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날 살게 하는 한 마디, 뮤지컬 '명동로망스' [공연]

붙잡지 않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글 입력 2021.03.1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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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공연의 재연 첫 공연을 기다리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 설레면서도, 그만큼의 긴장 혹은 두려운 감정이 드는 일이다. 재연으로 돌아오면서 공연이 수정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던 대사나 연출이 다음 시즌의 공연에서도 그대로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아무것도 수정되지 않더라도 이전 시즌의 공연을 보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다. 그 기간 동안 삶을 살아오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한 ‘나’는 같은 공연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연극의 4요소 중 하나가 관객인 만큼 순간의 예술인 공연은 ‘나’와 함께 기억된다. 가령 나는 뮤지컬 <명동로망스>의 2018년 공연을 생각하면 당시에 내가 읽던 책이나 쓰던 글, 극장 앞 풍경이나 추웠던 날씨 등을 모두 함께 떠올린다.

 

따라서 어떤 공연을 좋아한다는 것은 공연 자체는 물론이고, 그 공연을 볼 때의 자신과 그때의 추억 모두를 좋아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 공연을 좋아한다’는 감상은 언제고 변해버릴 가능성이 크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나보내는 시간은 슬프기도, 때로는 두렵기도 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두려움보단 설렘이 더 크기 때문에 혹은 누구보다 빨리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첫 공연을 예매하고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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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기다리던 뮤지컬 <명동로망스>가 돌아왔다. 2015년에 초연된 <명동로망스>는 2018년 재연 공연을 거쳐 2021년 3월, 삼연(세 번째로 공연함) 무대의 막을 올렸다. <명동로망스> 재연의 마지막 공연을 보며 아쉬워하던 나는 망설임 없이 <명동로망스>의 삼연 첫 공연을 예매했다.

 

<명동로망스>는 1956년 예술가들이 모여 친교를 나누던 명동의 한 다방을 배경으로 한다. 화가 이중섭과 시인 박인환, 문학가 전혜린은 ‘성여인’이 마담으로 있는 로망스 다방에 모여 어울리며 그들만의 낭만과 예술을 꿈꾼다. 경찰인 ‘채홍익’은 이들을 감시하기도, 함께 어울리기도 하면서 다방을 드나든다.

 

이들 사이에 2021년(2021년 공연 기준)으로부터 타임 슬립 해 온 ‘장선호’가 등장한다. 선호는 꿈같은 것 없이 항상 ‘다음에’를 읊조리며 열심히 공부하고 알바해서 공무원이 된 이 시대의 현대인을 대표한다. 선호는 1956년 로망스 다방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어울리고 부딪히면서 점점 자신도 꿈꾸는 세상이 있음을, 간절하게 살고 싶은 세상이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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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던 <명동로망스>는 다행히도 여전히 좋았다. 2년여의 시간 동안 나도 변했고 대사나 가사도 조금씩 바뀌었지만 어쩌면 예전보다 더 좋았다. 극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아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다. 스크린에 올라가면 그 후로는 수정하기 어려운 영화와 달리, 공연은 재연을 거듭하며 예전에는 자연스레 용인되던 차별적인 대사나 장면을 고쳐 더 나은 공연을 향해 나아간다.

 

이번 <명동로망스> 역시 마담을 대상화하던 홍익의 가사를 고쳐 마담을 존중하면서 연모하는 모습에 초점을 두었다. 이 부분은 2018년 공연을 보던 당시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아직도 마담을 ‘예술적’이라 칭하는 부분이 다소 남아있긴 하지만, ‘그대 날 원한다면’ 같은 가사를 통해 첫눈에 반했지만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는 느낌이 들도록 수정되었다. 홍익의 가사가 이렇게 변화함에 따라 홍익이 다방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아꼈다는 극 후반부의 흐름에 더욱 개연성이 생겼다.

 

당시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가 미래에서 온 선호의 옷 원단에 큰 관심을 보이며 선호의 옷을 거의 벗기려 하던 장면도 수정되었고, 1956년에 개봉한 영화 <자유부인>에 대한 언급 역시 수정되었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중요한 부분들을 세심하게 바꿔 온 <명동로망스>는 극의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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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세 번 등장한다. 맨 처음 장면에서 2021년의 선호는 모두들 다음을 위해서 참으며 사는 것이라며 모든 것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한다. 그러다 1956년의 다방에 오게 된 선호는 그곳의 예술가들과 함께 지내며 우여곡절을 겪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해야 하는 일만 열심히 하던 선호와는 정반대로 예술가들은 자신을 미치게 하고 숨 쉬게 하는 꿈을 꾸며 사는 이들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제일 열심히 하는 이 예술가들은 마냥 행복하지 않다. 인환은 시인 이상을 존경하며 누구보다 진지하게 시를 쓰는 모더니스트 시인이다. 그는 서구적 취향에 흠뻑 빠져 외국어나 모던한 용어를 자주 사용했고, 항상 댄디한 복장을 유지했다. 그런 그는 ‘서구적인 것에 경도된 유행의 숭배자’라는 비난을 듣는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 있어 보이는 인환도 그런 말들에 흔들리고 두려움을 느낀다. 비난에 흔들리는 자신이 초라하면서도 정말 자신의 내면이 비어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은 인환의 가슴을 찌른다.

