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여정 -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일민미술관 전시 <Fortune Telling : 운명상담소> 리뷰
글 입력 2021.04.2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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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_일민미술관

 

 

운명상담소_poster (1).jpg

 

 

[PRESS]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여정

 

 

전시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가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다(4월 16일부터 7월 11일까지). 이번 일민미술관의 전시는 코로나19 이후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여정으로서 준비되었다. 또한 바삐 흘러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샤머니즘과 우주론적 세계관을 재해석한 작품과 함께 ‘운명’의 존재를 살피고, 예술가들과의 상담을 통해 내면을 이해하는 과정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되어 한 편의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샤머니즘, 우주론적 세계관, 운명. 그리고 점술, 점성술, 역학 등의 신비주의 세계. 얼핏 들으면 오늘날 살아가기 위해 추구되거나 언급되는 어떤 방법론과는 다소 거리를 둔 단어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 일민미술관의 전시 소식이  조금 생경하게 다가오면서도 궁금했다. 이러한 관점을 전시의 중심이 될 예술적 방법론으로 삼아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와 경험을 전해줄지 말이다.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의 삶과 내면에 한 걸음 다가선다. 관객은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행위를 넘어서, 그 사이에서 휴식하고 명상하며, 예술가와 상담의 시간을 가지고 소통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움직이게 된다. 그러기에 여느 전시들보다 ‘여정’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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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민미술관 제공]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는 ‘운명’이 인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공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운명>과 동시대 작가들이 준비한 예술적 상담소들을 중심으로 한 <상담소> 두 개의 전시로 이루어져 있었다.


1 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운명>은 베토벤이 악상을 떠올린 숲속을 모티브로 하여 구성되었다. 귀 상태가 악화되어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던 중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여느 때와 같이 숲속을 산책하던 베토벤은 어느 순간 들려온 소리를 네 개의 음으로 적어내는데, 이 음은 모두에게 익숙한 <운명 교향곡>의 포문을 여는 소리가 되었고, 베토벤은 이 음에 대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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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리, 일기(一期)생멸(生滅) IV, 들풀, 검정 시트, 가변설치, 2021

[사진: 본인 촬영]

 

: 제1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시야를 가리며 들어선 수풀을 만났다. 미술관에서 기대할 수 있는 풍경과는 다른 낯선 장면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나타난 공간이 전하는 생경함이, 우리가 잊고 있던 ‘운명’을 비로소 마주하는 그 시작의 감정과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문을 두드리는 ‘운명’을 보다 가까이서 마주하고자 하는 공간이 건네는 인사말처럼 느껴지는 작품과의 만남이었다.

 

 

개인의 선택과 의지로 살아가려 해도 그러한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오곤 한다. 전시 <운명>을 감상하고 그 모티브가 된 베토벤의 일화를 살피며, 그런 불가항력적인 순간에 우리가 마주하는 것을 ‘운명’이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운명’이란 것은 생각보다 아주 낯선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불안과 막연함 앞에서 “다가오는 운명에 자신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싸워 이겨낼 것인가” 읊조렸다던 베토벤의 질문처럼 말이다.


그렇게 운명을 마주한 순간을 가만히 그려보고 상상하며 ‘운명’을 정의하는 것도, 그것을 이해하는 태도도, 그것을 마주하는 의지도 결국 그 자신에게 달려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운명’은 이미 고정되거나 변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목격하고 받아들이고 변화 시켜 보려는 개인의 의지와 태도가 한데 묶여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운명이 인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은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다른 것도 아닌 ‘운명’을 예술로서 살펴보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부분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인생의 문을 두드리는 ‘운명’을 마주하는 자신의 태도를 헤아리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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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연, 모닥불, 복합재료, 가변크기, 2021

[사진: 본인 촬영]

 

: 작은 선풍기의 바람을 타고, 붉고 노란빛의 조명 위로 모여든 가습기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는 모닥불이 된다. 그러니까, 잠시 관조하며 휴식과 명상을 취하기에 충분한 모닥불 말이다. 주변에 놓인 (장판이 둘둘 말려진) 통나무 의자에 앉아 정말로 피어오르는 불을 바라보듯 시간을 보내며 쉬어갈 수 있다. 그 뒤에 자리한 투박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작은 암실 <산장>에서는 어두운 방에 오롯이 홀로 남아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자리한 겨울 산의 환영을 바라보며 고독의 시간을 음미할 수 있다.

