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속가능한 소설' - 둥둥 [문학]

글 입력 2021.04.1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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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릿터》의 작년 10/11월호에 발표된 이유리 작가의 「둥둥」이다. 2020년 경향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유리 작가는 작년 한 해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유망한 소설가로서 주목받았다. 특유의 재치와 쾌활함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2020년의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로 꼽힐 만한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유머러스하고,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일상 속 따뜻한 모습들을 포착하고 있다. 한 매체에서 첫 단행본 출간을 계약했다고 언급하였으니 곧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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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작가


 

「둥둥」은 아이돌 가수로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형규’와, 거리 공연을 전전하던 그를 지원해주고 육성한 그의 1호 팬 ‘은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두 개의 큰 플롯을 연이어 그리고 있는데, 전반부는 은탁과 형규의 만남과 가수로서 형규가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체계적인 가수 훈련을 받지 못한 형규의 가능성을 발견한 은탁은 형규를 전폭 지원하며 가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집안의 경제력 및 인맥을 동원해 그가 인기있는 아이돌 가수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형규는 비행을 일삼기도 하는데 은탁은 그런 형규의 생활까지 은폐하고 보호하면서 가수로서의 성공을 돕는다. 후반부 이야기는 형규의 뒤를 봐주던 은탁이 사고를 당해 물에 빠져 죽게 되고, 사후공간으로 이동하여 외계인들과 대화하는 내용이다. 은탁은 지상세계에서 마지막 소원을 이룰 기회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도 형규를 생각한다.


언뜻 뜬금없고 장르적으로 느껴지는 플롯이지만, 작가는 중간중간 다양한 소설적 장치를 통해 개연적인 소설을 완성해낸다. 특히 각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상당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완성도가 높다. 직접 읽어보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장면이 그렇다.

 

 

형규에게 스쿠터를 선물했던 어느 밤이 떠오른다. 사 달라고 하도 조르기에 일단 면허부터 따고 오랬더니, 정말 원동기 면허를 턱 하니 따 와 내밀면서 샐샐 웃어 어쩔 수 없이 사 준 것이었다. 위험하니까 조심히 타라고 신신당부하는 말은 들은 체 만 체 하며 새빨간 혼다 스쿠터를 매만지던 형규가 갑자기 나를 반짝 안아 올려 뒷자리에 앉혔다. 스쿠터 생기면 누날 제일 먼저 태워 주고 싶었어요. 그러고는 갑자기 시동을 켜고 새벽의 텅 빈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꽥꽥 비명을 지르다 엉겁결에 끌어안은 형규의 등이 생각보다 정말 좁고 여렸던 게 기억난다. 그래 나 이대로 함께 죽어도 좋아, 땀이 밴 그 등에 얼굴을 파묻고 생각했을 즈음 황당하게도 스쿠터가 도로 한복판에 슬금슬금 멈춰 서 버렸다. 기름이 떨어진 거였다. 우리는 어리둥절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배가 아플 때까지 웃고 또 웃다가 함께 스쿠터를 질질 끌고 주유소를 찾아다녔다.

 

《릿터》 2020년 10/11월호, p152

 


이유리 작가의 글을 읽으면, 이 작가가 세상으로부터 폭력성을 지우고 무해함을 그려내는 능력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의 인용된 장면은 어떻게 보면 비정규적인 형태의 사랑―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면―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근래 한국 사회의 이슈를 생각해보면, 소수자에 대한 상반된 시선이 자주 언론의 물망에 오른다. 상반된 시선들 속에서 정규적이지 못한 형태의 것들이 차별을 경험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유리 작가가 「둥둥」에서 그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팬의 ‘덕심’과 가수의 성장이라는 상징적인 형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이러한 비정규적 형태의 사랑이 이유리 작가의 공간 속에서는 무해하고 안전하게 지켜진다.


이유리 작가가 빚어낸 환상성의 공간 덕분에, 독자는 ‘정규성’에 대한 선제적인 의심 없이 바로 인물들의 관계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유리 작가의 환상성이 가진 가장 큰 문학적 힘은, 차별의 위험이 제거된 공간을 건축하여 안전이 보장된 공간에서 인물들을 삶을 진행시킨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불안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이유리 작가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언제나 믿고 찾아갈 수 있는 안식처이다.


*


요즘은 ‘지속가능함’이라는 세간의 오랜 관심사에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부나 기업에서 환경 혹은 미래세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예전에는 아주 막연하게 들렸었는데, 요즘에는 너무 가까운 일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서 지난 몇 계절 동안 대만은 전례 없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생활용수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대만의 대표적인 국가 산업인) 반도체 공정을 위한 공업용수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산업적 발전과 환경 보전이 상충된 가치로 여겨지는 것은 예전 일이다. 거대한 지구 공동체의 존속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해관계가 우선시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개념은 공동체의 차원뿐 아니라 개인에 있어서도 적용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토픽인 것 같다.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위기에 맞서기 위해서 지구의 구성원들이 협력하듯이, 스스로의 삶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사회적 불안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개인을 완성해야 한다. 세상은 급변하고 혼란스러운데, 자아는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100년 내외의 시간을 살아가야하는 존재로서,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이 긴 시간동안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가령 근래 여러 건의 강력범죄가 연이어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는데, 주변에 위험이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적인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의 문제인 것이다.


내가 이유리 작가의 소설이 반가운 것은, 아무래도 그의 소설은 살아가면서 계속 읽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유리의 소설은 명랑하고 발랄하다. 한 인물의 생각이 꾸밈없이 드러나고,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들 가운데서도 일상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갈 일상은 동화나 설화가 아니지만, 판타지의 세계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유리 작가는 일상 속에서 상상력의 공간을 발견할 수 있게끔 독자들을 도와주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독자는 황폐하고 적나라하게만 느껴지는 하루하루를 유쾌하게 지속해 나가는 명랑한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유리 작가의 소설들이 전달해주는 유쾌함은 무해하고 편안하다는 점에서 근래 발표되는 소설들에서는 느끼기 힘든 독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 한국의 단편소설들은 사회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높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고, 이 작품들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다방면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권력과 폭력을 담고 있는 만큼 독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오늘날 문예지와 단행본으로 발표되고 있는 소설들을 읽는 일이 가끔씩 힘겹게 느껴지는 것 역시 이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폭로하고 있지만, 사회에 몸담고 살아가는 시민으로서는 오늘날의 소설들을 마냥 편하게 읽을 수 없는 것이다. 이유리 작가는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부담을 살짝 덜어주었다. 작품의 공간을 현실과 살짝 떨어뜨려 놓음으로서 독자들이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만들어 준 것이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현실로부터 작품을 다소간 분리시켜 ‘안전’하게 독서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그녀의 소설을 ‘지속가능한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부나 기업, 비영리단체에서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이 지구공동체를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유리 작가의 소설은 개인의 인생을 존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불안한 사회 속을 살아가야 한다. 정보 집약적인 현대사회는 실체를 알기 어려우며 근본적으로 개인에게 불확실한 것이다. 이유리 작가의 문학은 위험으로부터 항상 안전한 곳일 거라 생각한다. 언제 선택해도 항상 무해한 세상으로 독자를 안내할 따뜻한 작품으로 항상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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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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