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나리'를 아십니까? [영화]

영화 미나리를 돌아보며
글 입력 2021.03.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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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결심했던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문화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이번 주는 '영화'였다. 요즘 오스카 노미네이트로 큰 관심을 받는 '미나리'를 보기로 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 오스카에 노미되었는지. 그 이유를 영화 속에서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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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속 갈등, 소멸


  

메타포를 찾기 전 먼저 분석해야 하는 것은 인물 간의 관계이다. 모든 드라마, 영화가 그러하듯 미나리에서도 갈등 구조를 찾을 수 있다.

 

가족 공동체와 교회에 집착하는 아내 모니카와 자신의 아메리카 드림에 집착하는 남편 제이콥. 그리고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인 순자와 미국 할머니를 원하는 데이빗과 앤. 이 두 가지 갈등 관계는 영화 내의 긴장 관계를 조성하고 관객들이 영화의 전개 방향에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데이빗이 순자를 처음 만났을 때, 순자에게 물어본 것은 쿠키를 만들 줄 아냐는 것이었다. 요리를 잘하고, 쿠키도 만들고, 나쁜 말도 안 쓰는 미국 할머니와 비교해 순자는 요리도 못 하고, 쿠키도 못 만들고, 나쁜 말도 많이 쓰곤 한다. 그런 순자가 실제 할머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이빗과 앤은 그녀를 향해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순자의 행동에 대한 간헐적인 한숨, 둘만의 영어로 이루어진 대화 등은 그들이 순자를 할머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내 모니카와 남편 제이콥의 갈등은 서로의 끝에 있는 것이 달랐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족을 우선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모니카와 자신의 꿈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고 싶어 하는 제이콥의 관계는 과거 가부장적이었던 남편의, 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결국 가정이 아닌 제 일을 택한 제이콥을 향해 모니카가 이혼을 이야기하며 둘의 관계는 절정으로 다다른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게 바로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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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시작과 근원의 뜻이라면 불은 그 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무언가를 불태우는 것은 시작을 알리는 물과 달리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나리’의 불도 마찬가지이다.

 

갈등 관계가 최고조에 달했던 찰나, 순자의 실수로 집에 불이 붙고 만다. 불이 나며 제이콥이 길렀던 모든 작물이 사라지지만, 그때 사라진 것은 단순 작물이 아니다. 교회에 대한 모니카의 집착,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제이콥의 집착, 그러한 집착의 충돌로 나타난 갈등 관계까지 모조리 소멸하여 무(無)로 돌아간다.

 

이들의 갈등뿐만 아니라 순자와 데이빗, 그리고 앤 사이에 나타났던 갈등 또한 사라진다. 죄책감에 숲으로 향하던 순자를 막아선 건 그 누구도 아닌 데이빗이었다. 그 뒤를 따라온 앤도 순자를 향해 집에 가자며 손을 잡는다. 어둠 속으로 향하던 순자를 앤과 데이빗이 불빛으로 이끌며 세 사람 간의 갈등은 막을 내리게 된다.

 


 

미나리를 돌아보며


 

미나리를 다 보고 영화관을 나오며 과연 이 영화가 왜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었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의 연기는 박수갈채가 나올만한 것이었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연기였다. 모두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때 윤여정은 홀로 순자가 되어 영화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연기 때문에? 의문투성이였다.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넘어간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주제라는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정이삭 감독이 실제 경험을 풀어서 영화로 만든 것이기에 그 사실성에는 의문을 가질 점이 없었다. 모든 사람의 공감을 받아서, 그리고 그 공감을 더욱더 짙게 만드는 윤여정의 연기로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확실히 영화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많이 담고 있었다. 특히나 지금 데이빗이 지내는 곳에 원래 살던 남자가 농사가 망하고 죽었다고 이야기하며 나오는 화려한 세면대와 핏물은 상상 속 아메리카 드림과 현실을 생생하게 대조하여 보여준다. 그 밖에도 푸른 색감과 ‘미나리’를 통해 보여주는 노인의 연륜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미적 아름다움으로 볼거리가 많았지만, 그 내용이 충분했는지는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에도 의문이 생긴다. 잔잔한 영화를 본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 내 문학적 소양이 ‘미나리’를 충분히 느끼는 데에 부족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액션 영화만 찾던 내가 ‘미나리’를 보는 것도 일종의 도전이었으니, 이 도전을 이어나가 후에는 ‘미나리’와 같은 영화를 조금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안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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