍석주라는 새로운 인물이 윤심덕을 바다에서 건져올림으로써 윤심덕과 홍석주의 삶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 '생의 찬미'로 변주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터뜨리는 유쾌한 장면들이 마구 터져 나온다. 이 극의 윤심덕은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라는 명성에 맞게 당당하고, 유쾌하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주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

 

어쩌면 매혹적인 윤심덕도, 현실적인 윤심덕도, 유쾌한 윤심덕도 실존하는 윤심덕이라는 인물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 안에는 여러 모습이 있고, 창작자들은 어떤 근거를 보고 캐릭터를 만드니까 말이다. 실존했던 윤심덕이란 인물은 호탕하고 유쾌하면서, 어떤 때는 매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이기도 하면서도, 집에서는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가장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극의 분위기마다 느껴지는 윤심덕의 매력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뮤지컬 사의찬미의 윤심덕을 가장 사랑한다. 그건 내가 그 뮤지컬의 넘버를 좋아한다는 극의 특성도 분명 작용할 것이다.


연극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연극의 윤심덕을, 드라마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드라마의 윤심덕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윤심덕을 찾아보는 일도 재밌을 것이다. 혹은 자신만의 윤심덕을 상상하고, 자신만의 윤심덕 서사를 그려보는 일도 하나의 창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유쾌하고 당당한 모던걸 윤심덕을 찾고 싶다면 5월 9일까지 하는 연극 '관부연락선'을 보러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이채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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