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다리 없는 오징어

글 입력 2021.03.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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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동네의 특징은 장날이 있다는 거다. 내가 사는 곳에도 5일마다 장이 선다. 과일, 채소, 생선, 곡물, 호떡, 번데기, 양말, 이불처럼 오만 가지 물건들이 장터를 빼곡히 채운다. 나는 보통 구경꾼으로서 어슬렁거리고, 모친은 구매자로서 분주히 오간다. 모친과 나 둘이 사는 가정에서 요리와 장보기를 담당하는 쪽은 모친이다. 나는 빨래와 쓰레기 버리기, 식자재 정리, 조리 과정을 보조한다.


모친이 갑작스럽게 발목 골절을 당한 후 장보기는 당분간 내 몫이 되었다. 줄곧 마트 제품만 구입하다 오랜만에 장에 가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다시 열린 장날이었다. 사과나 귤이나 들고 오던 내가 처음으로 식탁에 오를 메인 재료를 사러 간 날이기도 했다.


모처럼 해물전이 먹고싶어서 오징어를 사기로 했다. 모친이 해산물을 살 때마다 찾아간다고 한 곳은 오징어가 두 마리에 만원이었다. 오징어의 통통한 살과 반질반질한 비늘이 싱싱한 만큼 비싼 것 같았다. 야채전이나 먹을까 고민하다 다른 곳에서 파는 오징어가 눈에 띄었다. 꽁꽁 언 냉동 오징어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3마리에 만원이었다. 생물은 아니지만 만원이라니. 2+1 할인 상품 결제하듯 냉큼 손질을 부탁했다. 칼질에 무참하게 배가 갈렸다. 가련한 오징어가 담긴 비닐봉지를 받아들자 흥이 났다. 그렇게 발길을 돌린 순간 옆쪽 좌판이 보였다. 오징어 네 마리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뭘까, 이 손해 본 것 같은 느낌.


길게 늘어선 장이 끝나는 지점에 해산물을 파는 곳이 있었다. 이번에도 오징어는 네 마리였다. 더는 못 참고 가격을 물어봤다. 만원이란다. 장보기도 요령이 있어야 한다던 모친의 말이 떠올랐다. 왠지 사기당한 것처럼 약이 올랐다. 나는 아직도 뭐가 좋고 나쁜지 판단할 줄 아는 감각이 부실하구나. 성급한 결정을 후회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내가 사 온 물건을 정리하던 모친이 대뜸 소리쳤다.

오징어 한 마리에 다리가 없는데?

 

다리가 없다니. 장난해? 결국 2.5마리에 만 원을 준 셈이다.

 

그가 다시 말했다.

나 같으면 다시 가서 따져.


난 못해. 안 가. 내가 정당히 요구할 수 있는 몫을 설명하는 일은 늘 피곤하다. 그래서 피해를 보면 어느 정도 감수한다. 안 좋은 습관을 가진 걸 잘 알기에 교환이나 환불 처리가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을 선호한다. 글이나 클릭 한 번으로 국수 말듯 후루룩 진행되는 곳. 영수증만 가져가면 군말 없이 물건을 돌려주고 받을 수 있는 곳. 이를테면 온라인몰, 대형마트 같은. 감정을 적게 쓸 수 있는 공간이 편안하다.


이러니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한참 불만을 쏟아내고선 다음 장날을 기약했다.


장에는 시각과 후각, 청각을 일깨우는 것으로 가득하다. 정가제에 깨끗하고 각 잡힌 디스플레이로 정돈된 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파란 하늘, 우중충한 구름, 따뜻한 햇살, 생선 비린내, 구운 김 뭉치에서 퍼지는 고소한 향, 어묵 파는 곳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 장을 보러 나온 어른들, 아이들,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소리, 웃음소리.


과일을 살 때 가는 장소도 정해져 있다. 약국이 있는 골목에서 조금 더 내려오다 보면 항상 같은 자리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가 보인다. 그곳의 과일은 양도 많고 달다.


장날은 직접 빻은 후추를 하얀 봉투에 담아주고 잘 먹으라, 잘 먹겠다 소소한 인사를 나누는 날이다. 수제 도토리묵도 살 수 있는 날이다. 싼 물건을 발견하면 괜히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날이다. 좀 지저분한 풍경에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허술하고 북적거리고 체계도 없다. 그래서 장에 간다.


물론 다음 장날엔 다리 없는 오징어를 준 그 집은 절대 안 갈 거다.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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