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점의 변화가 가져오는 것 - 출판저널 522호

글 입력 2021.04.2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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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우리 가족은 닭장마냥 빽빽한 아파트로부터 둥지를 내리고 한적한 시골 마을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20년 평생을 도시에서 산 나는 서울에서 혼자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고, 가족의 이사 결정이 낯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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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마당에서 본 밤 풍경. 도시의 야경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평생 더 큰 도시로 향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안고 살아왔다. 현해탄을 건너 동경으로 향했던 조선 문인들처럼, 도시에 대한 환상과 그 이면의 환멸 모두를 잘 버티며 살아왔다. 도시를 지향했던 가장 큰 이유는 풍부한 문화 및 교육 활동의 기회 때문이었지만, 그 외에도 도시가 내뿜는 분위기와 여타 부산물들을 낭만화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꾸만 우울해지고 희미해지는 도시인으로서의 내 존재를 발견했을 때는, 조금 슬퍼졌다. 나만 뚝 떨어진 느낌, 그 무엇 하나와도 제대로 '관계'를 이루고 있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수록 이기심은 기승을 부렸고, 나는 자꾸만 작은 자취방에 고여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편의점 하나 찾으려 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중국집 배달 하나 제대로 오지 않는 시골 마을로의 이사는 그런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출판저널 522호>를 받아보고, '생태주의 관점은 왜 필요한가'라는 책문화생태계 토크 편을 읽으며 그간 다소 모호하게 다가왔던 이 변화를 '생태주의적 인간으로의 이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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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탐구로부터 시작된 생태주의적 관점, 그리고 생태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을 종합해 이를 독서생태계의 담론으로까지 확장하는 구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유영만 교수는 생태주의적 관점에 핵심이 바로 '관계'에 있다고 언급했는데, 예전의 나였다면 그저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고루한 철학적 관점 정도로 여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이 특별좌담은 생태주의적 관점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사한 우리 집은 생명력 넘치는 꽃밭과 텃밭을 함께 끼고 있다. 거실에 뚫린 통유리 창으로는 사계절 내내 빛깔과 향기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아주 느린 텔레비전 화면 같다는 감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들여 바라보니 텔레비전이 있기 이전에 자연이 있었기에 그 말은 어딘가 어폐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것이 모두 관점 변화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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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풍경을 보다 보면 내가 '관계망 속에 놓여 있다'는 감각이 확실히 되살아난다. 벌레 한 마리를 들여다 보면서도 그러하다. 서울, 내 작은 자취방 벽에 붙은 이름 모를 날벌레는 그렇게도 혐오스러운데, 본가 텃밭에 움틀대는 벌레들은 다르다. 내 존재 이전에 그들이 존재했음을 깨닫고, 텃밭의 작물들과 벌레, 그리고 우리 가족이 놓여 있는 커다란 인드라망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자취방 현관에 묻은 진흙 한 덩이는 그렇게도 거슬리는데, 본가 텃밭을 걷다 바짓단에 묻은 흙은 따뜻하고 부드럽기만 하다. 나를 키운 것은 흙이다. 흙은 나와 지속적으로 관계 맺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생태주의적 관점 뿐이다. 이것이 유영만 교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생태주의적 관점의 고취를 강조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본가에서 생태주의적 관점을 배운 나의 도시에서의 생활은 이제 조금은 달라졌다. '관계'와 '공진화'의 개념을 가슴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곧 내 존재의 우월함을 주장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원숭이가 사람을 닮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원숭이를 닮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인드라망에 묶여 하나의 관계를 이루고 있고, 이 특집좌담에서 유영만 교수의 말처럼 '모든 존재는 오로지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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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책장 일부

 

 

이번 기회에 <출판저널>을 처음 접했는데, 다양한 관점에서 책과 출판 문화의 현주소를 짚어 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책을 비롯한 물리적인 출판물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흥미가 돋았다.

 

더군다나 출판계의 존속 여부에 대한 의심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 출판저널 필진의 활동은 정말 감사한 작업처럼 느껴진다. 언어를 가리키는 언어를 메타언어라고 부르듯, 출판계에 대해 말하는 이 출판물을 메타출판물이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내 작은 자취방 공간 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책이다. 마음과 지갑은 다소 가난해도, 책 부자 글 부자로 살고 싶다는 꿈은 어릴적부터 유구했다. 그리고 혼자 골방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많은 이들과 책과 세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욕구도 점점 커졌다. 이것이 바로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상호의존'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출판저널 522호>의 책문화생태계 토크의 주제는 결국 '건강한 독서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으로 수렴한다. 생태계가 지속되기 위해서 관계와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면, 독서생태계 역시 이를 이루는 요소로서의 독자들이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판저널>은 이러한 관점에서 독서생태계의 지속 가능성 보장을 위해 독자들에게 담론의 장을 제공하는 일에 꾸준히 집중함을 느낀다. 이 기회를 통해 혼자서만 책을 즐기고 끝낼 것이 아니라, 시골 마을에서 배운 생태주의적 관점을 확장해 독서 습관에도 적용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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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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