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따뜻한 손끝에서 만난 위로의 순간: 임미정 피아노 독주회

글 입력 2021.03.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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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1년 1분기도 끝나가고 있다. 시간은 언제나 유수와 같아서 순식간에 지나가곤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필수적인 활동만 제한적으로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시간에 더욱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쏜살같이 흘러가버리는 이 2021년의 1분기에도 방점을 찍어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3월 말로 예정된 임미정 피아노 독주회를 다녀왔다.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도착하니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공연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홀이 북적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IBK챔버홀을 어느 정도 채우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 자리에 앉아보니 정말 많은 관객이 이번 무대를 찾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였다는 점이다.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들어오는 미취학 아동부터 연세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들까지,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무대에 함께 호흡하고자 찾아온 게 보였다.


 



PROGRAM


Franz Schubert (1797-1828)

Four Impromptus, Op. 90, D. 899

- No. 1 in C minor

- No. 2 in E flat Major

- No. 3 in G flat Major

- No. 4 in A flat Major


INTERMISSION


Franz Liszt (1811-1886)

Sonata in b minor

 




1부는 슈베르트 즉흥곡 작품번호 90 중에서 1번부터 4번까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낭만주의 가곡의 창시자인 슈베르트만의 서정성과 표현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피아니스트 임미정은 단조인 1번과 장조인 2~4번, 특히 관객들에게도 익숙할 작품들을 선곡하였다.


즉흥곡 1번은 두 개의 테마가 변주되면서 자유로운 화성으로 발전되어 간다. 강렬한 첫 타건 뒤에, 피아니스트 임미정은 여리지 않은, 심지가 굳은 소리로 화음들을 쌓아나갔다. 슈베르트의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그 간결하고 깔끔한 소리가 아주 아름다웠다. 서정적인 주제로 넘어갔을 때에도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담백해서 첫 곡으로도 좋았다. 뒤이은 즉흥곡 2번은 유명하고 아름다운 아르페지오로 도입부부터 유명한 작품이다. 곡 자체가 부드럽고 유연한 만큼,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연주도 아주 유려했다. 그리고 확실히 더욱 자유로워보였다. 장조와 단조를 넘나드는 자유로움 속에서 터치 하나하나에 관록이 묻어나는 듯했다.


3번 역시 슈베르트의 즉흥곡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로맨틱하고 아주 서정적이어서 언제 들어도 흐드러지는 가을 들판을 비추는 황혼을 바라보는 심정이 되게 하는, 그런 곡이어서 1부에서 가장 기다린 작품이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임미정은 바로 이 3번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그가 전달한 슈베르트 즉흥곡 3번은 몰입된 게 느껴질 만큼, 그 감정의 전달이 뜨겁게 피부로 와닿았다. 1부의 마지막인 4번에서는 다시금 그 감정을 거두어 보다 절제된 상태로 전달해 주었다. 아름다운 가단조의 하행 화음에서 점차 가장조로 나아가기까지, 때로는 깊은 페달링으로 그리고 때로는 가벼운 페달링으로 깊이감을 조절해가며 즉흥곡 4번에 색채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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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온전히 리스트 소나타 1곡만을 위해 할애되어 있었다. 리스트 피아니즘의 사실상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 대작이 이번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다니, 평화와 삶을 노래하는 피아니스트 임미정이 선곡했다는 점에서 특히 선곡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연의 매순간을 연상할 수 있는 슈베르트의 작품과 다르게 엄청난 스케일이 담겨 있기 때문에, 평화와 자연 그리고 삶에는 조금 안어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 속의 드라마는 리스트의 소나타 속에 들어있는 것 이상으로 다이나믹하기에, 그런 차원에서 선곡을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스트의 나단조 소나타가 아주 명암대비가 극적이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연주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른 리스트였다. 우선 가장 먼저, 도입부부터 달랐다. 리스트의 나단조 소나타는 섬약하게 시작해서 원초적인 에너지의 폭발로 가야 한다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듯하다.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첫 터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 어찌 보면 도입부부터 강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은 슈베르트 즉흥곡 1번에서도 느낀 부분이었는데, 강한 대목을 피아니스트 임미정만의 느낌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는 게 확실히 특색있게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암흑 같은 고통 속에서 마치 한 줄기 빛을 발견하여 구원을 갈구하는 듯한, 그 장조의 순간이 돌아올 때면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손끝은 따뜻해졌다. 부드럽고 따뜻한 그 전달 역시, 뭔가 기존에 리스트 소나타의 이 대목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결이 비슷한 듯 달랐다. 비유를 하자면, 내가 생각해왔던 것은 흑백의 대비였는데 이번에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연주 속에서 느낀 것은 네이비와 아이보리의 대비처럼 느껴졌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즉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리스트 소나타 나단조는 명암의 대비가 차가울 정도로 느껴지기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둥글둥글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역경과 고난의 드라마 속에서 희망과 구원에 도달하는 그 서사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그의 연주에서는 어두운 면으로 인한 극적 대비보다 긍정과 낙관의 그 순간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져서, 그 따뜻한 터치 하나하나가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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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으로 끝마무리 지은 만큼, 앵콜곡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객석의 뜨거운 박수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돌려주고자, 피아니스트 임미정은 다시 무대로 나와 짧은 앵콜곡을 연주했다. W.Gillock의 Autumn Sketch였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실제 강원도 인제 백담사에서 그가 연주한 영상을 살펴볼 수 있다. 짧지만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연주였다.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연주는 아주 따뜻했다. 평화와 삶, 자연 그리고 휴머니즘을 위해 활동하는 그의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답기 때문일까, 그 손끝에서 만나는 음 하나하나가 마음을 위로하는 듯했다. 그런 그가 평화와 생명을 주제로 하는 PLZ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게 느껴졌다.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협연의 대상으로서 자연을 바라보는 취지로 이루어진 PLZ 페스티벌과 그 연장선 상에서 이루어진 이번 리사이틀까지.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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