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을 소화하는 시간 - 출판저널 522호

글 입력 2021.05.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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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잠시 책방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책이 많았다. 사람과 노는 것보다 책 읽는 게 흥미가 더 있었던 나는 집안 책꽂이에 있는 모든 책을 섭렵했고 그 독서량으로 고등학교까지 버틸 수 있었다. 아, 대학교 가서도 좀 버텼던 것 같다. 왜냐하면 핑계라면 핑계지만 20살 때부터 학교를 따라가랴 아르바이트도 하랴 모든 것을 다 챙기랴 책을 끊었다.

 

그때부터였나, 졸업 논문을 쓰려 하니 갑자기 어휘부터 콱 막히더라. 알고 있던 어휘를 실생활에서 쓰는 경우나, 혹은 활자로 익히는 시간이 적어지자 자연스레 나의 언어관에서 소멸했고 어렴풋이 재만 남아 형체 없는 의미만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더욱더 내 생각을 표현할 일이 적어졌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결국, 언제부턴가 머릿속의 아이디어나 표현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 하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깔끔하고 정돈된 어휘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젠 하다못해 책 읽기가 버거울 때도 있다. 그렇다, 바로 출판 저널 522호, 52p의 책문화생태계 보존토크23인 '생태주의 관점은 왜 필요한가'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부분에서 언급한 '독서 근육'에 대해서 나는 말하고 싶다.

 

 

 

독서 근육을 왜 말하고 싶은가?

책문화네트워크 온라인 플랫폼 정윤희TV, 인터뷰 토크 형식의 목차다.


 

나는 독서 근육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위의 2문단을 작성했다. 아쉬움이 크다. 더 가뿐하고 전달하기 빠른 단어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함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나? 라는 고민에 빠진다. 항상 골똘히 나만의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단점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는데, 이젠 너무 가볍게만 생각해서 문제가 됐다. 깊숙한 곳에서 빠져나오긴 쉬웠지만, 다시 깊게 파고드는 습관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그리고 사람들과 맞춘 이 깊이감을 다시 격차를 벌릴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살아가기도 싫다. 왜냐? 내가 답답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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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 영상 콘텐츠의 급부상, 아니 영상 콘텐츠와 같이 짧은 시간에 콘텐츠를 소비하고 또 수용 혹은 시청에만 의미를 두는 시대에 자기 생각을 담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고 이를 표현하는 일은 비효율적으로 치부된다. 당장 필요한 정보가 아니면 긴 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점점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소통의 폭이 줄어들고 하루에 머릿속에 담을 수 있는 활자량과 생각의 양도 감소한다. 마지노선을 늘리기는커녕 줄이는데 급급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렇게 줄어든 머리통으로 아무렇게 내뱉는 의견이 더욱더 많아진다. 그런 의견은 보통 정제되거나 순화된 언어를 사용해도 상당히 좁은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세상과의 거리감을 늘어난다.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는 것은 역사상 옳지 않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배워왔고 체감하고 있다. 새로운 바람을 타고 함께한다는 것, 혹은 그런 물결을 발견한다는 것, 기존의 패러다임이 아닌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경이롭고 생경한 경험하게 할까. 하지만 오래되거나 시기가 지난 것은 버려지고 외면받는다. 종이에 쓰인 작은 글자들은 호흡이 길다. 소화를 위해 많은 시간과 집중을 요하고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책이 나에게 유용해야했다. 머리를 식히고 교양을 쌓는 시간보다 나의 발전에 기여하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시간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주제는 흔하게 열심히 하면된다! 거나 학문 입문 서적이 되었다. 그리고 곧 바로 책에 흥미를 잃었다. 시간투자대비 효과가 없었다. 얼른 알고 싶은 정보만 쏙 빼먹고 누워 아무생각없이 쉬고 싶었다. 남을 위해, 회사를 위해 고민을 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머리를 썼지만 정작 나를 위해 사유할 시간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버리는 것과 같았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 무엇으로 나는 사유하고 사유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나는 영감을 받고 받은 감정을 글이든 그림이든 직접적인 말보다 만들어낸 것을 좋아한다.

 

 

▶ 그럼 나는 무엇을 보고 어떤 감정들을 좋아하는가?

