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만약 오늘의 점괘가 죽음을 암시한다면 [영화]

영화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Cléo de 5 à 7)>
글 입력 2021.03.2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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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적 거장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의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찬사를 이끌어내며 바르다를 영화계에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영화는 대중 가수인 클레오가 타로점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원 진단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한 마음에 확인한 카드 점괘는 그야말로 암담하다. 클레오는 자신이 큰 병(암)에 걸려 죽어 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거리를 배회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계속 정처 없이 모자 가게, 집, 카페, 친구의 일터, 공원으로 떠돈다. 그러던 중 공원에서 한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이내 클레오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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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속 유일한 컬러

 
눈여겨 볼 부분은 영화의 도입부다. 흑백의 세계 속 유일하게 컬러로 묘사된 타로 장면은 우리의 실제 삶과 영화 속의 삶을 구분한다. 아울러 카드가 암시한 미래, 즉 상상 속 세계와 클레오의 실제 삶을 분리하기도 한다.
 
 
“점술가는 그의 삶을 예측하는데, 마치 영화를 보면서 말하고 있는 듯하죠. 결국 카드는 클레오가 죽을 거라고 선언하지만, 카드는 그저 카드일 뿐이에요.”
 
-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제퍼슨 클라인, 『아녜스 바르다의 말』, 오세인, 마음산책' 발췌

 

 
의사의 최종 진단을 기다리며 봤던 타로점의 결과는 한눈에 봐도 좋지 않다. 클레오는 묻는다. “죽을 병에 걸렸나요?” 그가 눈물을 보이며 문 밖을 나서자 점술가는 말한다. “암으로 죽을 운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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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고 찾은 모자가게. 아름다운 모자를 이리저리 써보지만, 불운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낼 수 없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도 바깥의 모습이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한 장의 카드가 보여준 자신의 미래는 이미 확정된 결말 같다.
 
결정적으로 집에 방문한 예술가 친구들과 유희를 즐기면서 감정이 극에 달한다. 자신이 부른 노래가 감정을 분출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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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꽃피우지도 못한 채로
잔인한 겨울 속에 버려진
나는 빈 껍데기일 뿐이에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절망에 갇힌 채로
투명한 관 속에 누워
내 몸은 썩어가요
 
 
 
불안을 한 겹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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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쏟아낸 클레오는 걸치고 있던 화려한 옷과 가발을 벗어 던진다. 이어 검은 원피스를 차려입고, 재수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쓰지 않았던 새 모자를 착용한다. 이전까지 자신을 감싸던 껍데기를 한 겹 벗고 의지를 다진 순간이다. "아무렴, 어때"하면서.
 
이 장면이 꽤 강렬하고 통쾌하게 느껴졌는데 인물의 감정과 태도가 조금씩 변화하는 시점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클레오는 집을 나온 직후 상점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한다. '표정 없는 얼굴, 바보 같은 모자. 얼굴이 말이 아니네, 결국 믿을 건 나뿐이야.'
 
한편, 익숙했던 거리에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클레오는 개구리를 집어삼키고, 꼬챙이로 팔을 관통하는 공연을 하는 사내들의 모습을 갑작스럽게 마주하면서 자신과 주변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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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배회하던 거리를 지나, 곧장 찾아간 곳은 친구가 일하는 화실. 그곳에서 친구는 누드모델로 일하고 있다. 완벽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를 타인에게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클레오는 놀라움을 느낀다. 그의 애정어린 걱정에 친구는 웃어넘긴다.
 
"그들이 보는 건 내 벗은 몸이 아니야. 형태나 아이디어지. 나 자신은 사라져 버려. 일종의 휴면상태랄까" 바르다는 누드 테마를 자주 활용하는 편인데, 그는 벌거벗은 몸과 정신은 가면을 쓰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기에 감동적이고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되는 대사다.
 
 
 
낯선 남자에게 투영한 자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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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절정을 꼽자면 단연 알제리 파병을 앞둔 군인을 공원에서 만났을 때다. 그 사내는 클레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죽음에 관해, 사랑에 관해, 살아가면서 겪는 소소한 일들에 관해 늘어놓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클레오는 그와 대화를 나누며 이전까지 혼란스러웠던 생각과 감정이 명료하게 정리된다.

 

 
"클레오는 문득 자신이 단 한 번도 무언가에 또는 누군가에게 제대로 빠져들어 본 적도, 완전히 벌거벗어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벌거벗음이라는 이 테마는 모델 일을 하는 친구의 포즈를 통해 시각적으로, 군인에 의해서는 지적으로, 클레오가 겪는 경험을 통해서는 물리적으로 묘사돼요. 비록 걱정일 뿐이지만 질병이 그를 벌거벗게 해요. 클레오에게 큰 영향을 미치죠."
 
-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제퍼슨 클라인, 『아녜스 바르다의 말』, 오세인, 마음산책'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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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마음껏 꺼낸다. 결국 클레오는 자신을 괴롭히는 불행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결심한다. 사내와 함께 병원으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도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독한 근심 끝에 듣게 된 진단. "두 달만 화학치료를 받으면 나을 겁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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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미래를 궁금해한다. 당장 닥칠 오늘의 일부터 먼 미래에 벌어질 상황까지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러니 신년 운세, 별자리 운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이야기하는 사주 등 미래를 점치는 각종 방법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문득 든 의문. 과연 통제할 수 없는 어떤 분명한 진실이 존재하는 걸까?

개인적으로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불변의 법칙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설령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으로 정해진 내 삶의 길이 있더라도 그것을 알게 되면 삶의 흥미가 뚝 떨어질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 유리잔이나 거울을 깨뜨려 산산조각 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찝찝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막을 수 없으리라. 어쩌면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마음 깊이 자리한 사소한 불안과 걱정에서 비롯됐을 수 있겠다.

영화 속 클레오는 한 장의 카드가 예견한 미래로 인해 2시간가량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공포의 정체가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과 나는 안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미리 염려하여 전전긍긍해도 상황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이때 '통제할 수 없는 일'이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질 일들로 한정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살면서 꽤 많은 시간을 미지의 두려움에 떨며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 및 인용│ 아녜스 바르다, 제퍼슨 클라인, 『아녜스 바르다의 말』, 오세인, 마음산책, 2020

 

 

[김세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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