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글의 의미를 찾고 있는 나에게
글 입력 2021.03.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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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됐다.

 

어릴 적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보면 어떤 인사를 해야 할까,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처럼 어떤 문장으로 글을 써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무엇보다 어떤 이야기로 아트인사이트를 다시 찾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학업과 취업 준비를 이유로 잠시 컬처리스트로서의 활동을 쉬겠다고 말한 후 6개월이 지났다. 6개월 동안 그럭저럭의 학점으로 학업을 마무리했다. 취업도, 다행히 날 원하는 곳이 나타났으니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고 6개월의 대장정과 마무리를 알리러 아트인사이트를 다시 찾은 건 아니다. ‘나의 취업 준비기’, ‘직장인의 고충’을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적은 있었다. 이 같은 주제로 글을 써서 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작성 중인 이 글만큼은 그 목적이 ‘나’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혹은 어떤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이 물음의 답에 나는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랬다. 대학교에 입학해 학보사에 들어갔을 땐 내가 속한 조직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 사실은 마감에 쫓기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글을 썼다.

 

졸업반이 됐을 무렵에는 전국 곳곳의 기업을 위해 글을 썼다. ‘나 이만큼 능력 있다’, ‘돈 안 줘도 되니 제발 뽑아만 달라’는 뉘앙스의 감언이설이 어떻게 하면 전달력 있게 표현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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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부끄러운 감언이설을 감사하게도 좋게 봐주는 회사가 있었고, 의도치 않게 이 회사는 언론사였다. 글로 밥벌이를 하게 된 것이다. 평생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글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오니 막막해졌다. 눈앞이 캄캄해진 이후부터 내 펜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 됐다.

 

이 펜을 놓는 순간 나는 조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쓸모없으면 말해 뭐해, 도태되겠지, 도태되면 돈을 벌 수 없다. 돈을 벌지 못하면? 의지할 데라곤 없는 이 광활한 도시에 미운 오리 새끼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지. 이러한 생각을 주문처럼 가슴 속에 되뇌며 매일 커다란 백지에 검은 활자를 채워 나갔다. 당연히, 행복할 리 없었다. 글을 쓰는 의미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감을 잃었는지조차 몰랐다.

 

‘뭐, 다들 그렇게 사는 거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아트인사이트가 떠올랐다. 2년 가까이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했는데, 처음엔 순전히 취업을 위해 시작한 활동이었다. 당시 잡지사 취업을 희망하고 있었기에 글 쓰는 대외활동을 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16기 에디터가 된 후 문화리뷰단을 거치면서부턴 글 쓰는 재미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말주변이 없는 데다 차분하지도 못한 성격 탓에 하고픈 말을 꺼내는 것이 힘들었던 내게 ‘글’은 아주 유용한 매개체였다.

 

또 스스로 실력에 부족함을 느끼며 좀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좋았다. 다른 에디터들과 글을 비교해보며 색다른 표현법과 관점을 생각하는 것 또한 쏠쏠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내가 쓴 글이 포털사이트에 실렸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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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이란 재밌었던, 그리고 재밌을 수도 있는 존재라 생각하니 눈앞에 놓인 하얀 백지의 빈칸도 다시 보게 됐다. 무엇의 수단도, 목적도 의식할 필요 없이 글을 썼던 시간이 있었구나. 압박감에서부터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아직 남아있구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과 특별한 기교, 신속한 정보 없이 진솔함 만으로도 하얀 빈칸은 풍부하게 채워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일상에도 조금씩 빈칸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 빈칸을 나만의 진정성으로 채워보고 싶다.

 

6개월의 쉼에 마침표를 지으며 다시, 더없이 솔직한 독수리 타자로 황채현의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잘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공간을 통해 휴식한다는 느낌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나와 함께 글을 향유하는 여러분들 또한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마음 한편의 여유가 생겼으면 한다.

 

그 어떤 목적도 없는 빈칸을 여러분만의 색이 담긴 글로 채울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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