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부터 여름을 만나러 가요 [영화]

이르게 시작하는 여름, 여름영화 추천
글 입력 2021.04.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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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에 여름 영화를 추천한다니, 무슨 일인가 싶겠으나 계절을 이르게 준비하는 재미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오히려 한여름의 중간에는 여름 영화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 않은가. 소풍 당일보다도 소풍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 더욱더 즐겁고 생기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득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역설적으로 여름 영화를 즐기는 피크타임은 4월 말부터 6월까지인 것은 아닐까, 하며 4월 중순인 지금부터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계절을 사랑하며 기억하는 일은 동시성이 결여될 때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퇴색되는 것을 두려워 않고 미화를 거친 많은 계절의 역사를 부추기는 여름 영화의 존재는 아주 소중하다. 때론 단순히 여름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그런 여름 영화들이기도 하다.

 

여름의 한철 뜨거운 낮처럼, '그런들 어떠하리!'하며 즐겨보는 것이다.

 

 

 

바다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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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 중 싱그러운 여름 영화들이 많다. <바다가 들린다>의 한여름은 무료함과 밋밋함이다.

 

한낮의 볕 아래로 달려가는 자전거, 여름방학에 찾아간 학교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들로 그려지는 여름이다. 그리고 여름이라는 계절이 돌고 돌아 첫사랑 동창을 다시 만나는 선선한 여름밤이 된다는 것도, 커다란 의미로 여름다운 것이다. 여름은 언제나 추억 속일 때 더욱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흐려지는 과거의 여름을 향한 사랑과 아쉬움은 매년 우리에게 돌아오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든다. 과거의 여름과 올해의 여름은 절대 같을 수 없음을 알기에 오히려 서글프기도, 기쁘기도 하다는 것을, <바다가 들린다>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귀를 기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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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의 여름은 선선한 여름밤과 쨍한 태양 빛에 어지러워 쉬어가는 벤치이다.

 

<귀를 기울이면>은 도시의 여름에서 느끼는 여름밤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푸르게 빛나는 공기의 색 속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귀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위로 노래 ‘Country road’가 깔린다. 바스락대는 봉지를 손에 들고 슬리퍼를 끌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이내 좁은 가정집에서의 습한 그림과 합쳐진다.

 

여름은 휴지기이기도 하다. 해야 하는 것들과의 거리감 속에서 무얼 해야 하는지, 무얼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을 느끼기 일쑤인데, <귀를 기울이면>은 그런 여름 그 자체이다. 여름벌레 소리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는데, 생경할 만큼이나 찬란한 빛과 색은 여름이 한껏 끌어올린 채도인 채로 그려진다.

 

지브리의 다른 영화인 <붉은 돼지>, <코쿠리코 언덕에서> 역시 좋은 여름 영화라고 생각한다. <붉은 돼지>의 경우 이탈리아의 여름 바다와 상공을 시원하게 가르는 비행기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첫사랑의 조금 서글서글했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하는 여름을 담고 있다.

 

 

 

워터 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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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여름으로 가보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유명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인 <워터 릴리스>는 여름 방학 동안의 뜨겁고 허무했던 물보라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두 사람의 소녀가 애정과 허무, 예상과 불발의 반복을 오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처럼 조금은 성급했던 마음들이 물보라로 사라진다고 해도 그 여름날의 마음이 가짜인 것은 아니니, 쌉싸름했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로는 <워터 릴리스>만한 것이 없다.

 

 

 

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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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 사이에서 꿈이 가득했던 싱가포르의 여름을 보여준다.

 

친구들과 온 마음을 바쳐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했던 영화의 필름을 선생님과 다름없었던 남성 멘토가 들고 사라졌던 사건을 회상하고 조명한다. 창작의 열정이 총천연색으로 화면을 채우고, 유년의 상실과도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다시 쫓아가는 현재의 얼굴들은 여름이라는 공통된 색감으로 연결된다.

