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의 본질과 젊음, 생기 - 피아니스트 전세윤 리사이틀 [공연]

글 입력 2021.04.0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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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봄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오랜만에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예술의 전당은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과 다소 떨어져 있어서 몇 걸음 걸어가야 했는데, 콘크리트 땅이 머금은 빗물 웅덩이가 너무 많아 도무지 발을 떼기 어려웠다. 그렇게 신발이 홀딱 젖은 채로 음악당에 들어가 피아니스트 전세윤의 리사이틀이 열리는 IBK챔버홀을 찾았다. IBK챔버홀은 중소극장 정도의 규모이고, 객석의 높낮이도 적당해서 어느 좌석에 앉아도 무대가 잘 보인다. 나는 2층에 앉았는데, 공연장의 음향도 잘 정비되어 있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리사이틀(recital)이란 한 사람의 예술적 행위(음악, 무용 등)를 중심으로 하는 공연을 뜻한다. 리사이틀에서는 혼자만의 역량으로 무대에 에너지를 채워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러니 피아노는 리사이틀에 적합한 악기라 할 수 있겠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어떻게 누르고 흔드냐에 따라, 음계의 높낮이와 소리의 세기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의 연주자가 단 하나의 악기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사이틀에서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이모저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자 다양한 곡들을 선별해 프로그램을 채운다.

 





Program


 
Ludwig van Beethoven
Piano Sonata No. 6 in F Major Op. 10-2
 
Claude Debussy
Preludes Book 1
Ⅳ. Les sons et les parfumes tournent dans l'air du soir
소리와 향기가 저녁 대기 속에 감돈다
Ⅵ. Des pas sur la neige
눈 위의 발자국
Ⅷ. La fille aux cheveux de lin
아마빛 머리의 처녀
 
Henri Dutilleux
Choral et Variations Op. 1
 
Johannes Brahms
Piano Sonata No. 3 in f minor Op. 5
 
 

 


누군가 좋아하는 음악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 자본’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적 취향을 자본의 개념으로 환산한다면 ‘클래식 음악’은 아마도 주로 상위 계층이 누리는 자본에 속할 것이다. 반대로 록이나 힙합처럼 직관적인 방식으로 정서를 전달하는 음악은 대중예술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예술은 문화적 계급을 나누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계급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일종의 장벽을 쌓음으로써 생긴다. 예컨대 클래식 음악은 화성학 관련 지식이나 음악사에 관한 견해가 부족하면 즐기기 어렵다. 뮤지컬은 그나마 대중 친화적이지만, 오페라 음악은 정서 전달보다는 선율의 미적 구성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관객의 계급을 나누는 장벽을 만들 수 있다.

 

 

전세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6번 연주 영상

 

 

아마 전세윤이 첫 곡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선정한 것은 이러한 장벽을 낮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베토벤처럼 서양 음악사에 크게 공헌한 음악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그의 음악은 공연의 포문을 열기에 적당하다.


베토벤 6번 소나타는 스타카토의 경쾌한 음형으로 주를 이룬다. 활기찬 에너지가 샘솟는 F장조의 선율은 분위기를 환기하며 지루하지 않은 속도와 구성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오른손 선율이 왼손을 따라가듯 고음에서 저음으로, 때로는 저음에서 고음으로 박진감 있는 전개를 이끈다. 이때 연주자의 몸이 움츠러들면서 힘을 잃었다가 순식간에 숨을 들이마시며 힘껏 템포를 끌어가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섬세한 신체의 움직임이 연주의 민감함을 대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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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다음은 드뷔시였다. 개인적으로 드뷔시를 무척 좋아하기에 기대가 되었는데, 전세윤의 연주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드뷔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작곡가다. 그렇기에 드뷔시의 음악을 듣다 보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진다. 드뷔시는 음악으로 자연의 색채와 풍경을 묘사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실력은 그러한 믿음을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출중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세윤은 드뷔시 전주곡집 1권 중 4번과 6번, 8번을 연주했다. 드뷔시는 인상주의 작곡가답게 자신의 곡에 제목을 붙였다. 4번의 제목은 ‘소리와 향기가 저녁 대기 속에 맴돈다.’이다. 실제로 이 곡을 듣다 보면 눈앞에 저녁노을이 펼쳐지는 듯하다. 음악을 통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마치 뮤지컬계의 거장 손드하임이 음악에 서사를 담는 방식과 비슷하다. 재밌는 것은 드뷔시 특유의 동떨어진 화음과 비선형적인 멜로디의 흐름이 손드하임의 음악과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음형 속에 내용을 담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이는 단순한 즐거움을 뛰어넘는 예술의 진보이다.