 

혜린은 오늘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내 기꺼이 불타버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만큼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는데 왜 글을 쓸 수 없는지 괴로워한다. 다른 것은 모두 잊고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 느끼고 싶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혜린도 어쩌면 자신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할 뿐 아닌가 하는 혼란을 겪고 있다.

 

중섭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그의 그리움이자 곧 그림이다. 그림은 언제나 중섭을 미치게 하고 꿈꾸게 한다. 그러나 중섭은 그림으로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신이 그리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현실과는 다른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섭은 자신의 그림들을 화가로서도, 가장으로서도 행복하지 못한 보잘것없는 자신의 자화상이라 말한다. 영원히 그립고 목마르면서도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림 앞에서 중섭은 괴로워한다.

 

 

왜 난 그림 그리며 아파하나

왜 난 고통스럽게 시를 쓰나 

왜 난 나를 불태울 꿈을 꾸나 

 

왜 난 / 누구와도 다른 진짜 내가 되길 멈추지 못하는 걸까

 

내 심장은 이제야 뛰기 시작했는데

 

- '왜 rep.'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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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호는 예술가들이 고백하는 혼란과 불안을 매 순간 지켜본다. 그리고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계속해서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그들의 간절한 그리움을 보게 된다. 그런 선호는 나를 숨 쉬게 하는 그리움은 무엇인지, 이렇게 살다가 만나게 될 자신의 미래는 무엇일지, 혼란스러운 고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선호는 고민이나 감정까지도 현실 앞에서는 사치라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혼란도 순간’이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애써 되뇐다.

 

자신은 예술가들과 다르다며 꿈꾸는 세상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선호에게 예술가들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이야기해주며 예술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 있을 수 있다고 독려한다. 그런 예술가들을 보며 선호는 자신에게도 꿈꾸는 세상이 있음을,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간절하게 살고 싶음을 깨닫는다.

 

꿈꾸는 세상으로 가는 길에는 혼란과 불안이 도사리며, 그런 괴로움 끝에도 어쩌면 그런 세상에는 영영 이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생명수를 마시며 의연하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간절히 꿈꾸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혼란과 불안은 생명수 한 잔에 털어 넣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고통스러운 혼란과 간절한 열정을 모두 목격한 선호는 더 이상 ‘혼란도 순간’이라며 지나가길 기다리지 않는다. 선호는 그 모든 불안과 괴로움을 기꺼이 겪어내며 꿈꾸기를 다짐한다. 현재로 돌아온 선호는 자신의 심장이 뜨겁게 뛰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붙잡지 않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선호는 다음이 아닌 지금을 산다.


 

살고 싶어 간절하게 / 남고 싶어 이 세상에 / 누구보다 오래오래 

내 모습 그대로 / 내 꿈이 빛날 그런 세상을 꿈꾸며 

살고 싶어

 

- '살고 싶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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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는 선호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 끝까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인환이나 혜린처럼 글을 쓰지도, 중섭처럼 그림을 그리지도 않는다. 관객들 역시 어떤 세상을 꿈꿔야 할지, 꿈꾸며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일부러 찾지 않아도 된다. 그런 세상은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다 하여도 마음 깊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것은 꼭 예술이나 어떠한 행위일 필요가 없다.

 

꿈꾸는 세상에 반드시 이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 극은 '설레고 꿈꾸고 사랑’하며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꼭 '꿈꾸며' 살기를 당부하는 듯하다. 물론 현실의 벽에 부딪혀 괴롭고 불안하겠지만, 생명수와 잔을 나눌 벗이 있다면 흘러가 버릴 지금 이 순간, 기꺼이 낭만을 꿈꾸며 살 수 있겠다.


 

그곳엔 낭만이 있었죠 힘들고 아픈 현실도 꺾지 못할

꿈들이 피어나 꽃을 피우던 곳

 

그 꿈과 낭만이 커피 향기를 타고 흐르네

바로 지금 여기 우리들 사이로

 

명동로망스

 

- '명동 로망스' 중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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