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여성들의 무한한 도전은 가능할까 [드라마/예능]

'무한걸스'를 통해 보는 미디어 속 여성
글 입력 2021.04.1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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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능 프로그램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도 좋아하는 예능을 물었을 때 꼭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무한걸스’다. 2007년 시즌1을 시작으로 방송계에 발을 내딛은 무한걸스는 재능 있는 여성 연예인들의 존재를 가감 없이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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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중에서도 마지막 시즌인 무한걸스 시즌3의 패널들을 중심으로 미디어 속 여성에 대해 얘기 하고자 한다.




제 1장. 누가 송선배를 송노인으로 만들었나



무한도전의 여성 버전으로 시작된 무한걸스는 초기에는 무한도전의 기획을 수정하여 진행하는 식이었으나 점차 그들만의 기획을 선보이며 MBC의 간판 프로그램으로서 자리를 공고히 했다. 프로그램 기획 뿐 아니라 출연진들 역시 각각의 개성을 살린 캐릭터를 가지고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갔다.

 

먼저, 중심에는 메인 진행을 맡은 송은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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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배, 송노파, 송노인 등으로 불리는 연장자 캐릭터 송은이는 연장자라는 별명처럼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예능인이다. 그는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해보지 못한 캐릭터로 등장해 주위의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웃음코드는 당시 사회가 ‘비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데,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비혼을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나 시트콤에 자주 등장하는 비정상적으로 히스테릭을 부리는 ‘노처녀’ 캐릭터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결혼에 대한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지만 ‘정상적인’ 가족의 틀은 건재하다. ‘남녀가 결혼을 해 자식을 둔 형태의 가족’은 미디어와 각종 교육 서적에 등장하며 자연스레 체화되고, 여기에서 벗어난 형태를 비정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는 꼭 벗어난 형태의 가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의 형태에 있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게 한다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중년을 보고 ‘한 번 다녀온 거 아냐?’ 하는 식의 무구한 짐작이 이에 해당하겠다.

 

따라서 당시 송은이의 캐릭터와 거기에서 오는 웃음은 이러한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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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숙크러쉬’를 일으킨 폭탄



다음으로 한때 ‘숙크러쉬’라는 유행어까지 낳으며 2020 KBS 연예대상의 대상을 수상한 김숙에 대한 얘기다.


사실 무한걸스를 찍을 시절 그는 ‘프로그램 내에서 가장 못생긴’ 캐릭터를 맡고 있었다. 그는 소개팅에서 ‘폭탄’으로 제명되고 남성 게스트에게 고백했다 차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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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못생김’은 누군가가 그를 함부로 대하고 괄시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된다. ‘개그콘서트’에서도 비슷한 개그를 선보이던 때가 있었다. 주변에서 ‘못생긴’ 여자를 타박하고 질책하지만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여성의 모습, ‘예쁜’ 여성과 ‘못생긴’ 여성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그 간극이 웃음 포인트가 되었다.


이렇게 여성이 평가당하는 겻이 당연한 사회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검열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외모는 여성을 옥죄는 장치로써 작용하고 있고, 이는 비단 ‘못생긴’ 여성만의 것은 아니다.




제 3장. ‘백치미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외모 평가는 소위 ‘미녀’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예쁘다’는 것은 칭찬인가?


예능에서 남성의 미모는 흔히 우러러보는 소재가 된다. 사람들은 잘생긴 남자에게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예능에서 여성들의 미모는 괄시 받는 소재로 작용하곤 한다.


가수 출신이었던 백보람과 황보는 미모라인으로 통한다. 특히 프로그램 내에서 ‘백치’로 통하는 백보람은 대개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거울을 든 채 조금 모자란 듯한 얘기를 한다.


다른 멤버들은 그런 그를 타박하며 ‘백치’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인다. ‘백치미’의 사전적 의미는 ‘지능이 낮은 듯하고, 단순한 표정을 지닌 사람이 풍기는 아름다움’이다. 어째서 이런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을까?


엉뚱하고 천진난만하다는 것은 과연 칭찬일까? 미인이 순종적이고, 조금 모자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상품화된 이미지는 아닐까?




