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린이'라는 세계 [도서]

글 입력 2021.04.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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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다닐 때, 국어 수행평가로 논설문을 썼던 적이 있다. 찬성이든 반대든 입장을 선택하고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글을 써야 했다. 당시 주제는 ‘노키즈존 도입’이었다. 사실 당시는 ‘노키즈존’이라는 개념이 생소할 무렵이었으므로 나는 수업에서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당시 수업을 지도하던 선생님은 너무나 명백하게 찬성 의견이었다. 돌이켜보면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선택하고 글을 써야 하는 과제에서 평가자인 교사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선생님은 어린이 때문에 식당에서 불쾌했던 경험을 밝히며 은근슬쩍 찬성에 표를 던지고 있었다.
 
당시 노키즈존에 대한 별다른 생각도 없었고, 어린이와의 접점도 없었던 나는 수행평가의 점수를 잘 받고 싶은 마음에 노키즈존 도입에 대해 찬성한다고 글을 썼던 것 같다. 당시 어떤 근거를 들어 찬성한다고 밝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국어 수업 시간이 내 생애 최초로 ‘노키즈존’을 접한 순간 만큼인 것은 똑똑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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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이 단어를 접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가 개봉했을 때 그랬고, 최근에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을 ‘노 배드 패런츠 존(No Bad Parents Zone)’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는 소식도 접했다. 어쨌거나 어린이를 배제하겠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최근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었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교실의 선생님으로 있는 저자는 노키즈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 (213p)

 

 
사실 노키즈존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 단어가 유독 이상하게 들린 것은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에는 없었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예전부터 존재해왔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노키즈존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옛날 아이들은 조용했나?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모두가 점잖았을까? 분명 그런 것은 아닐 것인데 말이다.
 
아이들이 거슬린다고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배제해버리는 방식은 너무나도 손쉬운 발상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세련된 노인’이나 ‘깨끗한 남성’, ‘목소리가 작은 여성’만 손님으로 받는다고 하면 당연히 문제 삼을 일을 왜 유독 어린이에게만 전체를 싸잡아 존재를 지우는 방식을 택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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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 IMJINA 사계절 제공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어린이’는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저자는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모두 ‘어린이’라 호명한다. 단순히 어린 존재로 취급하거나 어른으로서 내려다보거나 특별히 귀애하는 시선 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어린이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사실 나는 스스로 어린이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의 굵직하고 부정적인 사건들에 분노하고 해결책을 떠올려보곤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어린이와 나는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니까 말이다.
 
2020년 11월에 초판본이 나온 도서라 비교적 최근의 사회적 이슈들도 담겨있다. 작년에는 N번방 사건과 아동 성범죄자의 출소, 또 여러 아동학대 사건의 공론화가 이루어진 해였다. 절망적인 소식들이 쏟아질 때면 누구나 무기력하기 마련이다. 작년에 있었던 소식들을 떠올려보면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으로서 저자가 매듭지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고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새 종이를 주고, 다음에는 더 잘 그리도록 격려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 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 한다. (256p)

 

 
관용구처럼 쓰이는 ‘어린이는 희망’이라는 말이 왜 그런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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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 IMJINA 사계절 제공

 

 

2년 전 초여름쯤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데 서너 살쯤 보이는 어린이를 안고 있는 여성분이 계셨다. 사람으로 꽉 차있는 전철에서 후텁지근한 공기는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어린이는 칭얼거리며 울고 있었다. 어린이의 어머니는 조금 있으면 내릴 거라며 토닥거리며 달랬지만 어린이는 계속해서 울었다.

 

어린이는 부모의 사정을 봐주며 울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곱게 받아들이지는 않기에 어머니는 아이 달래기와 주변에 대해 고개 숙이기를 반복했다.

 

그때 한 젊은 남성이 나섰다. 남성은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켜서 어린이에게 코코몽 영상을 틀어주었다. 어린이에게 말을 걸며 관심을 끄는 것도, 영상을 트는 것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것도 모두 능숙했다. 영상을 틀자마자 어린이의 울음이 뚝 그쳤고 어머니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때의 기억은 무척 드물기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나도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그에게 한 수 배운 기분이었다. 누구나 처음 보는 어린이에게 다가갈 ‘용기’와 그를 ‘배려’하는 ‘관용’을 가지면 좋을 텐데.

 

나는 점점 삭막해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노키즈존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기에 우는 어린이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줄 어른이 점점 사라져간다고 느낀다. 어린이를 바라봄에 있어, 누구나 어린 시절을 거쳐왔다는 뻔한 말로 어린이라는 존재를 설명하기 이전에,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의 어린이를 정의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어린이와 생활하는 어른이라면 좀 더 섬세하게 어린이를 대하기 위해, 어린이를 만날 일이 없는 어른이라도 세상에 어디에나 있는 어린이라는 존재를 잘 이해하기 위해,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접하고, 나의 세계는 어린이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큼이나 넓혀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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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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