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계 곳곳에 담긴: 행복을 부르는 지구 언어 [도서]

글 입력 2021.04.2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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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무엇일까. 기분 좋은 것. 그럼 기분이 좋다는 건 무엇일까. 추상적인 단어를 언어로 정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실체가 존재하는 사물은 물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것 또한 저마다 이름이 있다. 하물며 ‘모호하다’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왜 우리의 세상에는 이름들이 넘쳐날까.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말할 수 없고, 머리로 생각조차 못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은 존재한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명명하는 것이다.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를 빗댄 단어는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는 차후의 문제다.


다만 앞서 말했듯 나는 추상을 언어로 정형화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기에, 이 글의 초점은 행복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아닐 것이다. 대신 저자가 나눈 분류를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행복한 단어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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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제목, 부제목을 비롯한 책의 정보는 지평선처럼 누웠지만 숲을 이루는 나무는 꼿꼿이 서 있다. 여기에 무늬가 새겨진 하드커버는 숲과 하늘에 질감을 만들었고, 동화책 같은 모양새가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행복을 부르는 지구 언어’, 추상적인 이름을 이미지로 잘 담았다는 생각이 기대감을 만들었다. 그 내용도 표지와 닮았을까.


곧이어 나온 목차. 챕터를 다섯으로 나누어 총 50가지의 단어를 담았다. 부제에 슬쩍 보이는 `50가지 인생의 순간`이 이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휘게, 봉 비방부터 생김새마저 낯선 우니카까타기니크, 페어슈테엔까지. 50가지의 단어 중에서 처음 소개할 단어는 첫 번째 챕터에서 만나는 ‘쿠치’이다.

 

 

 

쿠치(CWTCH)

1. 벽장 또는 아늑한 공간

2. 껴안기 또는 포옹



‘U’대신 ‘W’의 개입이 낯선 이 단어는 웨일스어다. 물리적으로 누군가와 포옹하는 것, 그리고 심리적으로 그러한 안정감을 느끼는 것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영어의 커들(cuddle)과 비슷한 말이라고 저자가 서술한다. 영어권과 거리가 먼 우리는 그 오묘한 뉘앙스를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울 테지만, 캠브릿지 영어사전을 참고해 볼 만 하다.

 

 

CUDDLE:

to put your arms around someone and hold them in a loving way, or (of two people) to hold each other close to show love or for comfort


CWTCH:

a loving cuddle (= an act of holding someone in your arms), especially one that makes someone feel very happy and s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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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좋은 방법이 책 자체에 담겨있기도 하다. 단어마다 일러스트가 하나씩 놓여 있어서 그 미묘함을 유추해 볼 순 있다. 눈이 내리는 바깥과 커다란 창을 뒤로하고 한 담요에 옹기종기 모인 세 사람. 아이와 아이의 보호자인 듯하다. 판판한 러그와 알록달록한 쿠션, 무엇보다도 서로를 감싸는 모습이 차가운 바깥과 대비되어 따스해 보인다. 벽지의 연분홍은 부드러운 느낌을 만들어 그들의 교감이 한결 더 깊이 드러난다.


유약한 어린 시절,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믿음직한 존재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준다는 안도감, 약간의 들뜸과 왠지 모르게 감기는 눈. 따스한 온기가 마음까지 퍼지는 느낌을 그대로 담은 단어 같다. 꽤 오래전, 명동에서 ‘프리 허그’ 팻말을 들고 다니며 포옹을 자처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양팔을 벌리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작은 날갯짓처럼 손을 올리는 사람, 정중하게 인사부터 나누는 사람, 한 명씩 차례로 포옹하는 학생 무리 등 저마다 포옹 방식이 다양했다.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그들은 포옹하기 전부터 포옹이 끝날 때까지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낯선 사람과의 포옹에서도 웃음이 나오는데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포옹은 얼마나 몽글몽글하던가.


 

 

케이프(KEYYIF)

여유롭고 평안하여 기분이 좋은 상태



마지막 챕터의 중간쯤에 담긴 단어이다. 그리스어 ‘케피’와 어원이 같지만, 터키의 해석이 담긴 케이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 순간을 즐겁게, 기쁘게, 평온하게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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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끝나면 만나자’고 했던 약속이 무기한 연장되고, 뉴노멀이 노멀이 된 요즘. 집과 회사/학교의 구분이 사라지고, 같이 사는 사람들 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밖을 나서는 순간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우리네 삶. 할 수 있는 일이 극도로 줄어든 와중에 이전처럼 이런저런 일들을 계속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쫓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럴 힘이 없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몸은 휴식하지만, 정신은 더 바쁘고 괴롭다.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탓이다. 집 안의 공간은 한정적이고, 무엇보다 익숙하다. 스트레스는 새로운 자극을 만나 풀린다. 하지만 익숙한 곳에서 정해진 방법-티비나 넷플릭스 보기, 음악 듣기, 게임 하기-으로만 갈증을 해소하려니 한계에 부딪힌다.


결국, 외부에서 내면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온종일 집에 있어도 휴식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명상이나 요가를 하며 몸의 긴장을 풀고,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컨트롤한다.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셈이다.


물론 케이프는 순간에 집중하는 것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현재에 집중하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을 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어떤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행위는 간단할수록 좋다. 공기가 몸 깊숙이 들어왔다 나가고, 근육을 움직이고, 향을 맡고, 푹신한 의자에 엉덩이와 등의 감각이 느껴지고. 덧붙여 음질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것도 만만치 않게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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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가지의 단어 중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적어보았다. 이 두 단어 혹은 남은 마흔여덟 개의 단어 중 하나쯤은 당신 마음에도 깊숙이 남으리라. 한 단어당 일러스트 포함 두세 장으로 엮어진 책이라서 부담 없이 가볍게 접하기 좋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도 케이프를 만끽하는 방법의 하나지 않을까.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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