제 4장. 안영미, 보수성에 맞서다



안영미는 지금도 익히 알려져 있듯 19금 캐릭터로 프로그램의 감초 역할을 한다. 그는 단순한 19금 개그를 넘어 ‘헤픈 여자’를 연기해 웃음을 주는데, 그가 연기하는 ‘헤픈 여자’의 캐릭터는 이런 식이다. ‘어제 선배 집에서 자고 왔어.’라든지, ‘나 초등 수학 같은 여자야. 쉬워.’


성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그의 노골적인 개그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왔고, 한편으로는 공적인 방송에서 등장한 거침없는 성적 농담에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제 5장. 아버지와 아줌마



모든 상황극과 애드립의 중심에 있는 김신영과 신봉선은 어떠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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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신영은 상황극에서 대개 권위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말로써 상황을 정리하는 송은이와 달리 그는 무력을 써 상황을 개그로 승화시킨다.


그런 김신영의 캐릭터는 ‘가부장제 아버지 모델’을 반영하고 있다. 단호한 어투로 멤버들을 제지하고, 질서와 규칙을 내세우기도 하는 등, 다른 멤버들의 행동이나 개그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태도에서 흔히 보아온 아버지상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마찬가지로 신봉선 또한 멤버들을 지적하고 타박하는 역할을 맡는데, 다소 남성적인 캐릭터의 김신영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그는 거침없는 입담을 선보이는 ‘아줌마’ 캐릭터로 등장한다.


예능이나 시트콤의 ‘아줌마’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은 드세고, 목소리가 크고,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고, 감정적이다. 그런 행동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아줌마’ 캐릭터이고, 미디어에서 얘기되는 ‘아줌마’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제 6장. 그들의 끝과 새로운 시작



다양한 캐릭터로 구성된 무한걸스는 초반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에 반해 끝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들은 무한도전 팬들에게 맹렬한 비판을 받고, ‘개념 없고 시끄럽기만 한 여자들’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조용히 종영하게 된다.


코미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대강 알 수 있다. 웃음에는 분위기나 맥락이 작용하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소재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래서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대중들의 웃음코드와 그에 영향을 미치는 판세를 읽는데 주력을 기울인다.


무한걸스가 방영되던 당시에는 비난과 조롱, 여성의 상품화 같은 것들이 유머의 소재가 되었다. 시대적인 영향이 컸기에 무한걸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어릴 적 연예대상을 떠올리면 국민 MC자리를 놓고 유재석과 강호동의 대결 구도가 펼쳐지던 기억이 난다. 왜 여성 MC들은 진행능력과 오랜 경력을 가지고도 그들과 같은 자리에 서지 못했을까? 왜 남성 MC의 보조 격으로 등장하거나 한정적인 장르에서의 진행을 맡아야 했을까?


어릴 적 품었던 의문이 무색하게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2018 KBS 연예대상 대상을 차지한 이영자에 이어 2020년 김숙이 그 자리를 이었고, 박나래 또한 2019 MBC 연예대상의 대상을 수상하며 여성 예능인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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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그들에게서 바뀐 세상을 실감했고, 여성 예능인들이 앞으로 걸어 나갈 행보를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도덕적 잣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방송인으로서 일정 수준의 도덕적 잣대를 갖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맞으나, 지나치게 높은 수준을 여성 예능인에게만 요구하고, 당연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런 농담을 본 적 있다. ‘세상이 장난입니까? 하지만 여성은 여든이 되어도 장난꾸러기인 법이지요.’ 

 

그들을 질책하며 완벽함, 무결점을 강요하지 말자. 여성 예능인의 성장을 지켜보며 즐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것을.


무한걸스는 끝났고, 다시는 부활할 수 없다는 글을 읽었다.

 

그들의 도전은 끝났는가? 물론 아니다.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활동이 주춤한 듯 했지만 다시 일어섰고, 라디오, 유튜브, 버라이어티, 교양방송 등 여러 방면에서 각자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멤버들을 모아 예능 프로그램 ‘판벌려’에서 아이돌 그룹에 도전하기도 하고, 웹예능에 도전하는 등 그들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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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무한걸스의 메인 MC였던 송은이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미디어랩 시소’의 대표가 되어 김신영, 신봉선, 안영미 등의 무한걸스 출신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의 도전은 아직 멈추지 않았고, 무한걸스의 무한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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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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