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은 누가 정할까 [공연]

뮤지컬 ‘위키드’에서 엘파바의 결말은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글 입력 2021.04.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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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조명과 무대장치, 화려한 드레스와 풍성한 음악. 뮤지컬 <위키드>는 ‘뮤지컬’이라 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에메랄드 시티에 처음 방문하게 된 두 주인공이 부르는 ‘One Short Day’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화려한 초록색 조명에 신나는 음악까지 더 해져 관객들 모두 에메랄드 시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그런데 가사를 곱씹어 보면 어딘가 심상치 않다. 모두가 한 치의 의심 없이 오즈의 마법사를 찬양하는 가사는 어딘가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장면처럼 <위키드>는 마냥 화려하고 신나는 공연이 아니다. 그 화려함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 냉담함이 있다. <위키드>는 유명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비튼 뮤지컬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에 집이 날아가 버려 고향에 돌아가는 방법을 찾던 도중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간다. 오즈의 마법사는 사악한 서쪽 마녀를 쓰러뜨리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서쪽 마녀가 물에 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도로시는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와 힘을 합쳐 서쪽 마녀를 물리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간다.

 

<위키드>는 이 서쪽 마녀, 엘파바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키드>에서 엘파바는 마법에 재능과 열정이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엘파바는 오즈의 마법사를 동경했지만, 사실 그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무능하고 악한 사람일 뿐이었다. 엘파바는 그의 실체를 알게 된 후 그의 악행을 밝히고 피해를 당한 동물들을 구하려 애쓴다. 그러자 마법사는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라며 오즈민들을 선동한다. 그렇게 엘파바는 사악한 서쪽 마녀로 <오즈의 마법사>에 기록된다.


악한 마녀를 물리치고 선을 쟁취했다 자부하는 오즈민들은 사실 오즈의 마법사라는 무의미한 대상을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다. 선악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행한다. 악한 자를 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을 악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 그것이 진실이라 굳게 믿고 역사를 써나간다. 오프닝 곡 ‘No One Mourns The Wicked’에서 오즈민들은 악행의 결과가 곧 서쪽 마녀라며 고통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자신이 선하다 믿는 그들 모두는 악행에 가담하고 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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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위키드>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당연한 건 없다. 다른 관점으로 보고 의심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관점에 따라 선한 사람이 이렇게나 악한 사람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우리의 이 서쪽 마녀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니다. 다른 눈으로 본 것일 뿐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의 결말과 달리 <위키드>에서 엘파바는 도로시가 부은 물에 녹은 척 사람들을 속이고 빠져나와 연인인 피에로와 함께 오즈 바깥으로 떠난다. <오즈의 마법사>의 서쪽 마녀는 그저 악한 마녀인 채 죽음을 맞아 새드엔딩으로 끝났지만, ‘위키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키드>의 엘파바는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엘파바는 ‘The Wizard and I’라는 넘버에서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한다. 언제나 겉모습으로 판단 당하던 엘파바는 마법사와 함께한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잔뜩 기대한다. 그러나 엘파바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에게 비난을 받으며 정확하게 반대로 이루어진다. 엘파바는 아무에게도 애도 받지 못한다. 유일한 친구 글린다만 홀로 남몰래 슬퍼할 뿐이다. 그런 엘파바의 결말은 새드엔딩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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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키드>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대로 다르게 바라보면 해피엔딩이 될 수 있다. 엘파바는 ‘Defying Gravity’라는 넘버를 통해 ‘The Wizard and I’에서 바라던 것들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랑 잃을까 봐’ 너무 오랫동안 두려워한 것 같다고 고백하는 엘파바는 이제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이라 다짐한다. 또 ‘홀로 날고 있지만 나는 자유롭다’고 당당하게 외친다.

 

또한 엘파바는 한때 피에로의 사랑이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파했고 그와 함께 하는 모습을 꿈꿨다. 그리고 결국에는 피에로와 사랑을 이루고 함께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또 피부색으로 놀림 받으며 친구 하나 없이 날 서 있던 엘파바는 우여곡절 끝에 글린다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며 성장한다.

 

무엇보다 엘파바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 글린다를 위해 자신의 진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마녀로 남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각자의 내일로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엘파바가 선택한 그 삶을 단순히 새드엔딩이라, 애도의 대상이라고 치부해선 안 될 것 같다. ‘No One Mourns The Wicked’에서 사람들은 엘파바에게 애도 따윈 없다고 하지만, 사실 엘파바에게 애도 따윈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공감 없는 그들의 애도는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다. 엘파바를 공감하는 한 사람, 글린다가 엘파바를 위해 애도하고 있기 때문에 엘파바는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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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디에도 완벽한 해피엔딩, 완벽한 새드엔딩은 없다. 어떤 이의 삶에, 혹은 이야기에 오로지 행복만, 불행만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해피엔딩, 새드엔딩을 누군가가 단정할 수는 없다.

 

‘Thank Goodness’에서 글린다는 모두의 환호 속에 꿈을 이룬 지금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완벽한 해피엔딩’을 맞아 기쁜 게 당연하다는 글린다의 말속에는 왠지 슬픔이 서려 있는 듯하다. 글린다는 꿈을 이뤘지만, 결국 사랑하는 피에로도 엘파바도 잃은 채 홀로 남게 되었다. 엘파바 역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삶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비난받는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결말은 모두 해피엔딩이면서 새드엔딩이다.

 

결국 누군가의 인생은 타인이 행복한 삶이라 평가할 수도, 불쌍한 삶이라 함부로 애도할 수도, 나쁜 삶이라 비난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우정과 사랑을 위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나간 엘파바의 결말 또한 엘파바의 몫일 것이다. 엘파바의 몫은 엘파바에게, 글린다의 몫은 글린다에게 맡긴 채 우리는 그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인생의 내일로 나아간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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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심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 읽다가 눈물이 고였어요ㅠ_ㅠ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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