가치 없는 것들이 좋다. 순간의 찰나를 담는 것이 좋다. 휘발성이 강한 쓸데 없는 감정을 체감하는 것이 좋다. 쓸모없는 예쁨이 좋다. 순간을 위해 강렬히 불타오를 수 있는 빛깔이 좋다. 내일이 없는 오늘이 좋다. 위태롭고 처연한 이야기들이 좋다. 밑바닥 저 너머로 사라지는 그늘이 좋다. 투명한 밑바닥이 좋다. 그저 속없는 아름다움이어도 좋다. 다른 이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도 내게 울림을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리.

 

 

▶ 좋다. 그럼 무엇을 보는가?

특정하지 않는다. 종류마다 주는 울림이 다르다. 글은 나에게 사유할 힘과 시작할 계기를 주고 그림과 사진은 표현력에 힘을 실어주며 활자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내게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토대를 되어 오감의 디테일을 살려준다.

 

 

▶ 그럼 다시 한번 묻는다. 영감을 받아 탄생한 창작물이 무슨 역할을 하길 바라나?

별거 없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생각 그 자체로 진득하게 남아주는 것 자체가 의미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를 기록하기로 했다. 좋은 실력이 아닐지라도 그것마저 과정으로 남겨두고 싶다. '독서 근육'을 키우기 위한 일환으로 삼을 수 있으나 그것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있다. 저자가 말한 삶의 방식을 글 한 줄로 이해하고 감명받을 때 쾌감을 잃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저자는 이리 단순하고 평이하게 서술할 수 있지? 그런데도 어떻게 깊이가 느껴지는거지? 최근 그런 책은 이 보균 작가의 <존재와 사유>다. 나는 아직도 말하고 싶은 응어리가 많다. 갈 길이 멀었다. 해당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아직도 뒤가 약하다.

 

 

 

글을 소화하는 시간

<출판저널> 통권 522호 (2021.3+4월) | 책문화네트워크(주) | 280쪽 | 2021년 03월 발행


 

나는 고리타분한 성격인지 나는 e북보다도 아직 종이 질감의 책이 좋다. 뭐하나 꽂히면 그것만 봐야 하고, 가져야 해서 수집 욕구가 부른 취향 같다.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는 한참 시드니 셀던 소설 시리즈에 심취했고 고등학교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참으로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완전히 내가 글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독후감도 입시 목적으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책 선정을 하는 당시 분위기와 달리 나는 내 멋대로 읽고 싶은 책을 많이 읽었다.

 

목적 없는 풍요로움은 알아서 나의 독서 근육을 단련했다. 생각해보니 교내토론대회도 나간 기억이 난다. 지루하고 종이 신문에서 볼법한 딱딱한 어휘들과 논리적인 이해를 해야 하는 문장 구조가 한 번에 와닿지 않는다면, 당신의 근육량을 필히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그때면 손볼 시기를 많이 놓쳤을 것이다. 아마 일상생활에서 독서 근육의 감소로 인해 여러 불편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었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저자 유선경의 <어른의 어휘력>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20년도에 출간된 책이라 시대적으로 그렇게 동떨어지지 않아 언어의 시의성도 괜찮고, 시작 전 프로세스를 잡기 좋다. 그리고 잘 쓰진 않아도 새로운 어휘가 많아 흥미를 갖기 좋다.

 

하다못해 편하고 읽기 쉬운 글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 '책'이란 '힙'하지도 않고 '트렌디'하지도 않다. 혹은 내 것은 아니지만 남이 즐기는 부러운 취미가 될 수 있다.. 즐긴다고 하여도 남한테 자랑하거나 보여주기도 어렵다. 본인이 즐긴 이 감상을 남한테 전달하고, 또 상대방이 그것을 흡수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취급을 받을 것도, 말하기 거북한 취급을 받을 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 중 하나인데 이토록 핑퐁이 오가는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단 하나라 생각한다. 소화할 수 있는 근육이 부족한 것이고, 또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넓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글도 내가 흥미를 잃게 만든 원인과 다름없는 또 다른 글을 생산한 것이지만, 한 글자씩 되새기며 볼 수 있는 어느 날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읽어보길 바란다. 마음에 드는 책을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나의 속도와 맞는 문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책을 한번, 두 번 여러 번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훌쩍 달라진 나의 모습에 손뼉을 쳐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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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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