드뷔시 전주곡집 1권 중 6번과 8번은 더욱 인상적이다. 6번의 제목은 ‘눈 위의 발자국’이다. 간결한 멜로디와 반복적인 리듬은 설원의 고요함과 왠지 모를 긴장감을 표현한다. 8번의 제목은 ‘아마빛 머리의 처녀’로, 목가적인 분위기의 사랑스러운 선율을 연주한다. 따스한 소리의 울림은 감성을 자극하며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는 음악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 공감각적 심상이라 할 수 있겠다. 전세윤은 이러한 곡의 매력을 십분 살려 훌륭하게 연주해냈다.


다음은 앙리 뒤티외의 코랄 변주곡이었는데, 이 곡에서는 베토벤과 드뷔시 때의 소극적 연주와 달리 초반부터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건반을 내려친다. 에너지를 바깥으로 분출하는 곡이고, 빠른 속도로 다양한 기교를 소화해야 하기에 연주자의 높은 기량을 요구한다. 전세윤은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깔끔히 소화했다. 과하지 않았지만,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는 음악의 강렬함이 관객에게 주는 영향을 알고 강약의 경계를 잘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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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인터미션,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전세윤이 마지막으로 선보인 것은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이었다. 이는 전형적인 3악장 혹은 4악장 구성이 아닌 5악장 구성을 취한다. 브람스가 이 곡을 작곡했을 당시는 소나타의 역사가 점차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브람스는 대중에게 인기를 잃어가는 전통적 소나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음악가이며, 5악장이라는 과감한 형식을 취함으로써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브람스의 음악적 모토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였다. 실제로 그는 평생 고독한 삶을 보냈지만, 자유로웠다. 자유는 제멋대로다. 자신만의 색깔과 형태를 확립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성정은 3악장의 화려한 기교로 나타난다. 음정 하나, 박자 하나를 놓치지 않고 연주하며 동시에 자유로움을 그려야 한다.


브람스는 자유로운 동시에 고독했다. 그는 클라라 슈만을 연모했지만, 끝내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서글프면서도 안타까운 음악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작곡가의 고독은 젊은 피아니스트인 전세윤이 텅 빈 무대 위에서 홀로 피아노와 소통하는 모습과 겹쳐지고, 악장과 악장 사이를 이어가며 완성형 소나타로 의미를 이룬다. 자유와 고독은 인간 곁을 평생토록 떠나지 않는 삶의 모습이기에, 브람스는 그 깨달음을 악보에 담아 후세대 피아니스트와 우리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전세윤은 앵콜곡으로 스크리아빈의 <왼손을 위한 녹턴>을 연주했다. 이전의 곡들이 리사이틀의 목적과 맥락에 맞추어 완벽하게 짜인 계획 속에서 연주되었던 것이라면, 앵콜곡은 전세윤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기 위해 연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왼손으로만 녹턴을 연주하며, 피아노 건반을 넘나드는 손의 움직임에 자랑스러움을 담아 관객과 소통한 피아니스트 전세윤. 꾸밈없는 음악의 본질과 젊음, 생기를 느낄 수 있는 좋은 마무리였다.


*


이제는 예술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가치의 발전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지만,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는 무대 위에서 건반을 누르며 찬란히 빛나는 피아니스트의 손은 아직도 유효하다.


손가락 마디에서 우러나오는 힘으로 만들어지는 소리의 집합에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소리의 모양과 연주자의 몸짓에 집중하는 관객에게는 무대의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마음껏 상상하는 관객은 또 다른 예술가가 되어 특별한 기쁨을 만끽한다. 놀랍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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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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