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화는 광고다, 광고는 문화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4.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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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무언가를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설명하곤 한다. 광고는 분명히 그 ‘무언가’ 중에 하나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팔려야 하는 광고의 존재 의의를 생각하면, 광고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흐름을 제대로 탄 광고는 ‘밈’이 되거나 화제가 되어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문화는 광고가 되고, 광고는 문화가 된다.

 

흐름을 잘 탄 광고는 주목받기 마련이고, 내 이목을 집중시킨 광고-또는 캠페인, 마케팅 등 브랜딩 전략-들도 그랬다. 공교롭게도 그것 중 다수가 하나의 대행사에서 탄생한 것들이었다. ‘스튜디오좋’이라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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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의 ‘소비패턴’,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LG유플러스의 ‘홀맨’같은 화제가 된 소셜 미디어 채널 운영을 이들이 했다. 프로게이머 페이커에게 “불 좀 꺼줄래?”라는 잊지 못할 역사를 만들어 준 클레브 광고도 이들이 했다. 콘돔이 안 나오는 콘돔 광고도.

 

 

 

삐뚤게 보기


 

‘스튜디오좋’의 웹사이트를 들어가려고 검색을 했더니, 주소에 ‘studiok110’이라고 되어 있었다. 왜 k110인지 의아하던 참에, 이들의 로고를 보고 감이 왔다. 마음먹고 삐뚤게 보는 회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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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대한 예찬이 세상에 만연하다. 전에 없던 것을 끊임없이 기대하고, 기다린다. 새롭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등장할 때마다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새로움’은, 더 정확히 우리가 ‘좋아하는 새로움’은 무(無)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유(有)에서 탄생한다.

 

삐뚤게 보기. 이는 있던 것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같은 그림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되는 것처럼, 생각의 각도도 조금 달라지면 전혀 다른 생각으로 탄생한다.

 

 

 

 

‘스튜디오좋’이 만든 콘돔 브랜드 바른 생각의 제품 광고인데, ‘삐뚤게 보기’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광고는, 콘돔을 보는 여러 가지 관점 중에 ‘대자연’을 키워드로 잡고 이미지화했다. 기존의 콘돔 광고들이 콘돔과 성관계라는 직접적인 표현에 집중했다면, 여기서는 대자연과 여행에 초점을 맞춘다.

 

섹슈얼한 이미지는 단 한 컷도 없다. “대자연으로의 직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카피로 성관계를 표현하는 관습적 언어를 연결하고, 영상미를 이용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한다. 덕분에 성생활의 외설적인 단면 대신,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신비라는 숭고한 의미가 강조된다.

 

이는 ‘바른 생각’이라는 브랜드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진다.

 

 

 

B급 감성이라지만, 사실 A급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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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좋’이 진행한 프로젝트 관련 기사엔 유독 ‘B급 감성’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특히 빙그레인스타그램 채널의 세계관, 빙그레 나라와 빙그레 나라의 후계자 (현 시점 기준으로 왕위에 오른)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를 보고 있으면 B급 감성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만하다.

 

B급 감성이 유행이라, 이상하거나 별난 것들을 전부 B급 감성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런 콘텐츠는 그냥 ‘B급의 콘텐츠’다. 어떤 콘텐츠가 B급 감성이 될 수 있는 건 A급의 기획과 짜임새가 뒷받침돼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성공적으로 B급 감성이라는 수식을 얻는 이유는 ‘B급처럼 보이는 A급의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빙그레우스의 세계관을 자세히 살피면, 그 짜임새가 얼마나 탄탄한 것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제품을 의인화하면서, 위화감 없이 제품의 속성과 이미지를 개별 캐릭터의 개성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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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장수 제품인 ‘투게더’가 빙그레 나라를 가장 오랫동안 보필해 온 비서 ‘투게더리고리경’이 되었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바닐라 아이스크림계를 주름잡고 있는 투게더의 입지를 생각할 때 아주 자연스러우면서 재미있는 설정이다. 거기에 투게더리고리경이 들고 있는 은색의 밥숟가락은 완벽한 디테일을 만든다. 투게더는 밥숟가락으로 퍼먹는 게 예의니까.

 

투게더 외에도 많은 제품이 설득력 있는 캐릭터로 탈바꿈했다. 흑임자나 단호박을 재배하는 농사꾼 ‘비비빅’, “올 때 메로나” 때문에 사교계의 유명 인사가 된 ‘옹떼 메로나 부르쟝’ 공작, 더위와 싸우는 호위 단장 ‘더위 사냥’ 등이 있다.

 

이렇듯 만화에서나 볼 법한 인물과 설정이 어색함 없이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즐기게 되는 이유는 그만큼 직관적인 데다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음표가 없는 치밀한 서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감도 되지 않고 재미도 없는 ‘그냥 B급’이 만들어진다. 갖다 붙이는 건 만드는 사람 마음이라고 해도, 보는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게 분명하다.

 

 

 

흐름을 타고, 흐름을 만드는



‘스튜디오좋’은 흐름을 타며, 흐름을 만든다. 그들의 광고와 캠페인은 문화 속 키워드를 읽고, 비틀면서 만들어진다. 비틀지만 견고한 짜임새를 이용해 보편의 공감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들이 내놓은 결과는 또 다른 문화가 되어, 흐름을 주도한다.

 

한편 ‘스튜디오좋’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스튜디오좋'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음에도 광고주가 그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왔었다. 그 광고주가 누군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누구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행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크고 작은 회사들의 크고 작은 흐름이 모여 세상의 흐름을 구성해간다. 소비자로서 우리가 만들어나갈 흐름은, 결과물 뒤의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그들의 노력과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공식 인스타그램 및 홈페이지

 

 

[송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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