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대학생활의 끝에서 (2) 교양

글 입력 2021.04.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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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짠 시간표와 과제에 몸을 맡기고, 정량화된 평가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받았던 10대와는 달리, 대학 생활은 시간표도 직접 짜고, 대내외 활동도 자유롭게 골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교양수업이다. 전공도 문화산업과 심리학이라, 문화와 사회에 관한 것들을 많이 들을 수 있는데도 번번이 문화예술, 사회에 관한 교양 수업만을 골라 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듣는 체육, 과학 수업이 궁금해서 들어볼까 하다가도, 수강신청을 계획할 때 늘 나를 붙잡은 것은 나의 관심사와 관련된 수업들이었다. 이번에는 4년간 들었던 교양 수업들과 그 수업에서 배웠던 것들을 적어보려 한다.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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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러시아 예술에 관한 교양 수업만 두 번을 들었다. 하나는 러시아 예술의 전반을 다루면서도 아방가르드 예술을 중심으로 배우는 수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발레, 오페라 등의 공연예술에 관한 수업이었다. 다른 유럽 국가의 예술에 비해 러시아의 예술이 우리에게 익숙한 분야는 아니지만, 러시아도 다른 나라 못지않은 화려한 궁정 문화가 있었고, 혁명기의 예술 역시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굉장히 새로우면서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던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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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작품은 러시아의 고전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칼릭스토 비에이토가 재해석한 작품 <보리스 고두노프>다. 오페라의 원작은 보리스 고두노프가 황태자를 살해한 후 황위를 찬탈하여, 죽은 황태자의 망령에 시달리다가 스트레스로 죽음을 맞았던 실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비에이토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의 실제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를 현대의 대통령으로 바꾸고, 왕의 군사들을 경찰로 바꾸는 등 인물부터 배경과 소품까지 모두 현대적으로 바꾸었고,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오페라의 내용을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누군가는 평생 접해볼 일이 없을 이런 생소한 오페라에 관해 배우며, 문화의 힘과 국가의 정치적 힘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국가가 가진 힘이 그 국가의 문화를 주류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이바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문화의 힘이 그 나라를 높은 위치에 올려두기도 하기 때문이다. 늘 주변부의 문화로 존재했던 우리나라의 K-pop, 영화,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국격을 격상하는 보며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중 아래의 부분이 많이 떠오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서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외국어와 외국 문화


 

언어에 관한 관심은 많았으나, 생각보다 외국어 수업을 많이 듣지는 않았다. ‘양민 학살(이미 특정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쉽게 성적을 받기 위해 초급 수업을 듣는 사람들로 인해, 진짜 초급 수준을 듣는 사람들은 웬만큼 좋은 성적을 받기 쉽지 않음을 이르는 말)’ 같은 것을 모르던 새내기 때, 시간표에 넣기 좋았던 이탈리아어와 이탈리아의 문화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이탈리아어는 우리나라보다 전반적으로 말의 높낮이 차이가 강해 재미있게 들리기도 하고, 라틴어 계열의 다른 언어인 스페인어, 프랑스어와 비슷한 단어도 많아 비교하며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다만 여성 명사와 남성 명사의 구분이 조금 낯설기도 하고, 스페인어와 마찬가지로 동사 변화도 복잡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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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중심으로 배우기는 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중간중간 이탈리아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영화도 소개해주셨다. 고전 명작인 <인생은 아름다워>, <시네마 천국>부터, <말레나>, <피아니스트의 전설>, <피노키오> 같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까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언어와 예술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아마 영화를 먼저 봤더라면 언어의 매력을 느끼고 배우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고 나서 영화를 보고 나니 이제는 거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어가 떠오르고, 다시금 라틴어 계열 언어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솟아오른다.

 

 

 

사회와 법


 

한때 사회학을 이중전공으로 해볼까 고민했을 정도로 사회학에 관심이 많았다. 결국, 사회학 과목을 일부 수강해야 하는 융합전공을 택해 사회에 관한 여러 궁금증을 해소할 수는 있었지만, 이론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생활에 밀착된 주제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교양 수업들 쪽이었던 것 같다. 특히 저학년 때 들었던 사회학, 법학 교양 수업들은 내가 대학생으로서, 한 사회의 일원인 성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여러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해야 할지 가치관을 설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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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1학기에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양 수업이었던 법철학 수업을 들었다. 언뜻 보면 무시무시한 두 단어인 법과 철학이 합쳐져 어렵기만 할 것 같지만, 법의 입장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실생활의 예시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이 수업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법과 실제 전문가들이 적용하는 법에는 큰 간극이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범죄를 다루는 뉴스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내용 자체도 흥미롭고 좋았지만, ‘술을 사 마시는 데는 5만 원이 들어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책에 쓰는 돈은 왜 만 원이라도 아까워하는 것이냐’는 교수님의 말씀에 감명을 받아, 책에 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북튜버 김겨울의 책 <책의 말들>에도 집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은 ‘눈길을 줄 때마다 마음에 쌓여 시간에 따른 풍화를 막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요즘은 술에 쓰는 돈도 없다시피 하니, 좀 더 당당하게 책에 돈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읽지도 않은 책들을 뒤로 한 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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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인 심리학에서는 개인을 중심으로 인간의 행동을 탐구하는 반면, 사회학 교양 수업을 통해서는 좀 더 거시적인 구조로 인간이 속한 환경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고전 사회학자들의 이론은 여전히 현대사회에도 유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 신기했고,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사고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차별의 문제를 다룰 때는 거대한 질서 앞에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두는 개인이 몇 년 사이 확연히 늘어난 것 같아 희망을 품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사 학위만으로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는 어려운 문과 학부생으로서, 교양은커녕 전공 수업 내용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졸업할 것임을 안다. 그래서 각 수업에서 배운 점을 적어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고 남겨두려 노력했다. 사실 좋아하는 주제의 수업을 골라 들었기에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비슷한 주제의 수업을 듣다 보니 다른 수업을 듣다가도 이전에 들었던 수업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졸업할 때가 되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지만, 나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을 만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 집중해야겠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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