 

채도 높은 화면과 어우러지는  1990년대 싱가포르를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는 아직 소거되지 않았던 유년의 빛을 쫓는다. 그것은 향수에 젖은 나른함과는 다른, 동화 같은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미드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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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공포 영화의 계절이기도 하다. 스산하고 축축한 공포가 지겨워졌다면 <미드소마>는 어떨까? 가장 뜨겁고 가장 강렬한 한여름은 마법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계절이다. 바로 그 순간을 닮은 영화가 <미드소마>라고 할 수 있겠다.

 

1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제 축제의 이름을 딴 영화 <미드소마>는 납량특집과 쨍한 해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여름 영화라는 특색이 돋보인다. 밝은 화면 속에서 느껴지는 과잉된 빛이 오히려 광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영화는 더위를 먹어 아른거리는 여름의 한낮처럼 관객들을 매혹시키는 동시에 불안에 떨게 한다. 물론 고어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관람에 주의를 요하는 영화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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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고민했던 영화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서사나 배우를 모두 떠나 여름의 장면들을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라는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넘실거리듯 넘쳐가는 정열의 감정들이 여름의 어지러운 초록빛으로 확장되어가는 장면들은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사운드 트랙 역시도 여름답다고 할 수 있는데 ‘Une baroque sur l’océan from Miroirs’가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청량한 여름의 순간을 담고 있다가도 수프얀 스티븐슨의 노래들은 마치 물놀이를 마치고 축축 처지는 몸을 끌고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 전반의 테마곡이라고 할 수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M.A.Y in the Backyard’는 생명력이 일렁이는 따뜻한 봄부터 듣기에도 좋은 노래이다. 뜨거운 햇살의 정취를 두루 담은 사운드 트랙이라고 묶어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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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지고 습해지면 사운드트랙을 재생하게 하는 여름 영화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이다.

 

특히 장마가 시작된 여름이라면 <화양연화>의 음악들은 묵직하게 여름의 공기를 전달한다. 홍콩의 여름은 판타지 소설 속 여름처럼 상쾌하거나 청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득하게 들러붙는 고민처럼, 여름만의 습하고 특별한 공기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여름 영화로 <화양연화>를 볼 수도 있으리라.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 아래에서 잠시 멈춘 두 사람의 모습, 습한 골목을 누비며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의외로 유명한 사운드 트랙인 ‘Yumeji’s Theme’만이 아니다. 냇 킹 콜의 ‘Aquellos Ojos Verdes’, ‘Te Quiero Dijiste’는 홍콩의 여름밤에도 마법처럼 밀착되어 애처로운 에로티시즘을 형성해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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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교토의 여름밤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시작은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송별회이다. 영화는 시점과 장르에 있어서 평범하게 흘러갈 것처럼 보이지만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이 하룻밤이 길고도 기묘하게 흘러감을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시간이 흐른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철학적으로 파고들며 여름밤 위에 투사하는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젊은이들의 취기, 추억을 곱씹는 노인의 통달을 꿰어내는 단 하룻밤의 계절이 영화의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단 하룻밤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통째로 하나의 계절을, 심지어는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따라다니는 것이기도 하다.

 

계절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여름밤 같은 영화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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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의 전기 영화로 국내에 알려진 <레토>의 제목은 러시아어로 ‘여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의 여름과 그다지 친근하지 못하다. 어리숙하고 초초한 얼굴의 빅토르 최가 러시아의 여름 바다에 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는 모습은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는 덤덤한 젊음을 느끼게 한다.

 

제목과 동명의 노래를 부르는 마이클이 나오는 장면은 그러한 빅토르 최와 미묘한 대비를 이룬다. 진정 자유롭던 시대가 과연 존재했겠느냐 만은, 경계 없이 흔들리는 몸들과 여름의 바다는 상징적으로 자유로운 한 계절을 보여준다. 덤덤하게 노래를 부르며 혹독한 계절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걷잡을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

 

조금 이른 여름을 우리의 상상 속에서 먼저 맞이하며 계절이라는 시간 반복이 꼭 선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감각적인 경험들 역시도 비선형적이고 복합적인 시간의 일과 닮아있다.

 

우리의 미화되어버린 여름에 대한 기억, 엉키고 섞인 회상들은 그것이 순행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본다. 우리가 시간의 달리기보다 조금 빠르게 여름을 생각해보는 일로, 지나간 여름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성하고 다가오는 여름을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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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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