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월의 중턱에 쓰는 글

글 입력 2021.03.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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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참 묘하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 쓰는 새 학기에 관한 글이라니. 지금까지 뭘 배웠다고 이제 막 학년에 접어든 것인지, 지나온 시간에 대해 무지막지한 후회가 들다가도 그에 밀려 현재를 잃지 않으려는 다짐만 되새기는 오늘이다. 나한테도 이런 시간이 올 줄은 몰랐다. 이런 시간이 이렇게 쓰일 줄도 몰랐다. 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학교에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리 달가운 마음이 들진 않았던 것 같지만, 벌써 개강한 지 3주 차에 접어드는 지금, 무엇인가 조금씩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마음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3월의 중턱. 지금껏 3월은 푸릇한 새 학기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작년부터 그것이 유지되어오던 것들과는 좀 달라지긴 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먹던 점심, 쉬는 시간에 맥락 없이 주고받았던 농담들, 일교차가 커 날씨를 가늠하지 못해 덜덜 떨면서 캠퍼스를 누비던 발걸음.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해 일상으로 스며들었던 것들이 이제는 비일상적으로 분리가 된 현재에서, 조심스럽게 캠퍼스 안을 걸어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하기도 한다.

 

건물 입구마다 들어선 체온 측정 기기, 건물 출입 허가용 손목 밴드를 채워주는 근로 학생들, 마스크를 쓰고 강의하시는 교수님들, 띄어 앉아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 테이블마다 쳐져 있는 칸막이 등 전에는 본 적 없던 풍경들이 학교를 채우고 있고 비대면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함으로 인해 강의실을 채우는 학생들의 수는 현저히 적지만 어떻게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비일상적인 것들에 적응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은 안쓰럽기도, 한편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 년을 쉬고 돌아와서 듣는 수업도 감회가 새롭다. 이번 학기는 유독 문학과 각국의 문화에 관련한 수업을 자주 듣게 됐는데, 작년 한 해 쉬면서 읽어뒀던 책들과 기사들, 시간이 날 때마다 보았던 세계사 수업 유튜브 콘텐츠 등에서 나온 내용이 수업에서 다뤄질 때면 내심 반갑기도 했다. 전에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교수님의 수업도 올해 다시 듣고 보니까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을 보면 매일 학교 가기 싫다고 염불을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학교에 다니기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벌써 4학년이다. 대학교 4학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이 싫어 도피하듯 휴학을 택했는데 그것도 이제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 학교로 돌아오니 괜히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새내기 시절엔 4학년 선배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데 왜 내가 4학년이 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지. 1학년이던 때에는 연차가 조금씩 쌓이면 내 진로에 대한 방향도 명확해질 것 같았고, 이전보다 더 많은 경험을, 더 많은 교훈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때와는 달리 오히려 열정은 더 사그라들은 것 같다.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무엇이든 척척 해내 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다 현실에 좌절된 적이 무수하다 보니 무뎌져서 이렇게 된 건 아닌지, 하고 나름 분석을 해 본다.

 

일 년 간의 휴학이 내게 어떤 수치로서의 결과를 남겨주진 않았다. 하고 싶은 것들만 수두룩했지만 미뤄지거나 연기되기 일쑤였고, 자격증 시험도 겨우겨우 봤다. 자연히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일이 잦아졌고, 그게 나에게 스펙으로써의 이점으로 작용하진 않더라도 내면을 단단하게 해주는 데에 도움을 준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정확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지금에도 방황하지 않고 다양한 것을 해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진로를 가져야 그나마 덜 힘들 수 있는지 몰랐던 새내기 때도, 4학년이 된 지금도 아직은 잘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타인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직접 해 봐야 무엇이라도 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계속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하는 동기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아주 좋았던 것도 내가 맞닥뜨린 환경에서는 언제나 최악이 될 수 있고, 내게 아주 좋았던 것도 타인에게 최악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좋고 나쁨을 가르는 기준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것. 어쨌든 '직접' 해 봐야 다가오는 생경함에 대해 생각해봐야 주관이 다져진다는 것. 일 년의 쉼으로 얻을 수 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일 년을 쉬면서 출발은 조금 늦어졌지만, 그래도 전혀 긴박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나를 다질 수 있었고, 그 쉼의 시간 동안 확실하게 사고를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분명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급박해하지 않고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학교에 지쳐 휴식이 필요했던 내게 그 1년의 세월은 타인과 나 자신을 좀 더 정성껏 돌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한가함에서 얻었던 배움이 있었고, 이 배움이 내게 녹아들어 체화하기까지의 노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 3월이 더 진중하게 여겨지는 듯싶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주어진 수많은 과제 속에서 다양한 시선과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해결 속에서 또 새로운 배움을 얻는 것.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던 사람들은 다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지는 않을까. 작년 한 해 동안 학교에서의 경험이 줬던 진귀한 교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나와 교집합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그 교집합 안에서 또 다른 차집합을 실감하면서 그 요소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곳. 적어도 내게 학교는 그렇다. 이제는 그 집합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이번 새 학기의 다짐이 남다르다. 조금만 더 진심으로 해내야겠다. 내 노력과 배움이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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