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야 하는 말을 뱉을 용기 - 더포스트 [영화]

글 입력 2021.04.0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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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더포스트>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상세한 줄거리를 안내하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신 후에 글을 읽길 추천해 드립니다.

 

 

 

해야 하는 말을 뱉을 용기


 

초반부의 '워싱턴 포스트'는 한심해 보인다. '타임즈'가 3개월 전부터 국가 보안 문서를 입수해서 검토하고 있을 때 워싱턴 포스트는 대통령 딸 결혼식에나 매달리고 있다. 흔히 언론을 다룬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비밀을 파헤치고 특종을 보도하는 기자를 떠올리지만, <더 포스트>의 주인공 워싱턴 포스트는 뒤늦게 알고, 뒤늦게 보도한다.

 

이 영화는 어떻게, 얼마나 빨리 할 말을 찾아내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더포스트>는 다만, '해야 하는 말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말을 뱉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언론사의 사주는 기업인인가 언론인인가.


 

캐서린은 기사의 품질과 수익성은 함께 간다고 믿어 왔다. 그에게는 주식상장 역시 회사의 성장뿐 아니라 기사의 품질 향상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회사의 존립'과 '언론의 가치'를 저울질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더군다나 그는 일반 기자가 아니라, 회사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사주의 위치에 있다.

 

'편집국장'인 벤의 결정이 언론의 가치를 내적으로 다룬 이야기라면, '사주'인 캐서린의 결정은 자본 대 언론의 가치가 대립하는 이야기다. 무엇도 자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언론이 자본과 부딪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 걸까?

 

영화가 벤보다 캐서린의 결정에 더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언론사는 회사이긴 하지만, 그 전에 언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언론사에게는 “존재할 수 있는가?” 보다,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언론사의 최대 목표는 사익 추구가 아닌 민주주의의 수호여야 하고, 이익 추구는 목표를 위한 수단에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캐서린의 결정을 통해 말하고 있다. 언론사의 사주는 기업인이기 이전에 언론인이라고.

 

 

 

'국가의 비밀'과 '대통령의 비밀'은 다르다.


 

워싱턴 포스트와의 재판 장면에서 검사는 “대통령이 비밀을 지킬 수 없다면 통치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대통령에게는 비밀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밀은 대통령의 비밀이 아니라 국가의 비밀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무언가를 숨길 때 중요한 건 그 비밀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개인을 위한 것인지이다. 전자의 경우, 언론이 이를 공개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언론은 당연히 대통령의 비밀을 같이 지켜주어서는 안 된다. “기관과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반역과 다름이 없다면 그것은 '짐이 곧 국가니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언론이 섬기는 건 국민이지 통치자가 아니다.”라는 영화 속 대사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만약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가 입수한 보안 문서가 보도 시 국가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가 전체에 위해가 가는 비밀이었다면 쟁점은 달라졌을 것이다. 펜타곤 문서는 국민을 위한 비밀이 아니라 대통령을 위한 비밀이었기 때문에 벤은 “우리가 지면 국민이 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당시 상황은 국가 전체의 이익과 언론의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 따위가 아니었다. 국가의 이익과 언론의 자유가 같은 편에 있었다.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의 결정은 국가보다 언론을 우위에 둔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킴으로써 국가의 이익 역시 도모한 선택이었다.

 

 

 

"뉴스는 역사의 초안이라고"


 

캐서린이 보도를 고민할 때 연구 담당자인 맥나마라는 -이 연구는 후손과 미래의 학자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다. 문서가 훗날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되기 전까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고 말한다. 캐서린이 이에 대해 바로 대답하지는 않지만, 결말 즈음 등장하는 캐서린의 대사가 그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뉴스는 역사의 초안”이며, “우리는 항상 옳지는 않지만, 그저 계속해 나갈 뿐”이라는 것.

 

역사의 한바탕에 있던 우리의 목소리는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하들, 당사자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사건과 상황의 당사자인 우리는 그 한복판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끊임없이 남겨야 한다. '우리 시대'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우리'의 생각 없이, 사건만 남기는 것은 반쪽짜리 역사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후대를 위하는 일은 사건을 그 자체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함께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써 남기는 것이며, 그것이 역사이자 언론이리라.

 

 

 

"당신은 중요한 사람인가요?"


 

캐서린과 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펜타곤 문서 보도는 그 둘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단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대니얼 엘스버그의 내부 고발에서부터 시작한다. 영화에는 그가 문서를 빼 내오기 전, 문 앞에 멈춰 서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민 끝에 그가 다시 내디딘 발걸음이, 이상의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문서를 입수해 보도하기 전에는 타임즈의 보도가 있었고, 워싱턴 포스트 후에는 다른 신문사들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보도의 시작부터 끝을 아울러 보면, 이 보도는 언론 간의 연대 행위였을 뿐 아니라, 시민 간의 연대 행위였다. 한 영웅의 초능력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내린 이상적 선택이 모여 이상을 이뤄냈다.

 

펜타곤 문서를 워싱턴 포스트에 전달하러 온 사람은 기사를 쓰고 있는 평범한 기자에게 묻는다. “당신 중요한 사람인가요?”, “저는 일반 기자인데요”. 그 대답에 그는 기자에게 문서를 전해주고 떠났다.

 

 

 

이상적 선택과 최소한의 안전망


 

캐서린은 보도를 위해 정말이지 모든 것을 걸었다. 그가 내린 선택은 아주 영웅적이었다. 하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우리는 그런 영웅이 아니다. 이상을 위해 우리의 최소한의 삶마저 내던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개인에게 "훌륭한 선택을 해라, 용기 있는 선택을 해라,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해라"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부터 사회가 깔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개인에게 이상적인 선택을 요구할 면목이 있지 않겠나.

 

한 사람이 이상을 위해 나아가는 길이, 최소한 숨은 쉴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나아가는 개인과, 그 발걸음으로 이루어질 사회, 둘 모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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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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