 

 

한편 <운명>은 만신 해화암의 도슨트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번 도슨트는 감상의 보조적인 도구가 아닌 전시의 한 일부로서 준비되었다고 한다. 무당의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소우주적 상징들의 의미와 샤머니즘적 기표에 대한 해석과 함께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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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형, 사주포차, 관객참여형 퍼포먼스, 복합재료, 200x200x250cm, 2021

[사진: 일민미술관 제공]

 

 

2 전시실 <상담소>는 사주포차, 오래된 약국, 오늘의 말씀, 오행백신센터, 본능미용실, 라-로바의 방 등 예술가들이 준비한 상담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자신이 지닌 운을 다른 관객들과 교환하며 행운을 강화 시키는 행운 교환소가 미술관 곳곳에서 진행되며, 전시장 한 공간에는 밀레니얼 세대 작가들이 동시대의 사건을 위로하고 기리는 2021년형 ‘밀레니얼 신당’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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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순, 본능미용실, 복합재료, 가변크기, 2021

[사진: 일민미술관 제공]

 

: 필자는 홍학순 작가의 <본능미용실>을 체험했다. ‘본능’을 개인의 내면적 특성으로 정의하는 작가는 본능을 찾으면 자신의 내면과 딱 맞는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와 마주 앉아 ‘뇌스캔’(손바닥 맞대기)을 한 후 유쾌한 상담 시간을 가지며 관객의 ‘본능 캐릭터’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큰 감흥 없이 지내던 필자에게 작가의 본능 진단은 기대보다 더 마음에 와닿았다. 본능 진단을 받은 후에는 이를 어떤 캐릭터로 구현 시킬지, 어떤 이름을 붙여 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 나아가 나만의 본능 캐릭터와 일상에 어떻게 함께하면 좋을지까지. 내면과 딱 맞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시간을 위한 작가의 상담은 그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면서도 상담답게 꽤나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본능 캐릭터는 며칠간 작가의 작업을 거쳐 탄생한 후 이메일로 전송된다고 한다. 필자 역시 완성된 필자만의 본능 캐릭터를 기다리는 중이다.

 

또한 <본능미용실>에서는 작가의 애니메이션 작품과 함께 우주의 본능을 ‘토끼어’로 담은 '토끼 책'과 드로잉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발랄하고 유쾌한 에너지를 담뿍 전해준 작품들이었다.

 

 

한편 이번 일민미술관의 전시는 모바일 앱에서도 즐길 수 있게 준비되었다. 2 전시실의 <상담소>를 가상 공간 속 게임의 형태로 새롭게 구성한 모바일 전시 <포춘텔링센터>다. 6개의 상담소를 구현한 각각의 방에서 텍스트와 사운드를 체험할 수 있으며, 다음 방으로 넘어갈 때마다 이루어진 6개의 선택을 토대로 점괘를 받아볼 수 있다. <포춘텔링센터>는 일민미술관 2층에 마련된 ‘게임 스테이션’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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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일민미술관이 마련한 여정에 함께하며 다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소위 과학적 증명이란 것이 아무리 확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 한들 그러한 것만이 개인의 삶을 살필 수 있는 건 분명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로 말이다.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증명된 이야기들은 이미 많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중 우리의 개인적인 삶과 불안 그리고 내면에 진심으로 가닿은 것은 얼마나 될까.


그러기에 오래전부터 인간 삶의 내밀한 영역에 스며들어 있었지만 현대인의 삶에선 잠시 밀려나 있던 신비주의 세계와 같은 다채로운 관점들, 그리고 이를 새롭게 해석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왠지 반갑게 느껴졌다. 그것이 더 많은 대중을 상대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반가운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증명된 정답이 될 수 없는, 그 어떠한 것으로도 온전히 헤아릴 수 없는 개인의 삶과 내면을 다채로운 예술적 도구와 소통을 통해 살펴보는 여정이 그 자체로 참으로 예술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자아를 새롭게 마주해보고 싶거나, 불안에도 익숙해져 버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분들께 이번 일민미술관의 전시를 추천드리고 싶다.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기간: 2021년 4월 16일(금) ~ 7월 11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시간

11:00 - 19:00

 

장소

일민미술관

 

관람료

성인 7,000원

청소년 5,000원

 

주최

일민미술관

 

 


 

 

오예찬_PRESS.jpg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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