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구와 담이 사랑하는 법 [도서/문학]

우리에게 너와 나라는 구분이 무슨 소용일까
글 입력 2021.04.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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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뭘까.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사는 것일까. 함께 죽는 것일까. 삶과 죽음을 함께 하게 된 구와 담은 행복했을까. 그들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죽음이 더 많이 등장하는 책. 구의 증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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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겠지



삶의 대부분을 함께 살아온 구와 담. 그들은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다. 둘은 사귀는 사이냐는 질문에는 웃기만 했다. 구와 담은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흐르는 관계였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청설모가 되기 위해 들어온 이곳에서, 구가 말했다.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담은 구의 말이 전혀 끔찍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는 담보다 먼저 죽었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빚쟁이들이 구의 시체를 가져가도록 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구의 몸에 칼을 댈 수도, 불을 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담은 구를 먹기 시작했다. 길어버린 손발톱을 깎아 삼키고, 머리를 곱게 빗어 나온 머리카락 뭉텅이를 삼켰다.


처음엔 그런 담의 행위가 조금은 기이했지만 점점 이해가 되었다. 담은 정신을 놓아버릴 수도 없었다. 미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잡았다. 자신이 누구를 먹고 있는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 스스로를 때렸다. 잊지 않기 위해 정신을 깨우고 오래된 백설기처럼 말라버린 구를 뜯어 먹었다.

 

책에는 ‘먹는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담은 죽은 구를 먹었고, 살아 있는 구의 입술을 뜯어 먹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가까움에도 끊임없이 하나가 되기를 갈망했다. 서로의 경계가 없어지기를 바랐고, 그것은 구와 담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한 쌍이었고, 가까이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결국엔 함께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죽음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었고, 추상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그리 되었다. 둘은 다른 조각으로 떨어져 태어났지만 하나가 되고 싶었기에 서로를 틈 없이 옭매었다. 담이 구를 먹었을 때, 그들은 진정 원하던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구를 먹은 담의 행위는 미개하고 야만적이었나?

 

담은 돈과 계급으로 점철된 지금의 인간들이 더 미개하다고 생각했다. 돈과 권력으로 우위를 점하고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 것이야말로 미개하지 않은가.




제 2장.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 그 소년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마주하게 될까? 담은 어린나이에 남들보다 많은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할아버지가 죽고, 사랑하는 이모가 죽고, 어린 노마가 죽고, 마지막으로 구가 죽었다.


노마가 책 귀퉁이에 그린 움직이는 그림 속의 네 개의 별이 되어 사라진 소년과 자전거,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노마는 자전거를 타다 죽었고, 구도 죽었지만 담만이 살았다. 담은 오랫동안 살아남아 구를 사라지게 두지 않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구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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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물론 죽어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죽어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걸까? 죽은 구와 노마는 만나서 웃고 있을까?


담은 확신할 수 없었다. 죽음으로써 오히려 영영 함께 할 수 없게 되면 어쩌지. 그래서 담은 구를 먹었다. 그렇게라도 함께하고 싶었다. 함께 살고 싶기보단 그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괜찮다, 아가야,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갈 거야.


근데 그런 걸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나, 이모.

지나가지 못하고 고이는데. 고유하게 거기 고여 있는데.

 


담에게 죽음은, 거기에서 오는 상실은 지나가지 않고 고여 있었다. 많은 죽음을 지켜보았음에도 죽음은 이해되지 않았다. 노마는, 이모는, 구는 왜 죽었을까.


난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주변의 죽음을 볼 때면 엄마는 늘 ‘힘들어도 남은 사람을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죽은 사람만 불쌍하게 됐다’고 한다. 나는 남은 사람을 떠올린다. 담을 떠올린다. 담에게 남은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구를 먹고, 구와 하나가 되어 남은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담에게 행복이었을까? 부채였을까?

 

담은 살 수 있음에 안도했을까? 절망했을까?




제 3장. 구와 담



구와 담. 나는 ‘구’와 ‘담’이라는 이름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담은 성장한 구를 보며 ‘몸만 크고 내면은 짜부라진 것 같다. 넓고 큰 도화지를 두 손으로 구깃구깃 구겨 아주 작은 공처럼 만들어놓은 것 같다’ 느낀다. 세상에 대한 불안함으로, 불안정함으로 똘똘 뭉친 구(球)처럼 구는 자신만의 작고 뭉쳐진 세계에 갇힌 사람 같았다.


반면 구는 담을 넘어서는 안 될 담처럼 느끼는 듯 했다. 구는 담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의 존재가 피해가 될까 담을 피했고, 청소년기의 담이 자신을 좋아할 리 없다며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담을 사랑했고, 담은 늘 같은 자리에서 그런 구를 기다렸다.


담은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했고, 구는 사랑이란 원래 서로를 괴롭게 하는 것일까, 했다. 그럼에도 둘이 사랑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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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가 죽은 후, 서로에겐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서로에게 괴로움이 되고 싶지 않아 서로를 피하게 된다. 담과 멀리 떨어지게 된 구는 진주누나를 만나고, 자신의 안에 뭉쳐있던 수많은 감정들과 마주하게 된다. 독 같은 불안, 세상에 대한 불만과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마주하게 된다.


봉인된 감정을 알게 된 구는 담을 찾아갔다. 야위어버린 담은 차고 메마른 돌멩이 같았다. 그랬다. 서로에게 서로는 구이자 담이었다. 각자의 감정에 갇혀 서로를 피하다가도 서로를 갈구하고, 알고 싶어 하고.


동그랗게 뭉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서로를 피하다가도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담이 되고, 서로밖에 없는 세계에 서로를 가두고.




제 4장. 구의 증명



기억이 나의 미래. 기억은 너. 너는 나의 미래.


구의 증명은 결국 담이 살아있다는 것이고, 그것만이 구가 살아있다는 증명이었다. 죽은 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뿐이었으며 기억 속에는 담만이 존재했다. 구가 할 수 있는 것은 담을 기억하는 것 뿐, 담만이 구의 유일한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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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구는 늘 말했다. 우리를 기억해줄 사람은 없다고. 우리가 우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세상에는 서로만이 전부였다. 담이 사는 것이 구가 사는 것이었고, 그것만이 구가 살아있었다는, 살아있다는 증명이 되었다.


 

담아.

이 멍청아.


이제 됐어. 넌 다 했어. 이 장례를 끝내야지. 끝내고 살아야지. 아주 오래 살아야지.

너도 여기 있고 나도 여기 있다. 네가 여기 있어야 나도 여기 있어.

밖을 봐. 네가 밖을 봐야 나도 밖을 본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살아.

담아.

이 바보야.



죽은 구가 장례를 지켜보며 담에게 말했던 것처럼, 구의 증명을 위해 담은 살아야 했다.


담에게 무조건 살아라 하는 것은 이기적이겠으나 담이 스스로를 위해 더 많은 즐거움을 찾아 살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새로운 행복을 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담의 세계에 행운이 찾아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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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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