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90년대 생이 바라본 90년대 생의 대화 [도서]

어둠 속에서 사랑을 켜는 사람들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글 입력 2021.04.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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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게 용기를 주는 책이 생겼다. 바로 유선애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완성형보다 진행형에 가까운 이들이었고, 모두 90년대에 태어나 내 또래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내가 평소 용기를 얻기 위해 읽었던 책 소위 말해 자기계발서로 불리는 책의 등장인물들은 삶의 완성 단계에 와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보다 훨씬 긴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들이 건넨 이야기에서도 분명 얻을 점이 있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 또래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더 움직였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은 내 삶을 돌아보게 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고하게 했다.


그리고 내게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다. 9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지, 현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책을 읽는 동안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나눌 수 있었고, 비관보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이 책은 예지, 김초엽, 황소윤, 재재, 정다운, 이주영, 김원경, 박서희, 이길보라, 이슬아의 이야기가 담겼다. 되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있는 힘껏 삶을 사랑하며 사는 90년대 생 여성들의 이야기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내가 나대로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 배우 이주영


“지금까지 틀리게 배우고 잘못된 방식으로 익숙해진 것들을 바꿔나가려고 해요. 이제는 성별이나 나이 문제로 부딪혔던 스태프들과는 다시 일 안하고 싶어요. 지난달에도 네 건의 일을 거절했어요. 돈 때문에 싫은 내가 되어야하는 일은 절대 안하려고요.” - 다큐멘터리 감독 정다운

 


유선애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90년대 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90년대 생의 생존의 의미는 ‘되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단순히 직업을 얻고, 돈을 버는 것을 넘어 나를 찾고 나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회가 규정한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더 큰 가치를 느낀다.


나 역시 직업의 방향을 모색했을 때, 안정성과 자아실현 사이를 깊게 고민했다. 원하지 않지만 적당한 보수가 주어지는 것, 원하는 일을 하되 적당한 보수는 포기해야 하는 것. 사실 아직도 정답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책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한 결심을 했다. 어떤 쪽이든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게 어떻게 살아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빠른 방법을 알려주지도, 제안을 하지도 않는다. 자신들이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적으로 느껴졌던 건, 모두가 자신의 삶의 단독자가 되기를 응원하는 듯 했다. 나 역시 이 응원에 힘입어 내 삶의 단독자로 우뚝 설 날을 그려본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상처로 만들지 않을 힘이 나에게 있다고 말이에요. 회복의 힘이 내게 있으니까.” - 작가 이슬아


“신기록을 세우기 위한 6년 동안 부상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사이클을 타고 다시 탔어요. 그때 조금 안 것 같아요. 내가 강하다는 것을.” - 사이클선수 김원경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능을 보고,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덧 우리는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하는 시기가 왔다. 아마 모두가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자 크고 작은 도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도전이 성공을 보장한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맞닥뜨리고 있을 것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90년대 생은 ‘노력한 만큼 얻기를 바란다.’고 한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이겨냈음에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점점 많아진다. 이러한 상황 속 가장 필요한 것은 ‘탄력성’이 아닐까 싶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저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 또한 무수히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크고 작은 실패는 살아온 나날들을 부정당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나는 강해졌고, 의연해졌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이슬아 작가, 김원경 선수와 함께 서로의 사기를 북돋고 있는 듯 했다. 이들의 손을 잡고 세상으로 걸어 나갈 용기를 얻는다.


 

“언제 어떤 실수를 할지 모르죠. 다만 희망적인 건 그래도 우리는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한다는 것과 변화한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아도 변화의 의지가 강하다는게 우리의 장점인 것 같아요.” - PD·MC 재재


“말만 앞선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말은 너무 쉽거든요. 바꿔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그냥 내가 바꾸고 싶어요. 그렇게 말은 아끼고 존재 자체가 힘이 되는 사람이고 싶어요.” - 뮤지션 황소윤

 


요즘 우스갯소리로 인터넷을 떠도는 말이 있다. “노오력이 부족하다.”, “라떼는~”라는 말이다. 주로 기성세대가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말이 나온다. 90년대 생으로서 이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마치 노력 없이 대가만 바라고, 하는 것 없이 사회에 불만만 표출하는 세대로 치부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자 하고, 새로운 것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고, 불합리함에 목소리를 낸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변화를 기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에 대해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세대를 바라봐 주어야 한다. 악습을 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부족한 점은 다듬고 우수한 점은 인정하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 같음을 강요하기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더 나은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변화는 다양한 형태의 물결로, 모양으로, 크기로 올거예요.” - 프로듀서·DJ 예지


“뭐가 잘못됐고 옳은 건지 생각할 수 있는 지금이 좋아요.” - 패션모델 박서희


“진보와 퇴보 모두 가능한데 그건 결국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 소설가 김초엽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써서 주는 역사, 그걸 통해 배우는 역사 말고 자기 이야기를요.” - 영화감독·작가 이길보라

 


누군가는 책의 제목에 의문을 갖는다. 여성들만이 ‘내일’이고 ‘미래’인 것이냐고. 이에 대해 작가는 루즈 베이더 긴즈버그의 명언을 옮겼다. “나는 가끔 질문을 받는다. ‘연방대법원에 여성이 충분할 때는 언제인가.’ 내 대답은 ‘9명(전원)있을 때’다. 그럼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9명 모두 남성이었을 때 는 아무도 그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여성이기에 당연하게 여성에 관한 모든 것에 관심이 간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직업, 환경, 상황이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깊숙한 내면의 목소리는 같았다. 고정된 프레임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는 강력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듯 해도, 좌절감이 밀려온다 해도 무너지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 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끈끈하게 엮여있는 듯한 이 벅찬 감정은 나와 우리를 응원하게 했다.

 

*

 

자기 삶의 단독자로 선 90년대 생 10명의 여성들과의 대화. 나도 이들처럼 되어야지 라는 생각보다, ‘이들과 함께 나아가기 위해 내 삶을 돌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내게 용기를 주는 책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90년대 생이라는 공통점은 이리저리 방향을 찾는 내게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했고, 여성이라는 공통점은 우리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묘한 연대감을 느끼게 했다.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찾아가며 시련과 좌절을 맛볼 때 나는 그때 마다 이 책을 펼치게 될 것 같다. 동질감과 연대감은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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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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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경원
    • 되게 궁금한 책이었는데, 글로 써주셔서 감사해요!

      성공하는 법, 행복해지는 법에 대한 참고자료나 모범답안이 없다는 건 당연하고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저는 때때로 두렵고 막막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나보니 성공신화에 대한 자기개발서 대신에 내 또래의 또 다른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일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중이라서 에디터님의 결론에 공감이 갔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럴 듯한 롤모델을 세우기보단, 내 삶을 잘 돌보아야 겠다는 결론이요! 저도 기회되는 대로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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