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하는 어른들에게 - 어른들은 몰라요

글 입력 2021.04.0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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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화영>으로 가출 청소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다룬 이환 감독이 <박화영> 속 '세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어른들은 몰라요>로 돌아왔다.

 

<박화영>을 안 봤어도 괜찮다. <박화영>을 봤다면, 더 흥미로울 것이다. <박화영>에서 "나 지금 임신 중임"이라고 말하던 세진이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아이를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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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세진은 흔히 말하는 가출 청소년, 문제아, 비행청소년이다. 열여덟에 덜컥 임신을 해버렸고, 해맑게 "애 뗄 거임!"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상은 흔들리는 보드보다도 위태로운 외줄 타기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외면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린다. 어른의 도움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미성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몰라주는 어른들' 앞에서 무력해지는 미숙한 어린아이들의 존재를 세진, 주영, 그리고 재필을 통해 영화를 보는 어른들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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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치료해 주기엔 작은 밴드에 불과했던 '주영'


 

임신을 했으나, 이후의 해결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채 떠돌이 신세가 되어버린 세진에게 가출 4년 차 동갑내기 '주영'이 나타난다. 아이를 지우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둘, 여기에 성인이긴 하지만 어딘가 아직 어려 보이는 재필과 신지도 합세한다.

 

처음 만났지만 절친이 된 넷은 세진의 아이를 지우기 위해 여러 일들을 시도하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고, 어른들의 힘을 이기지 못한 채 그들은 갈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주영은 끝까지 세진의 곁에 남아있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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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온몸을 던져 위험에 처한 세진을 구하고 싶지만 여전히 어린 열여덟이었기에 펑펑 울면서 살려달라고 어른에게 빌 수밖에 없었고, 꼴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세진에게는 그저 작은 밴드를 붙여줄 수밖에 없었다. 상처투성이인 세진에겐 역부족한 작은 밴드.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10대들은 끊임없이 구원을 바라지만 결국 무너지고 만다. 스스로를, 서로를 구원하기엔 너무 작고 나약하다.

 

 

 

결국 어른들의 편에 서서 등 돌리는 '재필'


 

'재필'은 세진과 주영에게 나타난 어른의 손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나이도 두 소녀보다 많은 성인이었고, 그래서 위험에 처했던 세진과 주영을 구해주기도 하며,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나락에 빠지기 직전까지 간 세진과 주영을 막아주기도 한다.

 

나이만 더 있을 뿐, 돈도 없고 힘도 없이 떠돌이 신세로 다니는 건 마찬가지지만, 세진의 임신중절 수술을 성사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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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돌아오는 건 현실에 벽에 부딪힌 채 흘리는 피뿐이다. 재필은 성인이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어린 사람이었고, 결국 '어른'들에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어쩌면 현실의 어른들보다도 더 혹독하게 세진에게서 등을 돌린다.

 

줬다 뺐는 거이 더 무서운 법이라는 말이 있듯, 도움의 손길을 내밀다가 그 손을 잡은 세진을 뿌리친 재필이 더 잔인했다. 즉, 이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보다 알고 있던 어른들이 현실적으로 '사회'를 이겨내지 못하고, 기성세대를 답습해버리는 것이 더 무섭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마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재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나부터도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는 학원물, 성장 영화를 보고 주변에게 추천하며 이런 사회 문제에 관해 인식해야 한다고 말로는 얘기하고 다니지만 정작 나는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는 현실의 장벽에 주저앉곤 하기 때문이다.

 

외면당하고 있는 사회의 어둠 속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호기롭게 마음은 먹어도, 선뜻 해결책을 선사하지는 못하고 다시 현실 속으로 흡수된 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려는 어른들에게 이 영화는 묻고 있다. 정말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알고자"했었냐고.

 

 

 

가장 어린 '세정'은 알아요.


 

그 어떤 어른들도 세진을 구원하지 못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서 가장 어린 '세정'이 세진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자해를 하고 무언가를 보고 (환시로 추정된다) 정신을 반쯤 놓은 세진을 안아주고, 세진이 아이를 지우든, 낳든 몸 건강히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세진이 정처 없이 보드를 타다가도 세정에게 전화를 건다. 혼자 남은 세진에게 특별한 말은 하지 않더라도, 괜찮냐고 물으며 현재의 세진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세정만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모르지만 가장 어린 사람만이 세진을 알고 마음으로 이해한다. 정말 어른은 누구였을까.

 

 

 

어른들은 몰라요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된 세진에게 진짜 어른이 나타난다. 세진을 보살펴 주고, 아이를 지우기보다는 아이도 안전하게 낳을 수 있게 도와준다.

 

세진은 지낼 수 있는 집도 있고, 보호자도 생겼고, 어쩌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공간도 생겼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러한 환경에 섞이지 못한다. 생활하고 있는 곳에서 세진의 것은 보드 말고는 없다. 태어날 아기를 위한 아기용품들과 출산을 위한 여러 물품들은 쌓여가지만 세진의 것은 없다.

 

즉, 세진을 알아주는 건 아무도 없다. 세진의 곁에 있는 어른들은 여전히 세진을 모른다는 뜻이다. 물론, 그 어른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세진에게 필요했던 사람들인 건 맞다. 하지만, 과연 세진이 어른들에게 가장 알리고 싶었던 것이 단순히 "나 지낼 곳이 필요해요, 나 아이를 가졌는데 어떡하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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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세진은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본인이 보드를 타기도 하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보드는 꼭 붙들고 다닌다. 세진을 연기한 배우 이유미는 세진에게 보드는 꿈, 동경하는 자유라고 언급했다.

 

밑바닥에서 방황하면서도 자신이 언젠가는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세진.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보드를 타고 길 위를 가로지르던 세진은 여전히 미완의, 어린 소녀다. 그런 세진이 이제 어느 편에 서게 될지 궁금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에게 외면당했던 세진이 다시 세진과 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더 매몰차게 그들을 내칠지, "알아주는 어른"이 될지, 아니면 여전히 어른 앞에서 무너지는 나약한 어린 청년에 머무를지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어른들은 탈선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덜컥 임신을 해버린 세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대신 입단속부터 단단히 일러두는 학교 어른들처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저들의 잘못과 일탈일 뿐 어른의 책임은 없다며 애써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버리진 않았는가.

 

아니면 나름대로 손잡아 주려고 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그 손을 놓은 채 등 돌리는 어른들 편에 서서 그들을 모르기 위해 발버둥 치지는 않았는가.

 

영화를 보며, 당신은 어떤 어른이었는지 한번 돌아보는 걸 추천한다. 오는 4월 15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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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몰라요

 

개봉

2021. 04. 15.

 

감독

이환

 

출연

이유미 | 안희연 | 신햇빛 | 이환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상영시간

1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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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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